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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 軍 투입 후에도 시위대에 약탈당했다

美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교민이 전하는 공포…“강도가 현금과 자동차 빼앗아갔다”

  •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LA 한인타운, 軍 투입 후에도 시위대에 약탈당했다

5월 27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5월 27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도심 곳곳의 가게가 약탈당하고, 무장한 군인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저는 밖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벌벌 떠느라 잠을 설쳤습니다.”(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인 교민 황지연(32) 씨)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자 미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미 당국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며 상점 털이를 서슴지 않는 시위대에 대응해 주(州) 방위군을 투입하고 전투헬기까지 동원했다. 

시위대의 폭력은 백인만을 향하지 않아 한인 상점도 피해를 입었다. 6월 2일 외교부는 필라델피아, 미니애폴리스, 롤리, 애틀랜타 등에서 총 79건의 한인 상점 피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집 밖으로 나가면 시위대로 간주”

플로이드가 사망한 장소는 미니애폴리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5월 26일 첫 시위가 열렸고, 이후 시위는 미니애폴리스와 ‘쌍둥이 도시(twin city)’로 불리는 세인트폴로 번졌다. 

미네소타주에서만 8개 한인 상점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세인트폴 한 쇼핑몰에서 한인 교민 박모 씨가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옷가게도 5월 28일 시위대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시위대는 유리창과 철문을 부순 뒤 물품을 모조리 가져가버렸다. 박씨는 “12년간 모은 돈으로 나만의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참담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시위대가 쇼핑몰 주차장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는 “신체적 위협을 피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미니애폴리스에 산 지 10년이 된 최모(26) 씨는 “주민 모두가 불안에 떨며 어느 누구도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오면 시위대로 간주한다는 경찰의 경고도 있었다”며 “바깥 상황은 뉴스에 의존해 파악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황청수 미네소타한인회 이사장은 “이 도시에 산 지 4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시위는 처음 본다”면서 “시위대의 방화로 가게 전체가 불타버린 곳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를 입은 상점과 주민을 돕고자 한인회가 구호물품 및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시위가 평화롭게 전환되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미니애폴리스에서 서쪽으로 3000km 떨어진 캘리포니아주에도 이르렀다. 11만 명 넘는 한인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한인 밀집 도시 로스앤젤레스(LA)는 다운타운부터 한인타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LA 한인들은 1992년 흑인폭동의 아픈 상처를 아직 잊지 못한 상태. 당시 폭동으로 2300여 개 한인 업소가 약탈·전소됐고, 피해액은 4억 달러(약 48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LA 전체 피해의 40%에 해당한다.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패션디자이너 이모(46) 씨는 “요즘 흑인폭동 얘기를 꺼내는 교민이 많다”며 “헬기 소리,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밤새 들리다 보니, 언제 한인들에게 시위대의 불똥이 튈지 몰라 모두 불안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인종차별 반대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시위대의 약탈 행위가 반복되자 이들을 폭도로 보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도 말했다.

500여 명 州 방위군으로는 역부족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시위대가 은행 출입문을 부순 뒤 진입하고 있다. 시위대의 방화로 불탄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한 쇼핑몰과 시위대가 물건을 약탈해간 시카고 한인 상점(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 · 이제희, 박세실리아, 황청수]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시위대가 은행 출입문을 부순 뒤 진입하고 있다. 시위대의 방화로 불탄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한 쇼핑몰과 시위대가 물건을 약탈해간 시카고 한인 상점(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 · 이제희, 박세실리아, 황청수]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33) 씨는 “밖에 나가지 못한 채 18개월 된 아이와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사이렌 소리, 헬리콥터 소리를 들으며 불안에 떨고 있다”며 “시위대가 주거지역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섭다”고 심경을 밝혔다. LA 다운타운에서 3년째 거주하는 20대 이모 씨는 “시(市)가 오후 1시(5월 31일·이하 현지시각)부터 통행금지령을 내려 일찍 퇴근하고 집에 머물고 있는 상태”라면서 “생필품을 사려고 평소 자주 가던 쇼핑몰은 유리창마다 나무판자를 덧대놨고, 경찰이 쇼핑몰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쳐놔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전했다. 

오렌지카운티 주민 이제희(41) 씨는 “흑인폭동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이씨는 “그때는 통행금지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흑인폭동은 LA 시내에서만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LA 시내를 벗어나 베벌리힐스, 샌타모니카, 할리우드 상점까지 털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LA 행정당국은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을 LA 한인타운에 파견하기로 하고 6월 1일 오후 3시 군을 투입했다. 흑인폭동 때 한인타운이 무방비로 노출된 것과 비교하면 미주 한인사회의 성장을 의미하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해일과도 같은 시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로라 전 LA 한인회 회장은 “주 방위군이 500여 명에 불과해 한인타운 전부를 보호할 수는 없다. 시위대 수가 워낙 많고 규모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군 투입 후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전 회장에 따르면 6월 1일 저녁 한인식당 한 곳에 강도가 들어 현금과 자동차를 빼앗아갔고, 한 피부관리실은 시위대의 습격으로 내부가 난장판이 됐다. “한인은 우리가 지킨다. 자체 무장을 하지 말아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한인들은 유리창에 합판을 덧대 가게를 보호하고 있다. 전 회장은 “시위대가 합판을 뜯어낸 뒤 유리창을 부수고 있어 별 효과는 없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두 달간 영업을 못 하다 최근 영업을 개시했는데, 시위로 다시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한인회에서 구호금을 마련해 한 차례 피해 상인들을 지원했다”며 “1992년 잿더미가 됐던 한인타운의 기억이 생생하다. 다들 다시는 전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의지가 강하다”고 힘줘 말했다.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

전문가들은 이번 소요 사태가 미국 사회의 ‘근원적 문제에서 비롯한 필연’이라고 말한다.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 소수인종학과 교수는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은 족히 150년은 된 문제”라며 “흑백 간 경제적 불균형, 교육 및 취업 기회의 불균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러한 폭동은 주기적으로 반복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1992년 흑인폭동 때 한인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된 것은 한인들이 흑인 거주지역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상권을 잠식했기 때문”이라며 “이후 한인 스스로 흑인을 비롯한 다문화 커뮤니티에 융화되려 애쓰면서 자강 노력을 해온 만큼 이번에는 그때만큼 피해가 발생하진 않으리라 본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주간동아 1242호 (p58~60)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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