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2

2020.06.05

단독

정대협과 나눔의 집 주도권 다툼으로 ‘위안부 전시’도 무산됐다

2011년 가을 韓日 위안부 협상 앞두고 정부가 추진한 위안부 전시, “두 단체가 ‘같이는 못 한다’고 했다”(前 여성가족부 고위 관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6-05 1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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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신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는 ‘수요집회’와 여성가족부, 일본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왼쪽부터). [뉴스1]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신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는 ‘수요집회’와 여성가족부, 일본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왼쪽부터). [뉴스1]

    시계를 되감아 2011년 가을.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고, 그해 12월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다루기로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때 이미 해결됐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했고, 이에 온 나라가 합심해 일본에 총공세를 펼쳤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는 위안부 문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수요집회’ 1000회 개최를 앞두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국민 여론도 들끓었다.

    나눔의 집, “정대협 수요집회 나가지 마라”

    그해 11월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정대협 위안부 쉼터를 방문한 김금래 당시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에게 “지금이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일본 측을 압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외교적 조치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정작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여론을 환기할 수 있는 행사를 무산시킨 것으로 ‘주간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전직 여가부 고위 관료는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당시 여가부는 정대협, 나눔의 집과 함께 위안부 전시 행사를 추진했는데, 두 단체가 ‘단독으로 해야지, 같이는 못 한다’며 서로 배제하는 바람에 결국 행사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까지) 시간이 촉박하고 사안도 중대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서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두 단체가 주도권 다툼을 하는 식으로 나와 화가 났다”고도 덧붙였다. 



    주간동아 취재를 종합하면 여가부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이 보유한 위안부 관련 유물을 서울에 전시하는 행사를 추진했다. 위안부 운동을 벌이는 양대 단체인 정대협과 나눔의 집이 공동 주관하고, 여가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당초 계획. 당시 여가부에서 근무한 A씨는 “나눔의 집이 있는 경기 광주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나눔의 집 유물을 가져다 서울에서 전시하면 더 많은 국민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대협이 보유한 유물도 함께 전시하면 더 좋으니까 공동 주관하자고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두 단체와 함께 두어 번 회의했지만,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공동으로 행사를 치르는 것에 대해 두 단체 모두 협조적이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정대협과 나눔의 집은 1990년대 초반부터 나란히 위안부 운동에 나섰지만,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대협이 주최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한 것 말고는 지난 30년간 두 단체가 합심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대협, 나눔의 집 해외 활동 방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할머니들.  [동아일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할머니들. [동아일보]

    오히려 나눔의 집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참석을 방해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최근 나눔의 집 후원금 문제를 고발한 나눔의 집 내부 구성원 측은 “나눔의 집 운영진이 평소 정대협을 비판하는 얘기를 자주 하며 정대협이 싫으니 (수요집회에) 나가지 말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5년 동안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무라야마 잇페이(村山 一兵) 씨도 최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운영진이 ‘정대협 활동’이라는 이유로 막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안부 운동 관계자는 “나눔의 집이 해외에서 위안부 전시를 하면, 전시를 함께 추진하는 해외 기관 측에 정대협이 연락해 ‘나눔의 집과 전시를 하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나눔의 집으로 기부가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정대협이 나눔의 집을 싫어한다는 뒷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여가부에 근무했던 A씨는 “두 단체는 서로 견제하는 분위기였다. 주로 정대협이 ‘우리도 나눔의 집만큼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오랜 세월 노력해온 단체가 두 곳 말고는 없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도 당부했다. 

    정대협 후신인 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 집은 2011년 위안부 전시 무산과 관련한 주간동아 측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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