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0

2016.03.23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누구의 적도 아니었던 사람의 죽음

기명신을 떠나보내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3-21 1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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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6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황망한 소식이 전해졌다. 인디레이블 러브락컴퍼니의 기명신 대표(사진)가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사고가 아니었다. 급환도 아니었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속적 의미에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인디신에서 그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음악계에 몸담기 한참 전부터, 나의 오랜 지인이기도 했다.
    2000년 초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꿈이라면 하나였다. 뭔지는 몰라도 넥타이를 매고 아홉 시에 출근해 여섯 시에 퇴근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막연하게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정도였다. 서울 신촌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김작가시죠?” 초면의 어색함 같은 건 전혀 없이, 마치 친구를 마주쳐 반가운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인터넷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랑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홍대 앞에서 이런저런 작은 공연 기획을 하고, 하이에나처럼 술자리를 찾아 헤매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약간의 곡절을 거쳐 우리는 함께하게 됐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도 없던 시절, 주변의 재미있는 친구들을 모아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출연진 중에는 홍대 앞 펑크 뮤지션이 꽤 있었다. 기명신은 나와 그랬듯, 그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음악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거부감 없이 확 가까워지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얼마 후 나는 회사를 떠났고, 회사도 곧 망했다. 그 후 자주 만나지는 않았어도, 뭔가 함께 할 만한 일이 있을 때 그는 내게 연락을 하곤 했다. 성사되는 일은 없었다.
    인터넷방송 PD, 방송작가, 전시기획사, 친환경기업 등 음악과 상관없는 삶을 살던 그가 갑자기 인디신에 몸담게 된 건 2009년 일이었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소속사와 결별했다. 밴드의 리더 이주현은 막막했다. 그는 나와 기명신이 몸담았던 인터넷방송에 출연한 걸 계기로 기명신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였다.
    기명신과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그렇게 만났다. 러브락컴퍼니의 시작이었다. 그 후 기명신은 깜짝 놀랄 만큼 빨리 인디신에 동화됐다.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음악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인디레이블 연합인 서교음악자치회의 초대회장을 맡았을 때는 그가 이 ‘바닥’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그에게는 음악계 사람이 대부분 갖고 있는 모난 구석이 전혀 없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어디서나 적극적이었다. 인디신으로 통하는 중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된 후에도 처음과 다름없이 쾌활하고 친절했다.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 아마 홍대 앞 역사에서 그렇게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에 이렇게 부쳤다. “인디신 최고의 조력자였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러브락컴퍼니 실장인 이성훈과 함께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South by Southwest) 페스티벌에 소속 밴드 피해의식을 보낸 후 한국 스태프에게 잘 부탁한다고 연락한 게 3월 15일 오후였다. 그랬던 그가, 왜 극단적인 결정을 했는지는 오로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랴. 부질없을 뿐이다.
    2014년이었을 거다. 어느 페스티벌 뒤풀이에서 고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작가야, 난 요즘 무척 행복해. 인디 쪽에서 일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우리가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의, 경망스러우면서도 사심 없는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친구를 떠나보내는 길에 바란다. 부디, 호도와 악의 없는 곳에서 즐거운 ‘또라이’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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