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3

2022.06.10

북한 핵보유국 인정으로 동북아 ‘판도라 상자’ 열리나

중·러 對北 제재 결의안 반대… 美 맞서 북한과 결속 강화 움직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6-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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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사진. [조선중앙통신]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28일과 30일 6차례 핵실험을 실시한 후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비난 결의안만 채택했을 뿐, 제재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결의안 채택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파키스탄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것은 인도 때문이며 미국 안보를 위협할 의도나 의지가 없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파키스탄과 협력이 필요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를 완전 해제했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중국과 러시아가 파키스탄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제재 조치에 동참하지 않은 점도 이유로 작용했다.

    핵보유국은 국제사회가 현행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인정한 나라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말한다. 또 파키스탄을 비롯해 인도와 이스라엘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된다. 이들 3개국은 애초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주변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핵을 개발했고 결국 국제사회에서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 북한도 이들 3개국처럼 핵보유국이 되려는 야심을 보여왔다.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면 핵 개발 때문에 가해지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된다. 북한이 핵실험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핵보유국 지위 획득하면 각종 제재 해제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가 5월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에 반대하고 있다. [유엔]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가 5월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에 반대하고 있다. [유엔]

    국제사회는 그동안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고자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포함한 미사일 7기를 발사한 데 이어 1차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같은 해 10월 14일 대북 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했다. 이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ICBM인 화성-15형 시험발사와 함께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인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결의 2397호까지 총 11차례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특히 유엔 안보리는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같은 해 3월 7일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 2094호에 “북한의 추가 발사 또는 핵실험 때 추가적인 중대한 조치(further significant measures)를 취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트리거(trigger)’ 조항을 포함했다. 트리거는 총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로, 특정 행동을 했을 경우 자동으로 그에 해당하는 추가 제재가 가해지는 일종의 자동 개입 조항이다. 이는 한마디로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으면 각국 동의를 구해 안보리 소집을 요구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안보리에 추가 대북 제재안이 회부되고 바로 추가 제재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등을 시험발사하는 추가 도발을 강행할 경우 안보리 제재 강도는 이전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5월 26일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대북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정족수(9표)를 넘긴 13개국의 찬성표를 받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안이 채택되지 못했다.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결의안은 북한이 5월 25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탄도미사일을 17차례에 걸쳐 시험발사하며 안보리 제재를 위반했기 때문에 상정된 것이었다. 특히 “북한이 ICBM을 쏠 경우 대북 유류 공급 제재 강화를 자동으로 논의한다”는 결의 2397호의 ‘유류 트리거 조항’이 근거가 됐다.



    유엔 안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유엔 헌장 제23조에 따라 안보리는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5개 상임이사국은 1945년부터 지금까지 임기 제한 없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안보리는 유엔의 6개 주요 기구 중 유일하게 회원국들에 이행 의무가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핵심 기구다.

    中, “미국이 북한 도발 부추겨”

    미 해군 핵항공모함 레이건호. [미국 해군]

    미 해군 핵항공모함 레이건호. [미국 해군]

    미국이 주도한 당시 결의안은 유류 수입 상한선을 연 400만 배럴에서 300만 배럴로,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50만 배럴에서 37만500배럴로 각각 줄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강도가 5년 전에 비해 조금 상향된 것임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미국은 한반도 상황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장기짝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누군가 다른 셈법에 따라 전쟁의 불길로 동북아와 한반도를 태우려 한다면 중국은 선택의 여지없이 단호하게 결단할 수밖에 없다”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장 대사는 한미 정상회담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북한 도발을 부추겼다고 강변했다. 중국이 북한의 명백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위반 행위에도 그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측에 비난 화살을 돌린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미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러시아도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려고 북한 편을 들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번 거부권 행사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전(前) 단계라는 것이다. 닐 와츠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위원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측에 ICBM 등 미사일 발사를 계속해도 괜찮다는 청신호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미국을 견제할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가 불가능하게 됐다”며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작은 희망마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수미 테리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핵문제에 레드라인(금지선)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해도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심화하는 현 정세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제재하는 어떤 결의에도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퉁차오 카네기칭화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군사력으로 북한의 핵능력 확보를 막을 시점이 이미 지났다고 보고 있다”면서 “중국은 북한 정권 붕괴로 난민 수백만 명이 자국 국경을 넘어오고 미국 지원을 받는 한국 정부가 한반도를 통일하는 상황을 더 최악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중국은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와 오커스(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협의체) 등으로 압박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 러시아·북한과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7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월 중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China Daily]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월 중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China Daily]

    북한 핵 보유 시 韓日도 핵 공유 가능성↑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자산 전개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에 대한 확장 억제 강화 등 강경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또 중국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와 기업, 은행 등에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독자적으로 러시아 극동은행과 스푸트니크은행에 제재 조치를 내렸다. 북한의 불법 금융 거래를 돕는 해외 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을 의무화한 ‘오토 웜비어법’에 따른 것이다. 극동은행은 북한 고려항공에, 스푸트니크은행은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금융 지원을 각각 해왔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묶어 3각 안보체제 구축에 나설 수도 있다. 미국 일각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한국, 일본과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무부 대북담당 특사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한국과 일본이 핵 보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비호로 자칫하면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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