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6

2020.11.27

감방보다 열악한 잠수함, 승조원 떠나는데 ‘쥐꼬리’ 수당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1-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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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해군의 최신예 3700t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급. [동아DB]

    우리 해군의 최신예 3700t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급. [동아DB]

    유령함대(Ghost Fleet). 미 해군이 2025년 창설을 목표로 추진 중인 미래 무인 함대의 개념이다. 작전을 수행해야 할 바다는 넓고, 적들은 강해지는데 전투함의 수를 필요한 규모만큼 확대할 수 없는 미 해군이 내놓은 대규모 무인 함대가 바로 유령함대다. 

    미 해군의 유령함대는 다양한 유형의 무인 함정(Ship)으로 구성된다. 미사일을 싣고 수상 전투를 수행하는 무인 수상전투함부터 잠수함을 잡는 무인 대잠전투함, 정찰이나 보급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지원함도 개발 중이다. 미군은 이러한 무인 함정을 200척 이상 건조해 오는 2045년까지는 전체 함대 규모를 500척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이른바 ‘배틀포스 2045(Battle Force 2045)’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배틀포스 2045 계획

    유령함대 계획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해군은 미군보다 먼저 유령함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형 유령함대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구축되고 있다. 그런데 이 ‘한국형 유령함대’는 미국의 유령함대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군 유령함대는 무인 전투함을 이용해 적과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진짜 유령함대’지만, 대한민국 해군의 유령함대는 배는 있는데 사람이 없어 배가 마치 유령선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가짜 유령함대’로 불릴 정도다. 

    올해 기준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정원은 약 7만 명이다. 이 가운데 해병대 2만9000여 명을 빼면 4만1000명이 순수 해군이다. 당초 해군은 장기 계획을 짜면서 군함의 대형화와 입체 전력 건설에 따른 추가 병력 소요를 고려해 정원을 늘리려 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수준에서 동결된 후 단 1명의 정원도 늘리지 못했다. 그 사이 온갖 부대가 새로 창설되거나 확대 개편됐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형화된 군함들이 다수 전력화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단 1척도 없었던 잠수함은 이제 20여 척으로 늘었고, 대형 구축함도 12척, 호위함 14척, 초계함 12척, 유도탄 고속함 18척 등의 수상함 전력에 2척의 대형 강습상륙함, 대형 군수지원함은 물론 다량의 항공기를 운용하는 항공부대까지 만들어졌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군함과 새로 도입되는 항공기에 배치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심각한 인력난 때문에 해군은 지난 10여 년간 육상 근무 요원을 대폭 줄여 함정 근무로 돌리고, 비전투 분야 인력을 군무원으로 바꾸거나 보급과 군수·정비 등의 분야에서 외부 용역을 확대하는 등 군함에 태울 병력을 염출하기 위해 그야말로 발악에 가까운 노력을 해 왔다. 해군본부 등 육상 행정부대는 사람이 없어 야근이 일상화됐고, 함정 탑승 요원들도 자리를 비웠을 때 임무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보니 휴가나 외부 교육 파견 등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선 간부들의 피로도는 한계치에 와 있고,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인력난이 심각한 분야가 있다. 바로 잠수함이다. 잠수함 근무는 다른 군함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적 숙련도와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근무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다.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선진국들은 잠수함 승조원에게 상당히 높은 수당과 진급 가산점을 제공하며 잠수함 요원을 유지한다. 

    미국의 경우 소위(O-1) 기준으로 항해수당과 별개로 월 230달러의 잠수함 수당을 지급한다. 이 수당은 잠수함에 근무한 연차에 따라 증가하는데, 잠수함 장교로 근무한지 18년차 정도 되어 중령급 함장이 되면, 월 835달러의 잠수함 수당이 지급된다. 계급 및 항해수당과는 별도로 잠수함에 근무한다는 조건에 대한 수당이다. 

    미군 잠수함 장교는 진급에 대한 처우도 좋은 편이다. 당장 우리 한반도를 담당하는 미군 최대의 전방 함대인 제7함대 사령관 윌리엄 머즈(William R. Merz) 제독(중장)이 잠수함 장교이고, 잠수함 장교가 갈 수 있는 4성 장군 보직도 많다.

    세계 최강의 잠수함 대국

    가까운 일본 역시 잠수함에 대한 처우가 좋다. 일본은 잠수함 승조원에게 호봉의 45.5%에 해당하는 잠수함 수당을 지급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소위에 해당하는 삼등해위(三等海尉)의 경우, 월급이 29만3000엔인데, 잠수함을 타면 매월 잠수함 수당으로만 13만3300엔이 지급되는 것이다. 

    해상자위대 잠수함 장교는 진급도 잘 된다. 잠수함대사령관(潜水艦隊司令官)은 당연직으로 잠수함 장교가 보임되며, 계급은 우리나라의 중장에 해당하는 해장(海將)이다. 물론,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해상막료장(海上幕僚長)까지 진급할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의 잠수함 대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들이다. 미국은 핵잠수함으로 5대양을 지배하고 있고, 일본은 재래식 잠수함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최강의 수중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나라다. 

    한국도 국가 전략자산으로서 잠수함 전력을 급속히 확충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1993년, 최초의 잠수함인 장보고함을 취역시킨 이래로 현재 18척의 잠수함을 실전에 배치했고, 3700t급 대형 잠수함 2척을 진수해 전력화를 앞두고 있는 잠수함 대국이다. 그러나 다른 수상함들이 인력이 없어 ‘유령함대’가 되어가는 것처럼 잠수함 역시 인력이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잠수함을 띄우지도 못할 판이다. 

    잠수함은 보안 등급이 높은 전략자산이고 근무 강도가 높기 때문에 승조원 전원이 직업군인인 간부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잠수함을 움직이는 부사관은 매년 100명이 잠수함 요원으로 양성되지만, 2명 중 1명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수상함 근무나 육상 근무를 신청하거나 아예 군을 떠나고 있다. 

    잠수함 근무는 힘들기로 악명이 자자해 지원하는 사람도 없다. 지난해 해군은 장교와 부사관 176명을 잠수함 요원으로 선발하려 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확보한 인원은 116명에 불과했다. 얼마 없는 인원을 가까스로 붙잡아 연간 100명의 잠수함 요원을 양성해 내면, 이 가운데 절반은 잠수함을 떠난다. 

    잠수함 부사관의 전직은 연평균 50명 정도고, 많을 때는 1년에 67명이 잠수함 근무를 기피하고 전출 또는 전역 신청을 한다. 우리 해군의 최신예 3700t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급의 승조원이 50명이므로 매년 잠수함 1척에 해당하는 부대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이 못 버티고 잠수함을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근무 환경은 정신 질환이 생길 정도로 열악하지만, 처우는 형편없기 때문이다. 

    잠수함은 창문 없는 감방이다. 한번 출항하면 거대한 쇳덩이 안에서 전혀 밖을 보지 못하며, 바깥 공기를 맡는 것도 불가능하다. 출항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3~4주간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상태에서 햇빛과 바깥 공기로부터 완전하게 차단돼 교도소 독방보다 좁은 공간을, 그것도 여러 명이 함께 써야 하는 극단적인 환경에 갇힌다.


    잠수함 항해수당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우 높고, 물속에서 3차원 기동이 일상이기 때문에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비좁은 공간에서 근무와 식사, 취침 등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불을 피우지 못하기 때문에 식사 메뉴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씻는 것은 사치다. 

    감옥보다 못한 이런 환경 속에서 근무한 잠수함 요원들이 받는 수당은 ‘잠수함 항해수당’ 명목으로 1일에 1만원이다. 앞서 소개한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면 하루 1만원을 더 준다고 하면 과연 누가 잠수함에 타려고 하겠는가? 

    잠수함 근무는 미래성도 없다. 일반 수상함 항해장교로 근무하면 사성 장군을 달고 해군참모총장이나 합동참모의장도 노려볼 수 있지만, 잠수함 장교는 잠수함사령관, 별 두 개가 끝이다. 진급 자리도 많지 않아 다른 수상함 항해장교보다 진급도 어려운 편이다. 근무 환경은 극도로 열악한데 수당도 적고 진급의 기회도 적다면 과연 누가 잠수함에 타려고 하겠는가. 

    잠수함 기피 현상이 심해 인력 유지가 어려워지자 국방부는 1일 1만원인 잠수함 항해수당을 1일 3만원 수준으로 인상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국방부가 이러한 요청을 한 데는 배경이 있었다. 현 정부가 수중 전력을 비대칭 전력으로 중시하며 챙기는 분위기였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핵잠수함을 추진하는데 잠수함 전문인력 유지가 중요하다는 명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 수당을 정하는 인사혁신처는 국방부의 이 같은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공무원, 다른 군 장병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군이 요구한 3배 인상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대신 제안한 것은 1000원 인상이었다. 하루 1만원인 잠수함 항해수당을 1만1000원까지는 올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핵잠수함을 이야기하는데, 일선에서는 당장 잠수함을 굴릴 인력이 없어 난리이고, 그 인력 확보를 위한 처우 개선에 어뢰 1발 값도 안 되는 연 18억 원을 요청했는데 형평성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이 정부다. 정말 형평성을 따진다면 ‘칼출근’과 ‘칼퇴근’을 하며 안락한 사무실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는 사람들 수당을 잘라서 햇빛 한줄 안 들어오는 심해 속 강철통 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며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맞지 않겠나. 이런 나라에서 전략자산 운운하고, 국가안보를 논하는 것이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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