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커버스토리 | 텃밭의 반란, 대선까지 갈까

반기문 앞에 놓인 3개의 선택지

예선 통과 없이 본선 도전 없다…與든 野든 험로 예상

  •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taegonyoun@gmail.com

    입력2016-04-15 16: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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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2일 이고르 룩시치 몬테네그로 외무부 장관이 유엔 회원국 대표들 앞에 서서 정견을 발표하고 쏟아지는 질문에 답했다. 뉴질랜드 총리를 지낸 헬렌 클라크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 전 불가리아 외무부 장관 출신의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잔뼈가 굵은 안토니우 구테헤스 전 포르투갈 총리, 유엔 사무차장을 지낸 다닐로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 스르잔 케림 전 마케도니아 외무부 장관, 베스나 푸시치 크로아티아 외교부 장관, 나탈리아 게르만 몰도바 부총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둘러싼 공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곧 끝난다는 의미다.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반기문 총장은 가장 강력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외교안보수석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선 외교통상부 차관, 노무현 정부에선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으며, 올해로 10년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내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외교관이다.



    발광체 아닌 반사체의 한계

    대선을 기준으로 본다면 반 총장은 장점과 단점이 극명히 엇갈리는 인물이다. 차변 쪽을 먼저 짚어보면 항목이 많다. 충북 음성 출신으로 충청권의 지역 기반을 갖고 있으며 영호남에서도 비토(veto)층이 적다는 점, 무엇보다 현재 대권후보군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점이 큰 자산이다. 반면 1944년생으로 만약 2018년 대통령에 취임한다면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 때보다 한 살 더 많다는 점, 냉정히 따져볼 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 ‘성완종 리스트’ 당시 주목을 받았지만 반 총장 주변이 그리 말끔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대변의 항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유독 호감을 표시하고 있고, 반 총장 역시 자신을 적극 지원해 유엔 사무총장까지 밀어올린 노무현 전 대통령 측보다 박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객관적 조건을 다 떠나서 반 총장의 가장 본질적 한계는 그가 ‘발광체’라기보다 ‘반사체’라는 점이다.



    반 총장의 대선 지지율 고공행진은 기본적으로 현재 정치권에 대한 불만, 여권 주자군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 박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의 정치적 업적, 비전, 열광적 지지층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김무성, 유승민,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 지금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담금질을 당하는 여야 정치인들은 온갖 상처를 입으면서도 지지층을 만들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밀어올리고 있지만 반 총장은 만리타향 미국 뉴욕에서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비토층이 적지만 열광적 지지층도 엷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왜 반기문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주로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라서” “기존 정치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식이다. ‘거품’의 기미가 보인다. 2007년 대선을 앞둔 고건, 2012년 대선 앞의 안철수보다 훨씬 흐릿하다. 온몸을 던져 그를 끌어올릴 측근 그룹도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 당시 조명됐고 총선을 앞두고 ‘친반연대’ 등이 등장한 것처럼 오히려 ‘반기문 마케팅’에 숟가락을 얹을 인사가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의 가장 큰 자산은 인지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기문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당선’은 모르겠지만 대선 가도 ‘입장권’은 이미 따놓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권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넘어야 할 관문은 분명히 있다. 첫째 관문은 ‘예선’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먼저다. 반 총장은 과연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여당으로? 야당으로? 아니면 독자세력화를 통해?



    대통령이 민다고 ‘후보’ 될까

    반 총장의 선택지 가운데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은 여당이다. 일단 박 대통령과 관계가 돈독하다. 이번 미국 워싱턴DC에서 있었던 핵안보정상회의 와중에 두 사람은 언론에 짧은 만남을 노출했다. 뉴욕과 서울의 거리에도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보다 반 총장을 오히려 더 자주 만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이원집정부제 개헌, 충청 대망론 역시 반 총장을 축으로 둔 모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접근해보면 장벽이 두껍기도 하고 장벽 개수도 많아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3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 도전에 대한) 생각이 있으면 자기의 정체성에 맞는 정당을 골라 당당하게 선언하고 활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감이 잘 안 보인다”면서 “새누리당은 (반 총장이 입당한다면) 환영한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에 따라 도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경선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부 친박을 제외하곤 새누리당 대선주자군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을 뒤집어보면, 경선에선 반 총장을 충분히 꺾을 자신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일단 반 총장은 지금까지 철저히 보호받은 인물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동 당시 반 총장의 친동생 및 조카와 관련된 이야기가 상당수 흘러나왔지만 검찰은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언론 역시 깊이 있게 추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 총장을 내세운 각종 사조직, 테마주와 관련한 풍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부활했지만 그를 차관, 장관 시절 고난에 빠뜨렸던 대(對)중, 대러, 대미 외교에 관한 논쟁도 불거질 것이 분명하다.

    경선에 참여하는 순간 반 총장은 완전히 발가벗겨질 것이다. 경쟁력에 손상을 입지 않게 경선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예선 없이 진출한 본선에서 타격을 입으면 반 총장 개인은 물론, 진영 전체가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공세 문제를 제쳐놓고 봐도 어려움은 많다. 반 총장은 대중 정치를 해본 인물이 아니다. 반 총장이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과 악수하고, 대의원들을 설득하며, 연설을 통해 비전을 설파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수십 년간 정치 현장에서 단련된 인물들과 나란히 설 경우 그 약점은 더 도드라질 것이다.

    게다가 시간도 반 총장의 편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2016년 12월까지다. 2017년이 돼야 대선 혹은 경선을 물리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반 총장과 정치적 이해는 물론 개인적으로 신뢰를 형성한 대리인이 미리 조직이나 자금과 관련한 준비를 해놓지 않는다면 대응하기 힘든 스케줄이다.

    물론 경선 없이 추대로 대선후보로 옹립될 경우의 수가 없지는 않다. 새누리당 후보군이 모두 야당 후보에 형편없이 밀린다는 시뮬레이션이 나온다면 당의 총의가 ‘반기문 추대’ 쪽으로 모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이 펼쳐질 확률은 극히 낮다. 게다가 새누리당 후보군의 경쟁력이 모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새누리당 자체 경쟁력이 낮다는 말도 된다. ‘도박’을 걸어볼 상황은 되겠지만 ‘승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경우의 수는 청와대와 친박 진영이 전심전력으로 반 총장을 지지,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특정인을 차기 주자로 만들 순 없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아무리 ‘콘크리트 지지층’을 지닌 박 대통령이라도 특정인을 비토할 힘은 있겠지만 특정인을 주자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을 ‘받드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사례는 없다.

    또한 이 같은 경우 새누리당이 쪼개질 개연성도 적잖다. 반 총장이 대선에서 떨어지더라도 계속 정치를 하고 다시 도전할 정도의 시간과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역시 어려운 일이다. 요컨대, 경선 없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기는 극히 어렵고 경선을 거칠 경우에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은 든든한 뒷배가 되겠지만 핸디캡인 면도 크다.



    야당 경선 참여는 더 어렵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권노갑 전 의원을 찾아가 “반 총장을 대선후보로 만들자”고 했다는 전언이 있지만, 여러 상황으로 볼 때 반 총장이 야당 대선후보로 나설 개연성은 극히 적어 보인다. 야당에 몸담을 경우에도 경선 문제는 여당에 참여할 때와 똑같이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야당 지지층의 기질이 좀 더 ‘터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 총장이 야당 경선을 버텨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야당이 반 총장을 ‘추대’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냐는 반문은 가능할 것이다. 이는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첫째, 야당의 모든 후보군이 여당에 비해 현격한 경쟁력 차이를 보여야 한다. 둘째,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친안(친안철수) 등 다양한 세력이 모두 일치단결해야 한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반 총장은 오직 대선에 한 번 써먹을 수 있겠지만,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는 카드다. 집권 여부를 떠나서 보더라도 ‘세력’을 유지하는 데는 거의 효용성이 없다.

    결국 반 총장은 여당에 몸을 담으나 야당에 몸을 담으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반 총장이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솟아날 구멍’이 없는 쪽이 ‘지푸라기 잡는’ 식으로 매달릴 때뿐이란 점이다. 자력으로 이길 가능성이 충분한 쪽이 반 총장을 불러들일 리 만무하다. 또한 불러들이더라도 ‘불쏘시개’로 사용할 의도를 가질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경선에서 가능성이 낮아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흥행 카드가 필요하던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이해가 일치한 전례가 있긴 하다. 손 전 지사가 ‘이적’을 감행했고 당내 세력 상당수가 진정성 있게 그를 지원했지만 결국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2012년 안철수보다 나을 수 있을까

    양당 경선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한다면 남는 선택지는 독자세력화 혹은 개헌이다. 먼저 독자세력화를 짚어보자면, 경선보다 오히려 더 험난해 보인다.

    독자세력화의 모델은 2012년 대선에 나섰던 현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다. 일단 안 대표의 당시 지지율은 반 총장의 지지율보다 훨씬 높았다. 반 총장이 비토가 없는 수준이라면 안 대표는 열광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다. 급조되긴 했지만 ‘합리적 진보’부터 ‘개혁적 보수’까지 포괄하는 캠프가 만들어졌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원로급 인사들이 멘토 노릇을 했고 박선숙 전 의원, 김성식 전 의원 등 여야를 망라하는 인사들이 허리를 맡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일부 세력, 예비역 장성, 벤처 기업인,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현직 언론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조직을 구성했다. 반 총장의 인맥과 경력이 화려하지만 2012년 안철수 수준의 캠프를 자력으로 구성할 수 있을지, 자원봉사자들을 전국 단위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철수 캠프가 독자세력으로는 거의 최대치에 달하는 진용을 갖췄음에도 당시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과 맞대결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대선후보직을 사퇴한 뒤 문재인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게다가 독자세력화는 특정 시점에선 여야 가운데 어느 한쪽과 단일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반 총장이 이번 대선이 아니라 다음까지 볼 수 있다면, 3자 구도를 감수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자적으로 캠프를 꾸려 양당에 버금가는 세력과 지지율을 유지하고, 게다가 어느 한쪽과 단일화 승부에서 이긴다는 것 역시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정당 경선에 참여해 독자세력을 구축한 후 단일화를 모두 배제하고 본다면 반 총장에게 남은 경우의 수는 단 하나 개헌뿐이다. 그것도 내각제나 중임제가 아닌, 이원집정부제 개헌일 경우에만 반 총장과 접점이 생길 것이다.

    다른 경우의 수들에 비하면 개헌이 그래도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반 총장 본인이 개헌을 추동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이다. 먼저 청와대와 여당이 합의를 해야 하고, 그다음엔 야당의 반발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또 그다음엔 국민투표를 통과해야만 개헌이 가능하다. 게다가 ‘반기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명분이라면 그 개헌의 성사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경선이 됐건, 독자세력화가 됐건, 개헌이 됐건 반 총장은 스스로의 힘으론 대권에 가까이 가기 힘들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오직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만 설 수 있는 대권주자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한반도 급변 사태 등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늘의 뜻만으로 결정되는 대권은 없다.

    반기문의 걸림돌▼ 성적소수자 권익 보호의 딜레마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 대권주자가 되는 데는 유엔 사무총장 재직 경험 자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사실 반 총장은 국제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 유엔 사무총장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나 중동 문제에서 적극적 구실을 하지 못했고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도 없다. 하지만 단 하나. 국제적 평가를 받는 것은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적소수자의 인권 신장이다. 반 총장은 2015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헌장 채택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미국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어디서든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한 연방 대법원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우리는 매일 인종, 종교, 국적, 성별 혹은 성적 취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수호하고 있다”며 동성결혼을 지지했다. 유엔 사무처 내에서도 성적 소수자의 권익을 적극 보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보수기독교계와 호흡을 맞췄다. 반 총장의 성적소수자 옹호 면모가 주목받을 경우 보수층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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