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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추석을 맞는 국내 일본인

일본인이라 말 못 할 사정, 그래도 조심 또 조심

“사회적 배척 걱정되지만, 혐일(嫌日) 확산 안 돼 다행”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일본인이라 말 못 할 사정, 그래도 조심 또 조심

[GettyImages]

[GettyImages]

9월 2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강대교 북단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해 흔히 동부이촌동으로 불리는 동네다. 1960년대까지 한강변의 백사장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부터 대대적인 택지 개발이 이뤄지면서 대규모 아파트촌이 형성됐다. 이후 서울 사대문 안에 직장을 두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본인학교에 자녀를 등교시키는 국내 일본인 가정이 중간 위치인 이 동네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재팬 타운’이 만들어졌다.


동부이촌동 ‘재팬 타운’

9월 2일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출입문에 ‘일본인은 일본어로 상담’이라는 일본어 문구가 적혀 있다(아래). 이촌1동에 즐비한 일식 요릿집들. [김우정 기자]

9월 2일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출입문에 ‘일본인은 일본어로 상담’이라는 일본어 문구가 적혀 있다(아래). 이촌1동에 즐비한 일식 요릿집들. [김우정 기자]

언뜻 보기엔 서울 시내 여느 주거지역과 다를 바 없지만, 가까이 가 보면 가게마다 일본어 간판을 달거나 안내문을 써 붙여놓은 것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나 병원에도 ‘일본어 상담 가능’ 같은 일본어 문구가 붙어 있다. 일본풍의 붉은색 등롱으로 장식한 일식 요릿집도 한 집 건너 한 집꼴이다. 이 동네에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민은 “1970년대부터 한강맨션 등 고급 주택이 생기면서 자금 사정이 넉넉한 일본인들이 이사 오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생소하던 일본식 선술집이 여럿 성업한 것도 이 동네의 특색”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부이촌동에 거주하는 일본 외교관 및 일본계 기업 주재원과 그 가족은 1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일본인학교가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예전만 못하게 됐지만, 동네가 워낙 조용하고 쾌적해 지금도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한일관계가 냉각된 요즘, 동부이촌동은 어떨까. 이곳도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마트와 슈퍼마켓마다 일본산 조미료와 주류, 라면 등이 적잖이 보였지만, 이를 찾는 사람은 줄었다. 한 마트 직원은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 손님들도 자주 일본산 제품을 찾았는데, 최근에는 일본산 제품 매출이 예년 대비 30%가량 감소했다”며 “한 달 전부터는 추가 입고를 멈추고 재고가 소진되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도 튀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일식 요릿집도 덩달아 매출이 줄었다. 이 동네에서 7년째 일식 요릿집을 운영하는 한 한국인 사장은 “두 달 전부터 매출이 평소보다 30% 이상 줄었다.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일부 몰지각한 일본 정치인의 행태에 화가 나 나도 불매운동에 찬성은 하지만 한국인이 국산 재료로 만드는 음식임에도 매상이 줄어 일본어로 된 상호를 바꿀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평온 속 긴장된 분위기

‘보이콧’ 대상은 일본산 제품일 뿐, 국내 일본인의 일상에까지 여파가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동부이촌동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를 꺼려하면서도 “별일 없이 잘 지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 주부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최근 한일 갈등에도 일본인들이 수업에 그대로 출석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일본인이 큰 피해를 겪은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인 주민들도 “오며 가며 만나는 일본인 이웃들이 전보다는 좀 더 조심스러워하는 듯하지만, 이웃 간 국적을 따지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재팬 타운 밖 국내 일본인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취업한 한 20대 일본인 직장인은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에 있는 부모가 많이 걱정한다. 나도 관련 뉴스를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주변 한국인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살갑게 대해줘 큰 걱정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 한국 지인들이 오히려 공분해준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인으로 맺어진 가정의 경우 양국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자녀들이 받는 상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300쌍의 한일 부부가 새로 탄생했다. 이는 전체 국제결혼(약 2만2700건)의 6%에 해당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은 987건으로 베트남·중국·태국에 이은 4위,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의 결혼은 313건으로 중국·미국·베트남·캐나다에 이은 5위다. 전체 국제결혼에서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2008년부터 10년간 한 해 평균 1200여 쌍의 한일 부부가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한 40대 남성은 점증하는 한일 양국의 긴장이 걱정스럽다.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크고 작은 심적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독도 관련 교육을 하던 교사가 “일본인은 모두 나쁘니 일본 본토를 모두 빼앗아야 한다”고 발언해 아이가 큰 충격을 받은 일도 있다. 또한 아이가 아직 철없는 또래들로부터 “너희 엄마는 일본인이니 너도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달랠 뿐 뾰족한 수가 없어 속앓이를 해야 하는 아내를 보는 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일본인 결혼 이주 여성이 자녀양육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문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상담심리 전문가 서양임 박사는 “국가 차원의 갈등이 개인과 가정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자녀는 대개 초등학교 재학 때부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그는 “유치원생 때까지는 다문화적 배경이 또래의 관심과 호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 이후 역사 등 사회교과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다”며 “또래는 물론 일부 어른으로부터 조롱이나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자기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문화 배경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대중매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아이가 심리적 충격을 받고, 자칫 정서 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일본인 어머니가 고국에서는 배우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아이를 통해 알게 돼 충격을 받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서 박사는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일본 문화가 이들에게는 자기 뿌리의 일부”라며 “한일 가정의 자녀들이 양국 문화의 지속적인 유대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또한 이 아이들이 한일 과거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교사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보이콧 재팬’에서 ‘보이콧 아베’로

7월 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No 아베!’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동아DB]

7월 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No 아베!’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동아DB]

일부 전문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 신호를 읽어낸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현재 정치외교적 관계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한일 국민 사이에는 큰 이슈가 없다”며 “‘반일’을 풀어내는 한국 사회의 자세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하 교수는 최근 있었던 이른바 ‘홍대입구역 일본 여성 폭행 사건’을 예로 들었다. 

8월 23일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30대 한국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 관광객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남성은 피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일본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을 쫓아오며 일방적으로 희롱했고, 이를 거부하자 갑작스러운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시 폭행 모습이 담긴 영상이 퍼졌는데, 국내 인터넷에서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폭언과 폭행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더라도 일본인 대상의 혐오 범죄는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것이다. 하 교수는 “과거에는 한일 갈등이 높아지면 일본인 전체에 대한 적개심 또한 커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이콧 재팬’이라는 구호가 ‘보이콧 아베’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일본인 체류자나 한일 가정에 대한 각별한 배려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선 언급한 일본인 여성과 가정을 이룬 40대 남성은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양국의 일반 시민이 입는다. 특히 한일 부부나 그 자녀들은 이럴 때마다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며 “양국 정부가 여론을 선동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인터뷰 |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관련 논문 쓴 사진작가 김종욱 씨
“비극적 관계 되풀이되지 않길 바랐던 할머니들의 유지 받들길”
김종욱 씨(오른쪽)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기도 한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상진 씨. 김씨는 “해방 후 초등교사가 된 선친은 늘 어두운 역사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김종욱]

김종욱 씨(오른쪽)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기도 한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상진 씨. 김씨는 “해방 후 초등교사가 된 선친은 늘 어두운 역사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김종욱]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재한 일본인들이 겪는 고충이 낯선 일은 아니다.” 

사진작가 김종욱(60) 씨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자신의 카메라 렌즈에 담아온 모델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는 2004년 경북 경주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찍어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과 결혼해 이제 여든을 바라보던 일본인 여성들을 만났다. 몇 해에 걸쳐 교류하다 보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오랜 타향살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재한 일본인 여성 21명의 사연으로 ‘근대기 조선이주 일본인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2014)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쓴 김씨는 일본인 할머니들의 삶을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면받은 고단한 삶”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 남편을 택한 일본인 여성들은 이를 반대한 친정으로부터 절연당하기 일쑤였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이들의 삶은 더욱 불리해졌다. “이 할머니들 가운데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이는 드물다. 한국 땅에서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았고, 심지어 자녀들에게 버림받기도 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 1964년 재한 일본인 아내들의 모임인 부용회가 결성돼 한때 회원 수 1000명을 넘기도 했다. 김씨는 “일본인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다섯 분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김종욱 씨가 촬영한 재한 일본인 아내 요네모토 도키에 씨의 생전 모습.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김종욱]

사진작가 김종욱 씨가 촬영한 재한 일본인 아내 요네모토 도키에 씨의 생전 모습.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김종욱]

최근 한일관계를 지켜보며 김씨는 2014년 별세한 요네모토 도키에(米本 時江) 할머니를 떠올렸다. “요네모토 할머니가 촬영과 인터뷰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전쟁과 침탈 등 우리 세대가 겪은 불행한 역사가 후대에도 반복되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요새도 재한 일본인 아내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가면 이들이 머무는 시설로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왜 일본인을 두둔하느냐’는 내용”이라며 “요네모토 할머니의 뜻처럼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해 한국의 가족이 된 재한 일본인들에게 부당한 대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9.06 1205호(창간기념호①) (p70~73)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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