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6

2023.02.10

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자 5000억 피해 ‘전액 반환’ 이끌어낸 법무법인 서정

獨 현지 조사로 국내 금융사 투자설명서 오류 증거 확보… 첫 ‘투자금 전액 반환’ 결정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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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3-02-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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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환 법무법인 서정 대표변호사. [동아DB]

    이석환 법무법인 서정 대표변호사. [동아DB]

    국내 투자자 2000여 명에게 약 5000억 원 피해를 끼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펀드 사건이 금융감독원(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권고에 따른 금융사의 투자금 전액 반환으로 일단락됐다. 우리은행은 1월 17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자사 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의 투자금 반환 결정으로 피해자 구제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앞서 NH투자증권, 현대차증권, SK증권 등 펀드 판매사도 투자 원금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법무법인 서정이 피해 구제를 이끈 이번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본다.

    투자자 2000명, 환매 중단에 5000억 원 날릴 뻔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11월 21일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한 분쟁 조정 신청 6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하고,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에 “투자 원금 전액을 투자자들에게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당초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안내한 독일 현지 시행사의 사업 이력, 신용도 등의 내용이 허위로 드러났고, 투자금 회수 구조에 문제가 있었으니 펀드 판매 계약 자체를 취소하라는 취지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현지 시행사 저먼프로퍼티그룹(GPG·옛 돌핀트러스트)이 “독일 정부가 문화재(헤리티지)로 지정한 수도원, 고성(古城) 등 부동산을 매입해 개발하겠다”며 내세운 금융상품이다. GPG가 발행한 전환사채(CB)에 싱가포르 반자란자산운용이 대출펀드를 조성했다. 국내 금융사 6곳이 2017년 4월~2018년 12월 투자자 약 2000명에게 독일 헤리티지 펀드 4835억 원어치를 판매했다. 금융사별 판매 규모는 신한투자증권(3907억 원), NH투자증권(243억 원), 하나은행(233억 원), 우리은행(223억 원), 현대차증권(124억 원), SK증권(105억 원) 순이다. 그런데 독일 현지 시행사의 파산으로 2019년 7월부터 환매가 중단되자 투자자들은 돈을 모두 떼일 위험에 처했다.

    노후자금 2억 원을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투자한 임 모 씨(64)는 “늦게나마 투자금을 돌려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마음이 허탈하다”며 “투자자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불면증은 그야말로 기본으로 앓고 있고 암에 걸린 이도 있다”고 토로했다. 임 씨는 금융사 직원들로부터 “GPG 신용등급이 BBB-로 한국 굴지의 모 반도체 기업 수준”이라거나 “GPG가 담보용 부동산을 충분히 확보해 원금을 날릴 우려가 없다”는 설명을 믿고 펀드에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고, 임 씨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환매 중단 사태로 수년간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 중에는 퇴직금이나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1억~3억 원을 투자했다 낭패를 본 은퇴자가 상당수다.

    법무법인 서정은 피해자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이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서정은 독일 현지 로펌과 코워크(co-work: 협업)를 통해 금감원의 판단을 돕는 사실관계를 다수 확인했다. 2월 7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정 사무실에서 ‘주간동아’ 기자와 만난 이석환 대표변호사는 “다른 펀드 사건으로 눈을 돌려봐도 투자금 전액 반환이 결정된 사례는 사실상 없다”면서 “독일 현지 로펌과 협업을 통해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금감원 측에 제시했고, 이것이 (금감원) 조사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검사 시절 이 대표변호사에겐 ‘금융 수사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대검 중수2과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다양한 특수, 금융범죄 수사를 도맡았고 제주지검장, 청주지검장을 지냈다.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법률자문관으로 파견돼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시장 흐름에도 정통하다는 평을 받았다.

    “獨 등기부등본 확인해보니 부동산 확보 부실”

    조남문 법무법인 서정 변호사. [동아DB]

    조남문 법무법인 서정 변호사. [동아DB]

    당초 독일 헤리티지 펀드 사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복잡한 사안이라 투자금 반환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적잖았다. 시행사가 독일에 있어 투자 계약 취소를 이끌어낼 증거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대표변호사는 금감원 증권감독국 선임조사역을 지낸 조남문 변호사와 함께 객관적 팩트를 찾는 데 주력했다.



    첫 단추는 사실 확인이었다.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사는 투자자에게 ‘투자설명서’를 제시한다. 금융상품 수익 구조를 설명하는 문건이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 측 투자설명서의 요지는 “GPG가 독일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을 받고 부동산 개발을 통해 펀드 원리금을 상환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금융사는 투자자에게 “독일 현지를 방문해 GPG가 확보한 부동산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법무법인 서정은 독일 로펌과 협업으로 GPG 측이 부동산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금감원 분조위가 “금융사들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판단한 데는 서정 측의 주장과 논거가 주효했던 것이다. 이 대표변호사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를 판매한 국내 금융사는 ‘사업에 성공하지 못해도 이미 확보한 부동산, 회사 자체 자산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서 투자자를 안심시켰으나 결과적으로 팩트가 아니었다”며 “독일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시행사가 확보한 부동산은 당초 밝힌 것에 비해 극히 일부였고, 재무제표 확인 결과 이미 몇 년 전부터 회사가 사실상 거덜 난 상태였다”고 말했다.

    로펌이 별도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고 외국 현지 조사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금감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금감원 입장에선 국내 로펌이 독일 현지 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에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가진 증거라곤 금융사로부터 받은 투자설명서 정도가 전부였다. 투자자 임 씨는 “‘증거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법무법인 서정이 증거를 열심히 수집하고 금감원과 피해자 사이에서 창구 역할을 잘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된 피해자 구제가 일단락됐지만 남은 과제도 있다. 법인의 피해는 아직 구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 법인보다 개인에 대한 배상이 우선시된다. 개인에 비해 법인은 전담 조직과 인력을 갖춰 투자 판단 능력이 크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어 금융당국이 ‘계약 취소’를 권고했다면 사정이 다르다는 게 법무법인 서정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조남문 변호사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 사건에서는 개인과 법인 투자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며 “향후 법인 피해자가 의뢰하는 사건에서도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 상품 위험성 제대로 확인하고 판매해야”

    향후 독일 헤리티지 펀드 사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남부지검은 해당 펀드를 판매했던 금융사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고소를 접수해 수사하고 있다. 이 대표변호사는 “아직 결과는 안 나왔지만 검찰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특히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부활해 펀드 관련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점도 피해자 구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금융사가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확인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펀드 판매 수수료만 받는 국내 금융사는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피해자들에게 수천억 원을 돌려줘야 하니 피해도 상당히 클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입장 아닌가. 마트 주인만 해도 상한 음식이나 작동 안 되는 물건을 팔아선 안 되는 게 상식이다. 그간 금융사가 판매 상품에 대해 오롯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없다시피 했다. 불완전판매라 해도 입증 책임은 피해자 측에 있어 사실 규명이 어려웠다. 금융사 책임이 인정돼도 투자금의 20~30% 반환에 그치기 십상이었다. 금융계 일각에는 문제 있는 상품을 팔고도 ‘수익 난 걸로 털고 가자’는 안이한 인식이 있는 듯하다. 금융사의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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