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장인정신이 빚은 정열의 와인

중동의 진주, 샤토 무사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12-29 14: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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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정신이 빚은 정열의 와인

    샤토 무사르 화이트(왼쪽)와 샤토 무사르 레드. 사진 제공 · 샤토 무사르 웹사이트

    와인 역사는 8000년이 넘는다. 가장 오래된 와인 유물은 터키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 조지아에서 발견된 와인용 토기로, 기원전 6000년 무렵 제작됐다. 와인의 중동지방 유래설이 나오는 이유도 조지아 유물뿐 아니라 많은 와인 유물이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서 발굴됐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전파되며 중동국가 대부분에서 와인이 사라졌지만, 한 국가에선 예외였다. 바로 레바논으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해온 역사 덕에 와인문화가 살아남았다. 지금도 약 30여 개 와이너리가 있는데, 그중 샤토 무사르는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최고급 와이너리다.
    무사르는 1930년 가스통 오샤르(Gaston Hochar)가 설립했다. 가스통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처럼 기품 있는 스타일’을 표방했고, 이 와인은 당시 레바논에 주둔하던 프랑스 장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내수시장 위주였던 무사르 와인을 세계무대로 진출시킨 사람은 가스통의 아들 세르주(Serge)였다. 그는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와인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보르도대에서 양조학을 공부한 뒤 1959년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세르주는 무사르 레드 와인의 최적 블렌딩 비율을 찾는 데 18년을 투자할 정도로 와인에 대해선 고집스러운 장인이었다. 그는 레바논 내전(1975~90) 중에도 1976년과 84년을 제외하곤 매년 와인을 생산했다. 총알과 포탄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고 24km 떨어진 와이너리까지 운반해 와인을 만들었다.
    무사르의 대표 와인은 와이너리 이름을 그대로 딴 샤토 무사르 레드와 샤토 무사르 화이트다. 이 두 와인 모두 7년이라는 긴 숙성을 거친 뒤 시장에 내놓는다. 레드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카리냥(Carignan), 생소(Cinsault) 포도를 블렌딩해 만들고, 화이트 와인은 레바논 토착 품종인 메르와흐(Merwah)와 오바이데흐(Obaideh)로 만든다. 샤토 무사르 레드는 자두, 크랜베리, 체리, 무화과, 대추야자가 뒤섞인 농익은 과일향이 매혹적이다. 와인을 목으로 넘긴 뒤에도 진한 여운이 입안에서 오래 맴돈다. 화이트는 묵직하면서도 상큼한 레몬과 꿀향이 특징이다. 질감이 부드럽고 매콤함도 살짝 느껴진다.
    무사르는 와인의 개성을 극대화하고자 레드 와인을 여과하지 않고 병입한다. 따라서 찌꺼기가 많을 수 있으므로 마시기 하루 전 와인병을 세워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마시기 몇 시간 전 디캔터로 옮겨 찌꺼기를 거르고 마시는 것이 좋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 모두 오랜 병숙성 뒤 출시되는 만큼 디캔팅으로 산소와 충분히 접촉시켜주면 와인이 훨씬 더 부드럽고 향도 풍부해진다.
    2014년 12월 마지막 날, 세르주가 75세를 일기로 갑자기 사망했다. 전 세계 와인 잡지가 그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을 만큼 그는 레바논만이 아닌 세계가 인정하는 와인메이커였다. ‘샤토 무사르 2014’는 지금 그의 마지막 정열을 품고 익어가고 있다. 이 와인은 2021년 출시될 예정이다. 세르주는 떠났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그가 남긴 와인을 음미하며 오래도록 그를 기억할 것이다.
    장인정신이 빚은 정열의 와인

    샤토 무사르의 와인 셀러(왼쪽)와 포도밭. 사진 제공 · 샤토 무사르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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