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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게으르게 사세요~”

음식 배달 · 세탁 · 세차 · 오디오북 서비스 등 ‘게으름뱅이 경제’ 각광

“마음껏 게으르게 사세요~”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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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성동구에서 혼자 산 지 3년 된 임모(27) 씨는 4월 의류건조기를 장만한 뒤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더는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말린 뒤 거둬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는 33㎡ 남짓한 집 안에 로봇청소기도 들여놨다. 매일 아침 9시 로봇청소기가 집 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여 꽤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임씨는 1인 가구지만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와 함께 ‘신혼부부 3대 필수가전’이라는 식기세척기도 곧 마련할 계획이다. 식기세척기가 있으면 가끔 프라이팬에 볶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HMR)을 먹고 난 후 설거지하기가 간편해질 테니까. 임씨는 치킨이나 피자를 주문할 때 음식점으로 직접 전화를 걸기보다 배달음식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을 선호한다. “집 주소를 일일이 불러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편의점 배달 서비스도 이용했다. 주문에서 배송까지 걸린 시간은 50분. 도보로 5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어 배달료 3000원이 다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1+1’ ‘2+1’ 할인행사를 하는 음료와 컵라면을 주문해 배달료 이상을 ‘아꼈다’. 그는 “먹을거리를 한번에 많이 사거나 무더운 여름 또는 비 오는 날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 앞 편의점에도 “배달해주세요”

아마존에서 품절 대란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멀티 쿠커 ‘인스턴트 포트’와
 최근 중국 허마셴셩이 새우껍찔을 발라주는 직원 채용 공고를 내 화제가 된 요리 샤오룽샤 (小龍蝦  ·  민물새우), 2014년 무렵 미국에서 ‘게으른 경제’로 거론된 배송대행 서비스 ‘십’(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마존닷컴, 인스타그램 @lipstick.on.ur.snifter, SHYP 홈페이지]

아마존에서 품절 대란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멀티 쿠커 ‘인스턴트 포트’와 최근 중국 허마셴셩이 새우껍찔을 발라주는 직원 채용 공고를 내 화제가 된 요리 샤오룽샤 (小龍蝦  ·  민물새우), 2014년 무렵 미국에서 ‘게으른 경제’로 거론된 배송대행 서비스 ‘십’(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마존닷컴, 인스타그램 @lipstick.on.ur.snifter, SHYP 홈페이지]

#2 신혼생활 중인 주부 신모(34) 씨는 기름 없이 뜨거운 공기로 튀김요리를 해주는 에어프라이어를 즐겨 사용한다. 얼마 전에는 에어프라이어 요리책도 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에어프라이어로 닭고기나 냉동만두 외에도 다양한 요리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자주 보이자 자신도 도전해보기 위해서다. 그는 “책에 밥피자, 멘보샤, 두부강정, 에그마요토스트 등 에어프라이어 요리법이 실려 있다”며 “최근 그중 매콤등갈비리브를 따라 해봤는데, 상당히 맛있었다”고 했다. 신씨는 에어프라이어의 최대 장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에어프라이어 바스켓과 집게만 설거지하면 되고, 에어프라이어를 켜놓은 채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정모(37·여) 씨는 공기청정기와 의류관리기, 의류건조기를 LG전자로부터 빌려 사용한다. 월 렌털료는 제휴 신용카드로 할인받아 13만 원가량. 5년 의무사용 기간을 감안하면 이들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지만, 그는 빌려 쓰는 것에 만족한다. 정기적으로 직원이 방문해 급·배수통 소독, 기계실 내부 청소, 필터 장착부 먼지 제거 등을 해주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런 가전제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나 대신 알아서 해주니 좋다”며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살림에 쓸 시간을 아껴 육아에 투입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란런(懶人·게으름뱅이)경제가 화제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신선매장 ‘허마셴셩(盒馬鮮生)’이 새우껍질을 손님 대신 발라주는 직원 채용 공고를 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게으름뱅이의 필요를 충족해주는 경제가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대 쇼핑몰 타오바오(淘宝)가 발표한 ‘란런소비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 타오바오에서 팔려나간 ‘란런 상품’ 규모가 160억 위안(약 2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0% 급증했다. 대표적인 란런 상품으로는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자동창문청소기, 양말세탁기, 즉석훠궈 같은 가정간편식이 꼽힌다. 음식 배달, 마트 배송 등 O2O(Online to Offline · 온라인과 오프라인 결합형) 서비스도 란런경제의 범주에 속한다.


구운 삼겹살도, 팥빙수도 손가락 까딱으로 ‘겟’

국내에서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음식 배달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달의민족(가운데)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이 시장에 최근 쿠팡도 뛰어들었다(왼쪽).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는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제휴를 맺고 배송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쿠팡 홈페이지, 배달의민족, 메쉬코리아]

국내에서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음식 배달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달의민족(가운데)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이 시장에 최근 쿠팡도 뛰어들었다(왼쪽).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는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제휴를 맺고 배송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쿠팡 홈페이지, 배달의민족, 메쉬코리아]

란런경제는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에 앞서 미국에서는 2014년 무렵부터 ‘게으른 경제(Lazy Economy)’라는 용어가 쓰였다. 당시 게으른 경제의 대표적 예로 거론됐던 것이 실리콘밸리 출신의 배송대행 서비스 ‘십(Shyp)’이다. 보내고 싶은 물건의 사진을 찍어 앱에 올리면, 직원이 고객 집으로 상자와 테이프, 포장용 에어캡 등을 가져와 물건을 포장한 뒤 가져가는 서비스였다. 우체국으로 물건을 들고 가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편리함 때문에 십은 미국 주요 도시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캐나다 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인스턴트 포트(Instant Pot)’가 매우 인기다. 이 주방기기 하나로 찜, 튀김, 수프, 요구르트 등 다양한 요리를 손쉽게 만들 수 있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조차 자주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게으름뱅이 경제의 대표주자 격인 모바일 앱 기반 음식 배달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추세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장 규모는 약 170억 달러(약 20조 원)며, 향후 5년간 연평균 7.5%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5년간 음식 배달 앱시장이 연평균 72%씩 성장한 호주의 소비자들은 인당 연간 1590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130만 원)를 음식을 배달받는 데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배달음식시장 규모는 2017년 15조 원에서 지난해 20조 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음식 배달 앱 이용자는 2013년 87만 명에서 지난해 250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1위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onthly Active Users·MAU)는 4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전화 주문 비중이 80%로 여전히 대세인 가운데 음식 배달 앱 비중이 빠르게 커지자, 이 시장을 차지하고자 쿠팡 등 선두 e커머스 업체들이 새롭게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이제 앱으로 주문하지 못할 음식은 없을 정도다. 치킨, 피자, 짜장면 외에도 구운 삼겹살, 김치찌개, 회, 샐러드, 케이크, 커피, 팥빙수 등도 집으로 가져다준다. 직장인 유모(42) 씨는 “퇴근 후 혼자 집에서 회 1인분을 주문해봤는데, 가격 대비 알차고 신선한 상태로 배달돼 꽤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배달망을 갖추지 않아도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륜차 배송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는 버거킹, 초록마을, 명랑핫도그, 설빙 같은 업체들의 배송을 맡아 지난해 월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143% 성장한 수치다. 메쉬코리아는 최근 서울 강남구와 마포구에서 일반인이 공유 전기자전거로 배송하는 ‘부릉 프렌즈’ 서비스를 시범 개시했다. 메쉬코리아 관계자는 “배달시장이 확대되면서 넘치는 물량을 소화하고자 일반인을 부업 개념으로 배송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어프라이어 인기 여전

‘즉시배달’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리브영은 주문 후 3시간 이내에 물건을 배송해주고 CU, GS25 등 편의점들도 즉시배달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왼쪽부터). [CJ올리브네트웍스, BGF리테일, 우버이츠]

‘즉시배달’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리브영은 주문 후 3시간 이내에 물건을 배송해주고 CU, GS25 등 편의점들도 즉시배달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왼쪽부터). [CJ올리브네트웍스, BGF리테일, 우버이츠]

‘즉시배달’ 서비스는 음식 밖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생활에 당장 필요한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새벽배송 요청을 놓쳤다 해도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CU, GS리테일,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들이 최근 일부 지역에서 배송 서비스를 개시해 우유, 도시락, 라면, 과자 등 식품을 배달해주고 있다. 향후 편의점에서 취급하는 스타킹, 칫솔, 비누 등 생활용품으로 배송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배달의민족은 앱 안에 ‘배민마켓’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에 한정해 생필품을 즉시배달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도 즉시배달된다. 뷰티·헬스 스토어 올리브영은 메쉬코리아와 제휴해 서울·인천지역에 한정해 주문 3시간 이내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오늘드림’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색조보다 기초화장품 위주로 배송 주문이 많다”며 “매일 쓰던 제품이 똑 떨어졌다거나 사러 나가기 번거로울 때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파워봇 로봇청소기와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어프라이어 전용 요리책, LG전자의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 ‘케어솔루션’(왼쪽부터). [삼성전자, LG전자]

삼성전자 파워봇 로봇청소기와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어프라이어 전용 요리책, LG전자의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 ‘케어솔루션’(왼쪽부터). [삼성전자, LG전자]

집안일의 고충을 덜어주는 가전제품시장은 국내에서도 날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로봇청소기 판매량이 2015년 13만 대에서 지난해 30만 대로 급상승했다. 지난해 ‘대박템’ 에어프라이어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전자랜드는 “올해 1~4월 에어프라이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44% 증가했다”고 밝혔다. 책 ‘에어프라이어 만능 레시피북’(엔트리)은 온라인서점 예스24가 꼽은 201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2위에 올랐다(1~5월 판매량 기준). 요리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속옷도 빨아서 말려 개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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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도 ‘귀차니즘 해소 상품’이 인기다. 올리브영이 상반기(1~5월) 매출을 분석한 결과 불필요한 피부 관리 단계를 줄이는 ‘스킵(skip)케어’ 트렌드가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킨 → 에멀션 →에센스 → 로션 → 크림 순으로 피부 관리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의 화장품으로 해결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로션 매출은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친 반면, 에센스 매출은 105% 신장했다. 매출액 기준 인기 제품 100위권에 지난해에는 에센스가 3개에 그쳤는데, 올해는 8개로 늘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헤어무스처럼 흔든 뒤 뿌리고 발라주기만 하면 떡진 머리가 방금 감은 머리처럼 되는 드라이샴푸, 물에 적셔 얼굴에 문지르기만 하면 메이크업 클렌징이 완료되는 호주산 클렌징 퍼프 '페이스 헤일'로(FACE HALO)도 인기”라고 말했다. 


고객 집에서 세탁물을 수거해 가 세탁기 빨래와 드라이클리닝 등을 해주는 세탁 분야 O2O업체 세탁특공대(왼쪽)와 런드리고. [세탁특공대 홈페이지, ㈜의식주컴퍼니]

고객 집에서 세탁물을 수거해 가 세탁기 빨래와 드라이클리닝 등을 해주는 세탁 분야 O2O업체 세탁특공대(왼쪽)와 런드리고. [세탁특공대 홈페이지, ㈜의식주컴퍼니]

집안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를 위해 최근에는 빨래대행 서비스도 등장했다. ‘세탁특공대’와 ‘런드리고’는 드라이클리닝, 가죽제품 관리뿐 아니라 세탁기에 돌리는 일반 빨래도 대행해준다. 고객은 앱으로 세탁물 수거 시간을 예약한 뒤 현관문 밖에 세탁물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 일반 빨래를 맡기는 고객의 경우 속옷까지 내놓는다고 한다. 이제는 집 안 청소를 대신해주는 파출부 아주머니도 전화가 아닌 ‘청소연구소’ ‘미소’ ‘당신의집사’ 같은 앱으로 예약할 수 있다. 아예 이런 서비스들을 한데 모아둔 ‘장터’도 등장했다. 4월 말 위메프가 출시한 ‘위메프오’ 앱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 외에도 세탁물 수거·배달(세탁특공대), 방문 세차·청소(조이앤워시), 마트 상품 배달(빠르다) 등이 탑재됐다. 위메프 관계자는 “O2O 서비스가 다양해지다 보니 이것들을 한데 모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O2O 통합 플랫폼 위메프오를 출시했다”고 전했다.


시간과 삶의 질을 ‘사는’ 것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는 지난 1년간 7만 원짜리 세트가 1만 개 이상 판매됐다(위). 네이버도 지난해부터 ‘오디오클립’이라는 오디오북 서비스를 개시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 네이버 오디오클립 홈페이지]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는 지난 1년간 7만 원짜리 세트가 1만 개 이상 판매됐다(위). 네이버도 지난해부터 ‘오디오클립’이라는 오디오북 서비스를 개시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 네이버 오디오클립 홈페이지]

책을 ‘귀로 듣는’ 오디오북도 게으른 경제로 해석된다. 중국의 1등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의 이름이 아예 ‘란런팅수’(懶人聽書·게으름뱅이의 책 듣기)다. 이 업체의 슬로건은 ‘책으로부터 두 눈을 해방시켜 세상을 듣는다’. 한국무역협회가 3월 내놓은 보고서 ‘최근 중국 란런경제의 발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이 업체는 3억2000만 명의 회원과 7만 개 이상의 프로그램, 1만 개 이상의 오디오북 작품을 보유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오디오북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국내 1위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 관계자는 “오디오북시장이 지난해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현재 팟빵 내에서 1000여 개 오디오북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오디오북 분야도 동화책에서 소설, 역사, 인문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분야로 넓어지고 있고 출판사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위기다. 오디오북을 왕성하게 제작하는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해 5월 유명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 단편소설들을 읽어주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를 선보였는데, 7만 원짜리 세트를 1만 개 이상 판매했다. 엄진섭 커뮤니케이션북스 상무이사는 “시청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동영상 콘텐츠와 달리 오디오북은 상당히 밀도 높은 콘텐츠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운전이나 운동,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게으른 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게으름뱅이는 ‘시간이 남아도는데도 제 몸 움직이기 귀찮아 쓸데없이 돈 써가며 필요를 충족하는’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과 이 시장 참여자들의 시각이다. 간편함과 편의를 강조한 산업 흐름에 ‘게으르다’고 명명한 것부터가 구세대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는 “요즘 스타트업계에서는 ‘본 투 비 모바일(Born to be Mobile)’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며 “모바일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는 기술이 주는 혜택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이대형 데이터마케팅코리아 대표는 “모바일 기술에 좀 더 친근한 밀레니얼 세대가 빨래와 청소, 장보기 등을 당연히 직접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적 편리함을 선호하는 데 세대 구분은 없다”며 “이들은 비용보다 시간에 가치를 더 두는 소비자”라고 설명했다. 어느 사이엔가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 이동통신 요금이 기본 생활비 항목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앞으로는 생활의 수고를 덜어주는 각종 O2O 비용이 기본 생활비로 간주될 것이란 전망이다. 

세탁특공대에 따르면 애초 1인 가구를 타깃 고객으로 설정했지만, 실제 고객 중에는 맞벌이나 아이를 둔 가정이 상당수라고 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9’도 가정간편식 소비 증가에 대해 “요리 시간을 최대한 줄여 휴식과 자기계발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세대의 가치관”이라며 “이러한 경향은 자녀가 있든 없든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방과 세탁실 없는 스위트 홈을 향해

간편과 편의로 무장한 게으른 경제는 앞으로 일상생활의 모습도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는 “세탁 혁신으로 주거공간 혁신을 이루려 한다”고 말했다. 가정간편식 보급으로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주택시장에서 주방 면적이 작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빨래를 외부에 위탁함으로써 집 안에서 세탁기, 건조기, 의류관리기를 없애 주거 쾌적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팟빵 관계자는 “앞으로는 오로지 오디오북만 찾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미국 오디오북출판협회(APA)가 지난해 실시한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디오북에만 집중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게으른 경제도 예외 없이 새로운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뭐든지 집으로 빠르게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고객의 사생활 보호 문제와 배송기사 처우, 교통안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게으른 경제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형 대표는 “편리한 기술과 상품·서비스를 체험한 소비자는 다시는 불편한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한다”며 “앞으로는 주유소에 간 김에 세탁물을 맡기는 등 소비자의 의사결정 과정(Consumer Decision Journey)에 부합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간동아 2019.06.07 1192호 (p10~15)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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