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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586, 조선 말 친중 위정척사파 닮았다”

“코리안, 왓츠 댓(Korean, What’s that)?”  … 한국 · 한국인 천착 함재봉 박사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집권 586, 조선 말 친중 위정척사파 닮았다”



“진짜 ‘헬조선’ 조선 말기, 개신교는 조선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번영은 개신교라는 외부 자극을 받은 조선 사람이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과감히 수용해 한국 사람으로 거듭났기에 가능했다.” 

함재봉(63) 박사는 조선 말기 혼란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역사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함 박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유네스코(UNESCO) 사회과학국장,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을 지낸 정치학자다. 최근 20년 동안 그의 화두는 ‘한국·한국인이란 무엇인가’였다. 국내외 방대한 자료를 통섭한 ‘한국 사람 만들기’는 필생의 역작이다. 2017년 1권 ‘친중(親中) 위정척사파’, 2권 ‘친일(親日) 개화파’를, 최근 3권 ‘친미(親美) 기독교파 1’을 출간했다. 신간 ‘친미 기독교파’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 개신교의 역할을 조명했다. 1·2권 각각 500쪽, 3권은 1000쪽에 달하는 거질(巨帙)이다. 앞으로 ‘친소(親蘇) 공산주의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도 다룰 예정이다.


함재봉 박사. [박해윤 기자]

함재봉 박사. [박해윤 기자]

조선 말기 혼미(昏迷)야말로 ‘헬조선’

그는 “지금 대한민국은 지도층이 세계 정세에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점에서 조선 말기와 닮았다”며 “폐쇄적·인종적 민족주의에 빠져 친중·친북 노선을 걷는다면 국가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2월 2일과 16일 두 차례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함 박사를 만나 한국·한국인은 무엇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물었다. 

‘한국 사람 만들기’ 연구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1966년 아버지(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로 순직한 함병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가 교환교수로 부임해 미국에 처음 갔다. 또래 미국 아이들이 나를 보고 ‘차이니즈’(chinese: 중국인), ‘재퍼니즈’(japanese: 일본인)라더라. 나는 ‘코리안’(korean: 한국인)이랬더니 ‘왓츠 댓’(What’s that: 그게 뭐냐)이라고 되묻더라. 강렬한 경험이었다. 코리안이 미국에 살면 ‘재미동포’, 중국에 살면 ‘조선족’, 중앙아시아에 살면 ‘고려인’ 아닌가.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이들을 모두 하나로 엮을 수 있을까, 한국과 한국인이 무엇인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그 전에 조선 사람이란 무엇인가. 

“조선 사람도 조선 왕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종대왕은 성리학적 가치관에 따라 국가 시스템을 바꿨다. 고려시대까지 ‘장가가던’ 사회를 ‘시집가는’ 사회로 바꾸는 등 백성의 삶까지 성리학적으로 규율했다. 유교적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지배하는 조선과 조선 사람이 탄생했다. 조선 말기 혼란으로 이런 정체성이 흔들렸다. 1919년 고종의 인산(因山)을 계기로 3·1운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국권 회복’을 부르짖을 뿐, 왕조 부활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만큼 조선 왕조의 통치가 끔찍했던 것이다.” 

함 박사는 조선 말기 혼미(昏迷)를 ‘헬조선’이라고 표현했다. 헬조선은 헬(hell: 지옥)과 조선(朝鮮)을 합쳐 ‘한국이 지옥처럼 희망 없는 사회’라고 자조하는 신조어다. 그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조선 말 백성들은 진짜 헬조선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힘 있는 양반이 비옥한 땅을 모두 차지하고 세금도 내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백성을 위해 제대로 구실하지 못했다. 의료체계가 무너져 병든 백성은 미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비(非)양반과 여성은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고 박해받았다. 이런 열악한 현실은 개신교가 대다수 보통 사람에게 호소력을 갖는 배경이 됐다.”


제 손으로 지도자 뽑은 조선개신교인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慕華館) 앞 영은문(迎恩門·왼쪽)을 헐고 1896년 세운 독립문(獨立門). [동아DB]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慕華館) 앞 영은문(迎恩門·왼쪽)을 헐고 1896년 세운 독립문(獨立門). [동아DB]

개신교는 한국 사람 만들기에 어떤 역할을 했나. 

“서양인 개신교 선교사들은 무작정 종교만 전파하지 않았다. 신분·성차별을 뛰어넘어 신 앞에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봉건적 관습을 타파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근대적 의료 기술로 조선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교회에서 근대적 제도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조선 사람의 첫 선거는 1948년 제헌의회 선거가 아니었다. 장로교가 조선에 전파된 후 조선인 신자들은 자기 손으로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長老)를 뽑았다. 교회 공동체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경험한 것이다.” 

개신교의 중요성을 과장한 것 아닌가. 

“‘친미 기독교파’라는 신간 부제를 보고 기독교, 특히 개신교도를 위해 쓴 책으로 착각하기도 한다(웃음). 결코 아니다. 개신교가 조선에서 근대적 인간이 등장하는 데 어떻게 일조했는지 분석했을 뿐이다. 칼뱅주의 영향 속에서 개신교를 수용한 사회는 자유주의 정치와 시장경제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이 대표적 사례다. 19세기 말 형성된 조선의 친미 기독교파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 건국까지 이 땅에 근대성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조선 말기부터 해방 공간까지 다양한 이념이 경합했다. 

“그렇다. 조선·조선인이 한국·한국인이 되는 과정에서 크게 5가지 국가·인간 유형이 있었다.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의 뼈대이기도 하다. 첫째는 친중 위정척사파였다. 기존 조선의 가치관을 고수해 중국 문명을 가치 기준으로 세웠다. 둘째는 일본 근대화에 주목한 친일 개화파였다. 셋째가 친미 기독교파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자유주의·자본주의에 우호적이었다. 넷째로 친소 공산주의파는 말 그대로 공산주의자로서 소련 중심의 국제 사회주의 노선을 신봉했다. 마지막은 인종적 민족주의파다. 혈통 중심 민족주의로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대목에서 함 박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친중 위정척사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586 운동권 출신 지도층의 폐쇄적 세계관을 보면 조선 말기 망국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짚었다. 

586세대 지도층의 어떤 점이 문제인가. 

“586세대는 1980년대 민주화를 울부짖었다. 상당수는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이념 투쟁에만 골몰했다. 심지어 북한을 신봉하는 주체사상에 빠지기도 했다. 586세대 정치인들이 그런 이념을 버렸어도 젊은 시절 익힌 편협한 세계관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조선 말 친중 위정척사파의 협애한 가치관과 닮은꼴이다. 여기에 인종적 민족주의까지 결합했다.” 

친중 위정척사파에 인종적 민족주의파가 결합했다? 

“미국·일본에 대한 반감, 중국·북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그것이다. 지금 남북한이 하나라고 볼 근거는 이른바 ‘피(血)’밖에 없다. 이념과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 북한은 지금도 한국을 핵폭탄으로 말살하겠다고 벼른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통일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보고 북한 정권에게 뭔가 베풀고 싶어 한다. 인종적 민족주의의 폐해다. 중국에 굴종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친중 위정척사파와 같은 현실 오판이다.”


“시진핑의 중국, 10월 유신 후 한국 같은 상황”

오늘날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인데. 

“미·중 갈등 속 한국은 결국 미국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한국인의 근간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모두 미국식 모델이다. 미국은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시장경제를 지켜주지 않나. 중국은 결코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보면 1972년 10월 유신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국가 주도로 산업화에 성공한 지도자는 독재 유혹에 빠진다.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목숨을 잃고 유신 체제도 붕괴했다. 지금 중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적 자유에 대한 열망을 무시하면 국가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 지도자들은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떤 선택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





주간동아 1277호 (p6~8)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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