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3

2021.11.05

화성에서 푸른 석양을 볼 그 날

[궤도 밖의 과학] 죽음의 땅으로 여겨지던 붉은 행성이 지구 대체재가 되기까지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1-11-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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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에서는 석양이 푸른색으로 보인다 .[사진 제공 · NASA]

    화성에서는 석양이 푸른색으로 보인다 .[사진 제공 · NASA]

    언젠가 인간이 더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지구가 황폐해진다면 우리는 결국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제2 지구를 찾기 위해 웜홀로 탐사선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다는 건 희망적이다. 바로 태양계 식구인 화성이다. 비록 지구의 절반만 한 크기에 질량도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자전 주기나 자전축 기울기까지 지구와 비슷하다.

    물론 화성이 처음부터 호감 가는 행성이었던 건 아니다. 표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산화철 성분의 흙 때문에 유난히 붉은빛을 띠는 화성은 고대인에게 공포심을 줬다. 성격이 다혈질인 사람은 화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오해마저 받았다. 다행히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미신이 아닌 과학에 의존하게 됐다. 네덜란드 천문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도 화성 표면을 그림으로 그렸고,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화성 자전축의 기울기와 대기의 존재를 알아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1877년 화성과 지구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맞춰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이전보다 더 상세한 화성 지도를 제작해냈다.

    화성 모습이 점차 선명하게 그려지자, 미국 천문학자이자 사업가 퍼시벌 로웰은 사비를 털어 천문대를 지었다. 그는 인위적 냄새를 풍기는 화성 운하를 관측했고, 이것이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후 오랫동안 화성인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지만, 아무리 좋은 망원경을 사용해도 여전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직접 가서 확실한 증거를 보고 올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인류는 화성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계곡, 협곡 흔적 발견

    1997년 패스파인더와 탐사선 소저너가 성공적으로 화성에 안착했다.[사진 제공 · 20세기 스튜디오]

    1997년 패스파인더와 탐사선 소저너가 성공적으로 화성에 안착했다.[사진 제공 · 20세기 스튜디오]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내공을 쌓아가던 미국은 매리너 4호를 발사해 화성 사진을 찍었는데, 아주 좁은 영역이었지만 충격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매우 낮은 대기압은 그렇다 쳐도, 수많은 분화구와 바위, 그리고 말라버린 표면 사진은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황폐한 죽음의 땅을 보여줬다. 포기하지 않고 매리너 9호가 다시 화성 주위를 돌기 위해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화성 표면 대부분을 지도로 만들었다. 넓게 보니 삼각주처럼 물로 인해 만들어진 지형이 있었고, 구불구불한 수로나 계곡, 협곡 흔적도 발견됐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성과에 다시 희망 고문을 당하며, 이번엔 생명체 탐사를 주 임무로 하는 바이킹 1호가 출동했다. 지구와 화성 사이 먼 거리로 통신을 주고받는 시간이 지연되다 보니, 대기권 진입 후 표면에 착륙할 때까지 탐사선은 홀로 모든 과정을 해내야 했지만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생명체 흔적이나 존재 징후는 찾지 못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상한 기체를 발견한 게 전부였다. 뒤를 이어 바이킹 2호 역시 화성의 지진 활동을 감지하고 화성 위성인 데이모스 사진을 최초로 찍는 데 성공했지만, 화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탐사선의 본질적 임무는 여전히 진전이 없었다.



    이후 사실상 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화성 탐사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과거와 달리 ‘가성비’를 따지게 된 것이다. 혁신을 위해 젊은 과학자들로 조직을 구성해 불필요한 업무 대신 효율성을 따지면서 시작한 첫 번째 임무가 ‘패스파인더’였다. 정신 나간 계획이라고 비난받으면서도 수십 개 에어백을 이용한 혁신적인 착륙 방법을 시도했다. 결국 1997년 패스파인더와 자그마한 첫 번째 이동식 탐사선 소저너가 성공적으로 화성에 발을 디디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패스파인더와 느리지만 분주히 움직이는 소저너는 과거 화성이 따뜻했고 여러 번 대홍수가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산소 자급자족도 가능

    화성 얼음 사진([사진 제공 · NASA]

    화성 얼음 사진([사진 제공 · NASA]

    유럽우주국(ESA)도 처음으로 화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성 주위를 도는 마스 오비터와 착륙선 비글 2호로 구성된 마스 익스프레스를 발사했는데, 비글 2호는 착륙 직후 실종됐으나 마스 오비터는 화성 남극의 얼음과 대기 중 메탄을 발견했다. 메탄은 햇빛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금방 사라지는데, 이게 남아 있다는 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라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사이 미국은 쌍둥이 화성 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준비했다. 착륙 직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목표 수명을 훌쩍 넘어 물의 존재를 알리는 수많은 사진과 분석된 정보들을 지구로 보내줬다. 혹시나 실수로 발동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임무 종료 기능 자체를 넣지 않았는데, 바퀴 한쪽이 고장 나 전진이 어려워지자 후진으로 탐사했고, 아예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멈춰 서서 완전히 통신이 중단될 때까지 인류를 위해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의 끈기와 열정은 만화나 소설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개돼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이어 미국에서 네 번째 화성 탐사차 큐리오시티가 발사됐다. 큐리오시티는 장착된 드릴로 암석을 뚫어 지표 아래 물이 흐른 흔적을 발견했다. 로봇 팔 끝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셀카를 찍거나 더욱 자유롭게 화성을 촬영하기도 했고, 상층운이 생기기 힘든 화성 환경에서 일몰 직후 높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메탄 배출량[사진 제공 · NASA]

    메탄 배출량[사진 제공 · NASA]

    최근에는 퍼서비어런스라는 화성 탐사차가 2월 화성 궤도에 진입했으며, 생명체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예제로 분화구에 착륙했다. 4월에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장비를 이용해 화성 대기에서 산소를 뽑아내는 실험에 처음 성공했는데, 우주비행사 한 명이 10분 동안 호흡할 수 있는 산소를 한 시간 동안 뽑아냈다. 드디어 산소 자급자족 시대가 열린 것이다. 퍼서비어런스와 함께 도착한 인제뉴어티라는 소형 무인헬리콥터는 화성 지상에서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인류가 만든 동력 비행기가 지구 밖 천체에서 비행한 최초 기록을 남겼다. 이번 무인헬리콥터의 첫 비행 성공은 관측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으며, 향후 화성 탐사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성과였다.

    과거 일부 국가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던 화성 탐사에 이제 몇몇 나라가 눈을 돌리고 있다. 여전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도 화성 궤도선 망갈리얀(Mangalyaan) 이후 아랍에미리트(UAE)도 아말(Amal)이라는 화성 탐사선을 발사했고, 중국도 하늘에 묻는다는 의미의 텐원(天問) 1호를 성공적으로 화성 유토피아 평원에 착륙시켰다.

    인간이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2월 화성에 착륙한 미국 탐사선 퍼서비어런스.[사진 제공 · NASA]

    2월 화성에 착륙한 미국 탐사선 퍼서비어런스.[사진 제공 · NASA]

    꾸준히 화성을 향해 탐사선이 날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유인 탐사는 쉽지 않은 과제다.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화성행 편도 승차권을 준비한 기업도 있었지만 부족한 예산 및 기술력 등 여러 문제로 파산했다. 현재 화성 탐사는 과거 달 탐사처럼 단순히 미지의 땅을 밟는 호기심 수준을 넘어, 언젠가 인류 피난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큰 화성이지만, 현재 화성의 환경은 생명체에게 매우 혹독하다. 방사선이나 모래폭풍은 어떻게든 견딘다 해도, 대기의 95%가 이산화탄소라 일단 호흡부터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이 중요하다.

    화성에서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 그리고 따뜻한 기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SF에나 등장할 법한 비현실적 연구로 보이기도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구체적인 가능성과 한계를 제시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대기를 조성하기 위해 암모니아와 물이 풍부한 소행성에 로켓을 달아 화성에 충돌시키자는 아이디어부터, 수많은 핵미사일을 화성 극지방에 떨어뜨려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자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은 대형 반사경을 설치해 극한의 추위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화성 궤도에 거대한 반사경 수백 개를 이어 붙여 태양에너지를 반사하면 일부 지역 표면온도를 20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지구처럼 식물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생성하는 것인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고작 상추를 키우는 데도 많은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만만치 않다.

    테라포밍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이 2012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화성의 대기압을 높이는 데 90년, 얼어 있는 빙하를 녹여 물을 얻는 데 120년, 행성 기온을 올리는 데 150년, 식물을 심고 키우는 데 50년, 화성 정착지 건설에 70년 등 다 더하면 총 480년이 소요된다. 사실 화성에 인류가 거주한다는 건 여전히 해결할 문제가 많아 불가능에 가깝다. 지구가 황폐해진다면 차라리 사막이나 극지방, 혹은 바닷속에 인간 거주지를 만드는 게 현실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심각한 상황에서 매우 적은 가능성을 찾아냈다. 아직 범지구적 기후 문제가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위기의식을 가지고 지금처럼 화성 탐사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푸르게 노을 지는 화성에 서서 붉은 노을을 그리워하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인터스텔라’의 브랜드 박사가 에드먼즈 행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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