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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한국이 잘 돼야 일본도 안전하다”

원로 한일관계 연구가의 조언

“한국이 잘 돼야 일본도 안전하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국가도 겪어보지 않은 일을 겪으면 구성원들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의 경제 보복까지 부르고 있는 최악의 한일관계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최서면(91) 국제한국연구원장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아흔 인생의 각각 반반을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온 그는 생존 한국인 중 한국과 일본 근현대사의 고비 고비를 겪으며 한일관계 연구에 천착해온 몇 안 되는 인물이다.


“親韓 조상 둔 아베가 反韓 공격 나서”

7월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근처 그의 집에서 기자를 만난 최 선생은 “인터뷰 요청을 거의 거절한 적이 없는데 오늘만큼은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도 되는지를 물었을 정도로 말하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한일 역사에 관해 뛰어난 통찰과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직언을 마다하지 않던 그인지라 이 말은 의외였다.
 
“말하기를 피하고 싶다거나 용기를 내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뭐가 옳고 그른지 도무지 혼돈스러워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대안이나 해법을 물어오는데 솔직히 나도 답이 생각나지 않아요. 예측이 맞으면 다행이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겁이 나요. 지난 역사를 본다 해도 과거 잣대로만 볼 것도 아니어서… 사람 입 하나 갖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과 역사의 무게를 아는 자만이 갖는 막중한 책임감이 함께 느껴졌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는 “하루하루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아베 수상(총리)은 외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한국을 가까이하던 사람이라 어릴 적 그걸 보고 자랐습니다. 분명히 한국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 믿어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958년 야쓰기 가즈오 특사를 파견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야쓰기 특사는 기자회견에서 ‘기시 수상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국에 범한 과오를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며 수상 대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시는 수상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한일협력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내가 기시 전 수상에게 직접 들은 것도 있어요. 가까운 선조가 조선과 무역을 하는 사무관을 지냈는데 조선에서 통신사가 오면 그렇게 집안이 감격해했답니다. 



그의 사위이자 아베 수상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대신 역시 친한(親韓)파였어요. 현재도 그를 그리워하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작금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가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부지간처럼 남들이 모르는 뭔가 깊은 것이 마음속에 있겠지, 한국은 소중한 나라라는 걸 자각하고 있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게 소원이 있다면 그런 방향으로 아베 수상이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對日 감정 균형 잡고 과도한 민족주의 버려야”

최서면 선생의 집은 온통 자료와 책들이 쌓여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평생 안중근 의사 연구에 집중해온 그가 만든 안 의사 관련 자료들. [박해윤 기자]

최서면 선생의 집은 온통 자료와 책들이 쌓여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평생 안중근 의사 연구에 집중해온 그가 만든 안 의사 관련 자료들. [박해윤 기자]

최 선생은 한때 아베 총리를 거칠게 비판한 적도 있지만 이날만큼은 아량과 역사적 책임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현 상황이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단계를 이미 넘어섰으며 국면이 너무 복잡해지고 어그러졌다는 뜻으로 들렸다. 다시 그의 말이다. 

“사람의 일이란 게 옳은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습니다. 이걸 극복하려면 겸손이 절대로 중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이야기한 대로 과거를 모르면 현재도 모릅니다. 과거에 대해 겸손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한일처럼 가까운 나라가 없고, 오랫동안 역사를 공유해온 나라도 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운 일왕이 즉위했을 때 지구상에서 일본과 가장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일본에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이야말로 일왕의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할 1등 자격이 있는 나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책상에 어지럽게 놓인 책들 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문고판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일본어로 ‘세계와 일본’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요시다 시게루가 수상직을 그만두고 1991년에 펴낸 회고록입니다. (중간 대목을 펴 보이며) 여기 ‘일한국교정상화의 의미’라는 내용이 있는데 읽어보겠습니다. ‘조선반도가 일본의 국가적 안전에 중대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유사 이래 일본에 대한 외래의 위협은 조선반도를 경유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일, 러일전쟁도 모두 출발점은 조선반도였다. 현재와 미래도 그럴 것이다. 한국이 잘 돼야 일본이 안전하다.’” 

그는 “이게 일본 지도자를 포함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감정”이라면서 “하지만 또 한국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두 가지 감정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살펴야 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반도 지형은 어머니의 젖꼭지로 보는 시각, 즉 자신들을 키워준 나라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목에 비수(匕首)를 대고 있는 것 같은 지형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에 대해 이처럼 ‘창과 젖’이라는 전혀 상반된 시각이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하면서 젖을 주고 있는데 칼을 찌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양쪽 나라에 평화와 자랑스러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을 기본으로 조심성, 겸허함,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한국을 참 좋아했습니다. 

“성심여대라고 서양수녀들이 만든 귀족학교 출신이라 균형 잡힌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공평하게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게 여사를 만나본 많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한국에서 일본 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욕하면 다들 박수치며 좋아하는데, 일본의 잘못도 따져야 하지만 잘한 것도 따지면서 균형 있는 대일 감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양쪽 모두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는 냉정한 현실 인식 필요”

아흔 인생의 각각 반반을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온 최서면 선생은 한일 근현대사 격동의 순간을 겪어온 몇 안 되는 생존 한국인이다. 지금도 각종 한일관계 연대와 인물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박해윤 기자]

아흔 인생의 각각 반반을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온 최서면 선생은 한일 근현대사 격동의 순간을 겪어온 몇 안 되는 생존 한국인이다. 지금도 각종 한일관계 연대와 인물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박해윤 기자]

선생님 연배가 되면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듯합니다. 심경이 어떠세요. 

“개인적인 소회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과 국가는 다릅니다. 개인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국가는 끝이 없습니다. 한일 문제도 항상 이런 생각을 머리에 넣고 후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서로 좋았던 점을 살리고 좋지 않았던 점은 죽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게 이 늙은이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의 말이 하도 절절해 숙연해졌다. 다시 그의 말이다. 

“한국과 일본이 교류한 역사가 2000년이 넘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이가 나빴던 때보다 좋았던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음식도 그렇듯, 맛있는 것과 쓴 것을 같이 놓고 먹어야 합니다. 근대 한일관계를 생각할 적에는 안중근 의사가 지적했듯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조선 독립을 확고히 하고 동양의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하는 전쟁’이라고 해놓고서 전쟁이 끝나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게 안 의사의 의거 동기였습니다. 일본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규탄한 것이죠. 그 후 식민지배와 해방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이 당한 감정은 없어질 수 없는데, 한일회담을 통해 우선 과거를 잊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자고 합의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한일관계를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여기엔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식으로 나온 게 잘못입니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수상이 늘 일본을 향해 하던 말이 있어요. ‘일본이 아시아에서 친구가 없는 이유는 역사인식을 바로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독일은 아프고 쓰라리지만 과거의 잘못을 주변국들이 느낄 수 있게 했고 그런 민족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일본도 그래야 한다고 했어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본이 자기 주변에 친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한일 사이에 잘한 것, 못한 것을 분간하는 수준이 되는 사이가 돼야 옳은 미래가 구축됩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이 경제적으로 강해지니까 견제하려는 심리도 있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일본뿐 아니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우리 분수를 정도껏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한 민족주의로 허상을 만들어선 안 됩니다. 민족의 자존감을 높이고자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것은 좋지만 수준 높은 정치 지도자라면, 또 국민이라면 실상과 허상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죠. 비근한 예로 일본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몇 명입니까. 우리는 가까운 옆집에 살면서 평화상 말고는 제대로 된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일본이 가진 힘, 국민의식, 학문적 배경 등은 그것대로 인정하면서 존경할 것은 존경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죠. 일본이 무조건 우리를 견제한다고만 생각하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일본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배워야 합니다.”


“싸움이 오래가봐야 결론은 비극뿐”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있는 최서면 선생. 그는 개인의 삶은 끝이 있지만 국가는 끝이 없으므로 후대를 위해 한일관계를 빨리 복원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있는 최서면 선생. 그는 개인의 삶은 끝이 있지만 국가는 끝이 없으므로 후대를 위해 한일관계를 빨리 복원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작금의 갈등 상황이 오래갈까요. 

“국가 간 분쟁은 양국 국민의 양심적 호소에 의해 빨리 가라앉기도 하고 늦춰지기도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지도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양국 국민이 서로의 양심에 호소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일 국민이 후대(後代)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입니다. 특사도, 경제사절단도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해결된다고는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지금 상황은 어떤 하나만이 해결의 길이 아닙니다. 전 국민이 노력해야 합니다. 갈등이 빨리 끝나면 한일 국민의 양심이 하늘에 닿은 것이고, 오래간다면 호소가 부족한 것이죠. 국민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싸움이 오래가봐야 결론은 비극뿐입니다. 대개 전쟁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끝난 다음에 보면 승자는 승자대로 상처가 있고 패자는 패자대로 상처가 있습니다. 싸워서 남는 게 뭐가 있는지 곰곰이 숙고해야 할 때입니다. 한일 두 나라 관계만 봐서는 안 됩니다. 외국에서 두 나라의 갈등을 어떻게 볼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금 벌어지는 양상은 경제보복 국면이니 경제 전문가들이 좀 더 알아듣기 쉽게 국민을 계몽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강원 원주에서 태어난 최 선생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출신들이 만든 한독당 산하 대한학생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8년 일본으로 건너가 1969년 도쿄한국연구원을 설립한 뒤 20년간 근대 한일관계 자료를 수집, 연구해왔다. 

“일본인보다 한국을 더 모르는 게 부끄러웠다”던 그는 첫 일본 정착 5년간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관 자료 속에 파묻혀 살았는데 “지구상에서 나 혼자만 역사의 진실을 접하는 환희를 누렸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1988년 귀국해 서울에 국제한국연구원을 설립한 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안중근 연구에 집중해왔다. 1969년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지방의 의병 활약상을 기록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직후 격동기에 김구 선생, 장면 박사와 교류했으며 박정희,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물론 기시 노부스케, 오히라 마사요시,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 등과 깊이 알고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 DJ가 일본에서 납치됐을 때와 7·4남북공동성명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한일관계가 악화됐을 때 ‘최서면 인맥’이 이를 무마하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일본 정계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한국에 전달했으며, 포항제철 건설 등에 일본이 지원하도록 도운 일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최 선생은 이날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무슨 ‘의병운동’이니 ‘토착왜구’니 하는 말까지 거침없이 쏟아내는데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며 “연희전문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의 개인 심부름을 한 적이 있는데 주위에서 ‘친일파를 빨리 처단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백범은 ‘일본이 바로 이웃인데 일본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많을수록 좋다. 민족반역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친일파라면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탄허(呑虛) 스님(1913~1983)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하다 보면 처음엔 친일이었다 돌아선 사람, 처음엔 반일이었다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이 나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당시 원효 스님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공부가 깊었던 탄허 스님을 직접 찾아가 도대체 친일의 기준이 뭐냐 정리해달라고 했죠. 스님은 종이를 가져오게 하더니 ‘장자(莊子)의 인생훈을 보고 배워야지’ 하시며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人生訓’ 석 자를 딱 쓰는 거예요. 인생훈에 ‘불은 바깥에서 끄는 것보다 안에서 끄는 게 더 힘들다’는 대목이 나온다면서 밖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보다 조선 땅인 안에서 살면서 항일운동하기가 더 어려웠다는 뜻이었습니다.”


“국가는 끝이 없어…상대 약 올리는 행동 피하자”

그는 “외교만은 여야가 하나가 돼야지, 외교가 의심을 사면 국격이 의심을 당하고, 국격이 의심을 당하면 국가적 불행을 초래한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 약 올리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며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징비록’ 첫머리에 쓴 신숙주(1417~1475)의 유언을 인용했다. 

“죽음을 앞둔 신숙주에게 성종이 ‘무슨 남길 말이 없느냐’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신숙주는 ‘일본하고는 절대 원수지지 마시옵소서’ 합니다. 당시 한중일 3국은 너도나도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이웃 나라와 화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일본은 조선보다 한참 못한 나라였죠. 그런 일본에 ‘화평을 잃지 말라’는 신숙주의 말을 지금도 되새겨야 합니다.” 

“저세상 가서 후회 없으려면 힘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던 최 선생은 “오랜만에 생각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도 했다. 

정계나 공직 권유는 물론, 금전적 유혹까지 뿌리치며 오로지 학문의 세계에만 천착해온 한일관계사의 거목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개인의 삶은 끝이 있지만 국가는 그렇지 않으니 후대를 위해 한일관계를 빨리 복원시켜야 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주간동아 2019.07.19 1198호 (p12~17)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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