주간동아 1034

2016.04.20

경제

삼성, 대우조선 인수설 모락모락

“산자부가 매각 원해” 외신 보도…정부 주도 통폐합 부작용도 우려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4-18 09: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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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주인도 없이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 때만 되면 인수합병 소문이 나돈다. 이번에는 외신발(發) 소문이다.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의 무능에 대한 정부 측 실망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설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것은 노르웨이 해운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TradeWinds)’.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삼성중공업 측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길 바란다는 것. 현재 정부가 가진 대우조선해양 지분은 KDB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과거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하고 있다 반납)가 보유한 58.26%가량으로 현재 시가로는 약 8500억 원. 2008년 당시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할 때 인수 예상가격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 6조 원을 넘어섰다. 물론 이는 조선업이 활황일 때 이야기로, 지금처럼 조선업이 최악의 불황을 맞은 시점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할 경우 인수가격은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매각에 최적 시기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정부가 지금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난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 트레이드윈즈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초 지난해 실적을 매출 12조9743억 원에 영업손실 5조5051억 원으로 집계했다 2013년과 2014년 결산 당시 손실로 판단하지 않은 부분 등이 있었다며 3월 말 지난해 실적을 매출 15조 원에 영업손실 2조9371억 원으로 정정공시했다(표 참조). 이 때문에 KDB산업은행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다. KDB산업은행은 4월 초 2015년 한 해 동안 당기순손실 1조8951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KDB산업은행이 주요 주주인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이 대규모 손실을 낸 것이 주요 원인.



    외신 “정부, 산업은행에 기대 접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의 감리를 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이 회사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2013~2014년 실적을 3월 말 수정한 것은 분식회계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징계 수위를 낮추고자 ‘자진납세’한 것이라는 게 업계 측 평가.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과 2014년 영업이익이 각각 4409억 원, 4711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업계는 2014년부터 저유가 기조 확산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3조2495억 원 적자를 내는 등 다른 조선업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을 때 대우조선해양은 홀로 4711억 원 영업이익을 발표한 것이다. 업계 위기상황을 체감하던 많은 관계자는 이때부터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다 3월이 돼서야 2013년과 2014년의 영업이익을 각기 7784억 원, 7429억 원 ‘손실’로 수정했다(표 참조). 2013~2014년 흑자 실적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에게는 손해배상을 요구할 여지가 충분한 셈. 이미 소액주주 수백여 명이 대우조선해양과 고재호 전 사장, 그리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16년 동안 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한 KDB산업은행 또한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당행 부행장 출신을 선임한 상태였으나 대우조선해양의 손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2015년 9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KDB산업은행 감사에서 이것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복잡한 조선 사업의 생산 문제를 최고재무책임자 한 사람이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홍기택 당시 KDB산업은행 회장의 답변이었다. 도리어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낙하산 인사’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KDB산업은행의 전직 부총재, 재무관리본부장, 부행장 등을 비롯한 전직 임원들과 권력기관 출신 낙하산 인사 총 60명이 대우조선해양의 비상근임원으로 투입돼 억대 연봉과 자녀 학자금 등을 챙겼다는 사실이 당시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조선업 불황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 위기가 3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은창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 펴내는 저널 ‘친디아 플러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은 지속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중략) 1970년대 이후 노후 선박 교체 및 선박 규정 강화 시기와 맞물려 2000년대 초호황을 누렸고, 이에 따라 기승을 부리던 선박 투기의 결과인 것이다.’  

    조선업은 경기 순환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순환적 산업(cyclical industry)이다. 호황기에는 기업들이 생산 능력(공급)을 확장했다 불황기에는 축소하게 되는데 기업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종종 필요 이상으로 호황기에 생산 능력을 확장했다 불황기에 된서리를 맞곤 한다. 2008년 이후 급격한 불황에 시달리던 국내 대형 조선 기업들은 해양플랜트로 성장을 모색했으나 이마저도 2015년부터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면서 사면초가에 놓이게 됐다는 게 이 수석연구원의 평가.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내 조선업계가 과도하게 확장한 생산 능력이 어느 정도 정리돼야 하기 때문. ‘해운 시황 위축으로 조선산업의 공급과잉은 향후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략) 최대 공급 능력을 기준으로 보면 현 상황은 이미 35% 공급과잉이다.’ 이은창 수석연구원의 분석이다. 이미 다수의 중소 조선소가 폐업하거나 매각됐다. 그러나 이 수석연구원은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아직까지 확연한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정리된 조선소가 다 소규모이기 때문.

    업계 바깥에서도 구조조정 요청이 높다. 3월 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계 3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2개 혹은 1개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 윤 전 장관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대상으로 가진 특별 강연에서 조선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스웨덴 항구도시 말뫼를 사례로 들었다. 말뫼는 스웨덴 조선업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로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일본과 한국 조선소들에게 밀리면서 조선소들이 잇따라 폐쇄됐다. 도시 상징과도 같던 138m 골리앗 크레인은 현대중공업이 막대한 해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팔렸다. 적절한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 울산과 경남 거제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윤 전 장관의 견해.

    오래전부터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에 가장 적절한 주체는 삼성중공업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지리적 인접성 때문이다. 같은 거제에 자리해 생산 능력을 조정하고 통폐합하기도 용이하다. 두 업체의 주력 분야가 서로 보완적이라 합칠 경우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重 인수 여력 부족

    그러나 삼성중공업도 현금흐름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라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삼성중공업의 조선 부문은 그룹 차원에서 그리 중요도가 높지 않다. 그룹 전체 수익에서 금융과 전자 부문이 내는 수익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삼성중공업이 내는 수익은 3%에 불과하다. 잇따른 ‘빅딜’로 비주력인 방위산업·화학 부문을 매각한 삼성그룹이 주력이 될 가능성이 부족한 조선 부문에 전격적으로 투자할 이유는 별로 없다.

    조선업 내 구조조정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그러나 그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조선업이 수년 동안 불황을 겪고 있음에도 의미 있는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두고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문제를 빚은 경우도 많은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정부 시절 ‘빅딜’ (대규모 사업교환)정책으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LG반도체를 합병한 사례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3사의 철도차량 제조 부문이 통합된 사례. 현대전자는 1999년 매출 규모가 더 큰 LG반도체를 무리하게 합병했다 자금난에 휘말려 오랫동안 ‘증권시장의 핵폭탄’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쓰는 수모를 겪었고 결국 SK에 넘어갔다. 같은 해 3사 철도차량 제조 부문이 통합돼 만들어진 ㈜한국철도차량은 노동조합의 장기 파업과 경영 악화로 2년 만인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 오늘날 현대로템이 됐다. 당시 진통은 한국의 철도차량산업 발전을 2년 지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구조조정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조선 3대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은창 수석연구원은 1970~80년대 일본이 대대적인 조선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국에 추월당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이 사례가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은 다음 호황 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주장한다. ‘조선 3사가 협력해 합리적인 경쟁을 했다면 조선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서로의 상황만 악화시켰다. (중략) 경쟁해야 하는 부분과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분을 구분하고, 협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한 회사처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38년째 계속…대우조선해양-KDB산업은행 ‘이 죽일 놈의 사랑’‘주인 없는 회사.’ 대우조선해양을 16년째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대우그룹에 속해 있다 2000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채권단에 의해 회생절차(워크아웃)를 밟았다. 이때부터 대우조선해양 대주주는 채권단 대표 격인 KDB산업은행이었지만 사실 KDB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38년 전 시작됐다.

    1973년 10월 대한조선공사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의 일환으로 경남 거제시 옥포에 조선소를 지으면서부터다. 그러나 1차 오일 쇼크로 대한조선공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공사를 진척하지 못하자 정부가 대우그룹에 옥포조선소 인수를 제안했고 대우그룹이 이를 수용하면서 78년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가 탄생한다. 당시 대우그룹은 자동차업체를 갓 인수한 상태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면서 KDB산업은행(정부 측)과 대우그룹의 공동출자로 운영하기로 했다. 당시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공업 지분은 40%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우중공업과 합병돼 대우중공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다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다시 KDB산업은행이 개입하게 됐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중공업 부문과 조선 부문을 분리해 2000년 다시 대우조선공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2002년 사명을 오늘날의 대우조선해양으로 바꿨다. 이때부터 조선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급속도로 성장했고, KDB산업은행은 이후 수차례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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