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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의 밥꽃, 목숨꽃 사랑 23

하늘을 향해 솟은 향기로움

고고함의 상징 잣꽃

  •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하늘을 향해 솟은 향기로움

하늘을 향해 솟은 향기로움

눈을 맞으며 푸르게 겨울을 나는 잣나무. 사진 제공·김광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나무 열매가 얼마나 될까. 손꼽아보면 참 많다. 이 가운데 우리 부부가 우선순위로 둔 게 한 글자로 된 나무들이다. 감, 밤, 배, 잣…. 이렇게 모아보면 괜히 한 글자가 아닌 거 같다. 우리 사람과 함께 오래 살아온 소중한 나무들이 아닌가. 이 때문에 한결 더 애정이 갈 밖에.
이들 한 글자로 된 나무 가운데 잣나무는 좀 독특하다. 감, 밤, 배나무는 속씨식물이지만 잣나무는 겉씨식물이다. 이 차이는 꽃을 중심으로 한 생식기관에 있다. 꽃이란 꽃술, 꽃잎, 꽃받침 그리고 씨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잣나무는 꽃가루는 있지만 속씨식물이 갖는 꽃술도 꽃잎도 꽃받침도 씨방도 없어 식물학에서 말하는 ‘꽃’이라 할 수 없단다.
식물학자이자 ‘꽃의 제국’을 지은 강혜순 교수에 따르면 잣나무 같은 겉씨식물의 꽃을 ‘암구화수, 수구화수’ 이렇게 부른단다. 그런데 이런 말은 아무래도 어렵다. 여기서는 잣나무의 특징을 이해하는 선에서 그냥 암꽃, 수꽃이라 하겠다.   



가지 꼭대기에 달리는 암꽃

꽃을 보려면 그 시기만 잘 맞추면 된다. 산수유꽃과 매화는 3월에, 자두꽃과 배꽃은 4월이면 볼 수 있다. 그럼, 잣나무 꽃은? 5월 하순쯤 잣나무 숲길을 거닐다 보면 연분홍으로 핀 수꽃이 그득하다. 꽃가루가 날리는 동안 비라도 오면 온갖 나뭇잎에 꽃가루가 묻어나고, 작은 웅덩이만 있어도 꽃가루들끼리 모여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니까.
그런데 암꽃은 어디 있지. 잣나무는 암수한그루라는데 아무리 나무를 둘러봐도 안 보인다. 같은 겉씨식물인 소나무는 암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 키 정도로 작은 소나무에도 암꽃이 피고, 한 그루 나무에도 아주 많은 암꽃이 여기저기 피니까.
여기 견주어 잣나무는 그 꼭대기에만 암꽃이 핀다. 게다가 꽃이 피려면 나이가 제법 돼야 한다. 도감에 따르면 암꽃은 12년쯤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단다.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25년 정도는 지나야 하고. 그러니 암꽃을 보자면 눈대중으로 나무 높이가 10m가량 자란 상태라야 한다.
나로서는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참 고민이었다. 암꽃을 찾으려 이리저리 산골을 누비며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모두 허탕. 며칠을 더 고민하다 나무를 오르기로 했다. 나는 시골서 자라, 나무 타는 걸 좋아한다. 뒷산에서 자라는 잣나무 가운데 오르기 좋은 나무를 골랐다.
잣나무는 맨 아래를 오르기가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오르기 좋게 곁가지가 잘 뻗어 있다. 중심 줄기에서 위로 가면서 40~50cm마다 지팡이 굵기의 가지가 중심 가지를 빙 둘러가며 자란다. 이 곁가지들은 보기보다 힘이 좋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결에 잣 향기

하늘을 향해 솟은 향기로움

1 잣나무 암꽃. 2 잣나무 암꽃은 맨 꼭대기에서 피기에 눈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3 잣나무 수꽃과 꽃가루. 4 잣 알갱이 하나에서 막 싹이 트는 모습. 사진 제공·김광화

가지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위로 갈수록 곁가지가 가늘어진다. 가지끼리 서로 엉겨 있어 올라가는 일 자체도 만만하지가 않다. 그러다 아래를 보니 아찔하다. 얼추 8m쯤 올라왔나 보다. 한 단씩 오를수록 긴장돼 손에 땀이 난다. 맨 꼭대기까지 1m 정도 남자, 이젠 나무 중심 줄기마저 휘청거린다. 위를 올려다보니 정말 그 끝에 뾰족한 그 무엇이 있다. 잣송이를 아주 작게 해놓은 모습. 이게 바로 암꽃이구나. 그 고고함이란! 나무 맨 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이 뾰족하게 피어 있다. 올려다보던 자세에서 다시 한 걸음 더. 이제 암꽃이 눈앞이다. 앙증맞다. 젓가락 굵기 정도에 길이는 2cm가 좀 안 되겠다.  
잣나무는 풍매화. 암꽃이 높다란 나무 맨 꼭대기에 있으니 바람이 잘 불어줘야 한다. 수꽃이 꽃가루를 날릴 무렵 바람이 세게 불수록, 사방팔방 위아래에서 불수록 수정이 잘될 것이다. 잣송이는 높은 곳에 서 자라는 만큼 귀하다. 또한 향기롭다. 잣송이만이 아니다. 나무 전체가 향기롭다. 잎도 줄기도 꽃가루도 향기롭다. 우리가 먹는 잣 알갱이는 또 얼마나 향기롭고 차지고 고소한가. 물냉면이나 식혜에 동동 띄운 잣은 군침을 돌게 한다.
내가 즐겨보던 ‘아나스타시아’라는 책은 잣나무에 대해 아주 특별하게 이야기한다.
‘잣나무는 오백오십 년을 살아. 수백만 개의 가느다란 잎사귀로 밝은 빛, 그의 모든 파장을 받아 저장하지. (중략) 우주에, 사람한테 그리고 지구상에 생장하는 모두한테 에너지가 부족할 때 내놓는 거지(후략).’
잣나무가 정말 그런지는 확인하는 게 쉽지 않지만 나무 쓰임새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 모든 쓰임새를 떠나 나는 그 향기와 고고함만으로도 잣나무를 우러러보게 된다.  





하늘을 향해 솟은 향기로움

잣송이 속 잣. 사진 제공·김광화

잣나무 :  소나뭇과로 늘푸른큰키나무. 20~30m 높이로 자란다. 추운 러시아에서 잘 자라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자란다. 꽃은 암수한그루로 5월에 핀다. 수꽃차례는 새 가지 밑에 5~6개 달리고, 암꽃차례는 새 가지 위쪽 끝에서 1~5개 달린다. 암꽃은 녹황색으로 피고, 수꽃은 분홍빛으로 피었다 노란 꽃가루를 날린 다음 점차 붉은색으로 바뀐다. 잣나무는 꽃이 피고 나면 열매는 그 이듬해 가을에나 다 영근다. 잣송이 하나에 80~100개쯤 씨앗이 들어 있다. 꽃말은 ‘만족’.





주간동아 2016.01.20 1022호 (p66~67)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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