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혁신 생태계에서 찾는 제약강국의 길 ③ 아일랜드

‘전문 인력’ 맞춤 양성으로 제약바이오 强小國 반열 올라

세계 10대 제약사 모두 아일랜드에…정부 주도 NIBRT 성과 눈부셔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1-10 15: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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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GettyImages]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GettyImages]

    유럽 북서쪽 브리튼제도의 섬나라 아일랜드는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국가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7000달러로 세계 5위에 해당한다. 작지만 건실한 국가 경제를 이루는 주요 축 가운데 하나는 제약바이오 산업. 아일랜드는 세계 7위 제약 및 의약품 수출국으로, 2017년 이 분야에서 650억 유로(약 85조 원) 수출액을 달성했다. 아일랜드 총 수출액의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고용 인원은 6만 명 이상이며, 해당 분야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자금은 연간 3억500만 유로(약 4000억 원) 수준이다(2017년 기준). 

    아일랜드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육성된 역사는 꽤 오래됐다. 외국인 투자 유치 전담기관인 IDA(Industrial Development Agency)는 1960년대부터 해외 직접투자를 적극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미국 대형제약사 유치에 공을 들였다. 공장 건립 부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법인세율 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자 1964년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을 시작으로 화이자, 일라이 릴리, 머크(MSD),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가 속속 아일랜드로 진출했다. 현재 세계 10대 제약사는 전부 아일랜드에 본사 또는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세계 7위 제약 및 의약품 수출국

    아일랜드가 제약바이오 강소국으로 명성을 떨치는 것은 비단 글로벌 제약사를 유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일랜드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흐름에 맞춰 꾸준히 변화를 도모해왔다. 2000년 이후 바이오제약 공정 투자를 늘려 2003년 2개였던 바이오 제조업체가 2017년 18개로 크게 증가했다. 최근에는 R&D 투자와 고부가가치 물질 제조, 글로벌 비즈니스서비스 센터, 특허 및 공급망 관리로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바이오산업에 투자된 금액만 100억 유로(약 13조 원)로 추산된다. 아일랜드는 현재 90여 개 바이오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이 제시하는 각종 기준을 충족해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SK㈜도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2017년 6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스워즈(Swords)시에 위치한 BMS의 대형 원료의약품 생산 공장을 인수했다. 스워즈 공장(현 SK바이오텍 아일랜드)은 BMS가 생산하는 합성의약품 제조 과정 가운데 가장 난도가 높은 공정을 담당해왔으며, “고난도 제품을 수십 년간 별문제 없이 생산하고 어려운 요구에도 늘 해결책을 제시해온 업계 최고의 의약품 생산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곳이다.

    석·박사 과정에서 단기 교육까지 프로그램 다양

    아일랜드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 캠퍼스 안에 자리한 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 [NIBRT 홈페이지]

    아일랜드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 캠퍼스 안에 자리한 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 [NIBRT 홈페이지]

    아일랜드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 높은 맞춤형 인재를 충분하게 양성,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은 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다. 2011년 IDA 주도로 5700만 유로(약 750억 원)를 투자해 설립된 NIBRT는 제약바이오 전문 인력 양성 교육기관이다. 제약바이오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목표로 기초 및 응용 연구, 임상시험, 의약품 생산, 품질 관리, 인허가 등 제약바이오 비즈니스와 관련한 전 과정을 가르친다. NIBRT가 배출하는 연간 4000여 명의 전문 인력 중 대다수가 아일랜드 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취직해 아일랜드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끌어간다. 



    NIBRT는 아일랜드 정부의 지치지 않는 노력의 산물이다. 2000년대 초 화이자가 더블린에 신규 바이오 공장을 건설하면서 아일랜드 정부에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 NIBRT 설립의 계기가 됐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바이오 공장에서 일할 만한 수준 높은 전문 인력이 많지 않아 제약사들은 미국에서 전문 인력을 데려왔다.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2006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해 2011년 오늘날의 NIBRT를 출범시켰다. 

    NIBRT는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 캠퍼스 안에 자리하고 있다. 축구 경기장만 한 연면적 6500㎡의 연구·교육시설에는 강의실은 물론, 각종 연구시설과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소규모 시험생산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학생의 절반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 대졸자고, 나머지 절반은 제약바이오 기업 직원이다. 아일랜드 소재 대학과 연계해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동시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교육도 활발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제약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단기 집중 프로그램부터 각 기업의 요청에 맞춘 특화된 프로그램까지 교육 과정이 매우 다양하다. BMS, 로슈, 애브비 등 주요 제약사 인력이 NIBRT에 파견돼 재직자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Principal Investigator Series’라는 이름의 프로그램도 있는데, NIBRT 연구팀에서 바이오제약 관련 특정 테마를 선정해 전문가 수준의 통찰력을 제공하는 교육 과정이다.

    보건복지부, 한국형 NIBRT 검토 중

    일례로 NIBRT는 최근 암젠으로부터 미국과 푸에르토리코의 제조공정 스태프를 위한 2주 일정의 기술 교육을 의뢰받아 진행했다. 오전에는 단백질 분리 정제 등에 관한 교실 수업이, 오후에는 연구실과 제조공정에서의 실습이 이뤄졌다. 주요 제품을 다루면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안전 교육도 실시됐다. 

    NIBRT는 교육 외에도 세포주 개발·배양과 정제공정법 개발 등 바이오제약 기업으로부터 연구를 위탁받거나 공동 R&D 과제도 수행하고 있다. NIBRT에 대한 R&D 의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 이것이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다국적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공정개발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R&D 역량을 끌어올려 교육기관 이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일랜드의 바이오제약 산업은 단순 저분자 의약원료 제조공정에서 벗어나 고부가 제품, 바이오시밀러, 다양한 종류의 의약품 개발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NIBRT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바이오 분석학, 빅데이터 분석, 선진 제조공정, 세포 공학 등에 매진해 제품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일랜드에는 NIBRT 외에도 리머릭대(University of Limerick) 산하 SSPC(Synthesis and Solid State Pharmaceutical Center)가 의약품 특화 제조공정 교육·연구기관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SPC는 24개 기업, 9개 연구소, 12개 해외학술기관과 협업해 차세대 약물 제조와 의약품 생산 관련 솔루션을 산업계에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신약 개발보다 제조공정 최적화, 약물전달체계(Drug Delivery System·DDS)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 진출 발판으로 아일랜드 주목해야”

    지난해 11월 8일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오른쪽에서 여섯 번째)을 비롯한 협회 임직원과 아일랜드 정부의 해외투자 유치 전담기관 IDA, NIBRT 등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지난해 11월 8일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오른쪽에서 여섯 번째)을 비롯한 협회 임직원과 아일랜드 정부의 해외투자 유치 전담기관 IDA, NIBRT 등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NIBRT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이 기관을 벤치마킹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 미국 JIB(Jefferson Institute for Bioprocessing)가 그러한 예로, 미국 필라델피아대와 토머스제퍼슨대가 NIBRT와 파트너십을 맺고 설립한 기관이다.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제약산업을 미래 선도 사업으로 성장시키려는 한국도 ‘한국형 NIBRT’ 설립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한국바이오인력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이를 확대해 한국형 NIBRT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국내 바이오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인력 수요도 크게 늘어 2027년에는 2만 명가량의 전문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정부 주도의 활발한 외자 유치,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은 숙련된 생산 인프라, NIBRT가 공급하는 우수한 전문 인력이라는 삼각 편대로 탄탄한 제약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최근 2년간 의약품 생산 공장을 운영해온 SK㈜ 역시 아일랜드를 제약바이오 사업을 하기 좋은 국가로 평가한다. 김현준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장(상무)은 “양대 메이저시장인 미국과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데다, 제약바이오 관련 인력이 풍부한 점, 국가 차원에서 제약바이오 인력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관련 대학과 연구소, 교육기관이 고루 발달돼 있다는 점이 기업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영어권 국가라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아일랜드를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기지로 주목하면서 여건에 맞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일랜드 정부는 유럽시장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시장 진출에 애로를 겪을 때 맞춤형 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DA는 부지 장기 대여, 매물 정보 제공, 컨설팅 및 펀딩 지원 등을 통해 진출 기업을 지원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유럽 진출을 고려한다면 SK㈜와 같이 아일랜드 현지 생산 기반 구축을 검토해볼 만하다”며 “협회는 이에 관심 있는 기업을 위한 개별 진출 전략을 마련하면서 IDA와 함께 매물 정보를 공유하는 등 후속 지원 방안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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