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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전철 밟는 중국은 실패한다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中, ‘제국의 책임감’ 역설 쑨원에 귀 기울여야 …“약소민족 도와야 치국평천하”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제국주의 전철 밟는 중국은 실패한다

신해혁명으로 
근대 중국을 건설한 쑨원(孫文). [위키피디아]

신해혁명으로 근대 중국을 건설한 쑨원(孫文). [위키피디아]

정치적 의미에서 중국의 20세기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시작됐다. 쑨원(孫文·1866~1925)은 신해혁명으로 청조를 무너뜨리고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세운 주역이다. 국민당과 중화민국을 만들어 근대 중국을 열어젖혔다. 현대 중국에서 쑨원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혁명의 상징으로 통한다.


민족·민권·민생 삼민주의

마오쩌둥과 차이점은 쑨원이 타이완과 홍콩에서도 국부로 추앙받는다는 점. 쑨원은 중국공산당에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걸출한 지도자다. 타이완 국민당 정권에는 당 창시자이자 정통성의 상징이다. 홍콩에서는 광둥성 출신으로 서의서원(西醫書院: 현 홍콩대 의과대학) 1기생인 쑨원을 홍콩인으로 본다. 21세기 ‘중국몽(中國夢)’을 표방한 시진핑 체제에 쑨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100년 전 세계 질서의 재편 속 쑨원은 당대 중국 운명을 결정했다. 쑨원의 정책과 사상을 지금 재음미해야 하는 이유다. 

쑨원 사상의 총집약체는 민족(民族)·민권(民權)·민생(民生) 삼민주의(三民主義)다. 그는 1905년 일본에서 결성된 동맹회 기관지 ‘민보(民報)’ 창간사를 통해 민족·민권·민생 3대 주의를 처음 제시했다. 민보 제1호 첫머리 도판에 ‘중국 민족의 개국시조 황제’ ‘세계 제일 민권주의 대가 루소’ ‘세계 제일 공화국 건설자 워싱턴’ ‘세계 제일 평등박애주의 대가 묵자(墨子)’의 초상도 함께 실어 삼민주의를 이미지로도 표현했다. 

쑨원 사상을 분석해보면 근대 중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구상이 교차한다. 당장 국민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동시에 먼 미래 중화제국을 다시 꿈꾸는 이중성이 공존한다. ‘헌정(憲政) 질서로 도약’과 ‘제국의 책임감’은 20세기 중국 지도자들의 사고를 관통한다. 쑨원은 신해혁명으로 근대 중국을 열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1949년 신(新)중국을 선보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무위지치(無爲之治)로 중국을 잘살게 만든 주인공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봤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중국사의 새 이정표를 세우려면 앞선 지도자들처럼 현실에 발 딛고 50~100년 미래 가치를 준비해야 한다. 

중국에서 종교를 대신하는 최종 심급은 ‘역사의 포폄’(褒貶: 시비·선악에 대한 평가)이다. 지금처럼 사상·언론을 통제하고 ‘강한 중국’(super China)만 추구해서는 후대 역사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지금은 유교 부흥과 흉노 정벌로 ‘팍스 시니카’를 이룩한 한나라 무제(武帝)의 시대가 아니다. 현 중국 판도를 사실상 완성한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시대도 아니다. 부강을 추구하되 부강을 초월한 가치, 즉 현대 중국을 위한 ‘헌정의 기획’이 나와야 한다.




‘당이 통치하는 나라’ 중국

지난해 5월 
20일(현지 시각)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 총통이 타이베이 총통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쑨원 초상화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해 5월 20일(현지 시각)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 총통이 타이베이 총통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쑨원 초상화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AP=뉴시스]

쑨원은 정치가 군정(軍政), 훈정(訓政), 헌정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봤다. 각각 군치(軍治), 당치(黨治), 법치(法治)에 대응하는 정치 단계다. 군정은 계엄 상태에 버금가는 혼란기에 필요한 통치 형태다. 훈정은 인민을 근대적 시민으로 교육하고 정치의식을 고양하는 단계다. 헌정은 헌법에 따라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들의 투표로 공화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2013년 시진핑 집권 당시 광저우 언론 ‘난팡르바오(南方日報)’는 ‘입헌제를 꿈꾸며’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놓았다. “헌정을 실시하고 국가 권력에 대한 감시체계가 작동해야 국민이 권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대는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이 사설은 시진핑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남쪽에서 불어온 훈풍은 베이징에 도달하기 전 이렇게 식어버렸다. 

중국공산당은 현 시대를 훈정기로 보는 듯하다. 1987년 자오쯔양(趙紫陽)이 밝힌 “‘사회주의 초급 단계’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부터 100년간 필요하다”는 발상과도 통한다. 신해혁명 후 쑨원이 세운 정부의 최대 정치적 과제는 주권재민의 국민국가 창출이었다. 당대 중국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목표를 이루고자 ‘정당이 국가를 통치(以黨治國)’하는 정치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이는 곧 국가 통합 원리로서 훈정적 국민주권제로 귀결됐다. 당이 국가와 국민을 가르치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의 당국체제(黨國體制·party-state system)도 여기서 비롯됐다. 중국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당이 국가를 창출하는 정당국가(party-state) 시스템에 따라 운영돼온 셈이다. 

오늘날 쑨원을 사회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은 정치혁명뿐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삼민주의의 한 축인 민생주의가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미래 가치로 조명됐다. 민생주의는 균등한 토지 소유권을 뜻하는 ‘평균지권(平均地權)’으로 구체화돼 당대 강력한 변혁 슬로건으로 자리매김했다.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쑨원은 소련 외무부 대표 아돌프 이오페와 ‘쑨원-이오페 선언’을 발표했다. 중국 국민당과 소련 간 협력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듬해 쑨원은 소련과 연합하고(聯蘇), 공산주의 주장을 수용하며(容共), 노동자와 농민을 돕는다(扶助農工)는 내용을 추가해 신(新)삼민주의를 탄생시켰다. 이는 국공합작(國共合作)의 토대가 됐다. 

21세기 중국에서 쑨원의 ‘왕도문화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24년 쑨원은 일본 고베에서 ‘대아시아주의’를 주제로 연설했다. 무력에 기초한 서양의 패도(覇道)에 맞서 동양 각국이 연대해 도덕 중심의 왕도(王道)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대아시아주의는 중국과 비(非)중국 아시아 국가의 시각차가 큰 사상이다. 오늘날 중국의 ‘네오 시노센트리즘’(neo-sinocentrism: 신중화주의)이나 현대판 ‘조공 체제’ 모델 구상의 사상적 원천이기도 하다.


서양 패도에 맞선 동양 왕도

쑨원도 제국을 꿈꿨을까. 그는 티베트, 몽골뿐 아니라 타이, 버마, 부탄, 네팔 등을 중국 지배하에 둬야 한다고 봤다. “우리 (중국) 4억 인은 매우 평화롭고 문명적인 민족이다. 중화제국의 전통을 지킨 덕에 동남아시아 소국들은 중국에 조공하고 귀화하고자 했다. 그들이 중국 문화를 흠모했을 뿐, 무력으로 굴복시킨 것이 아니었다”며 왕도문명 실현을 그 명분으로 삼았다. 다만 쑨원은 삼민주의 중 민족주의를 설명하면서 “만일 중국이 힘을 키우고 열강의 제국주의를 배워 다른 나라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그들의 실패한 자취를 뒤쫓는 것”이라며 “약소민족이 (오늘날 중국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면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이뤄진다”고도 지적했다. 

1924년 쑨원은 당시 중국을 식민지만도 못한 차식민지(次植民地)로 규정했다. 차식민지의 중국인 4억 명이 책임 주체로서 우뚝 서야 참된 민족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100년 전 중국 정치 발전의 미래와 제국으로서 책임을 역설한 쑨원. 시진핑 시대 중국이 진정한 G2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그의 사상을 되새겨야 한다.

조경란 교수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중국현대사상·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신좌파·자유주의·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전통·근대·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주간동아 1282호 (p40~42)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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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5호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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