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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자녀 땜에 시간 뺏겨도 “난 행복해”

미취학 자녀 둔 부모 절반가량 자유시간 부족 느끼지만 삶 만족도는 미혼보다 훨씬 높아

자녀 땜에 시간 뺏겨도 “난 행복해”

[shutterstock]

[shutterstock]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당시 몇 개월 전 아빠가 된 캐나다인 친구에게 물었다. “아빠가 되니 어때?” 아기가 정말 예쁘다거나, 매순간 행복하다거나 하는 답을 기대하고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그때는 잘 몰랐지만 5년째 아이를 키우는 지금, 나는 그의 답변에 200% 공감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혹은 산후조리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부모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급감한다. 아기를 돌보는 엄마들이 화장실조차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약간 숨 쉴 틈이 생기지만, 이내 집안일이나 직장일이 그 자리를 채운다. 

실제로 한국에서 부모가 된 이후 겪는 일상의 변화는 어느 정도일까. 하루 24시간을 10분 단위로 기록한 2014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자료를 이용해 분석해봤다. 


자녀 땜에 시간 뺏겨도 “난 행복해”
‘그래프1’은 30~44세 취업 남녀를 대상으로 미혼, 자녀 없는 부부, 그리고 만 6세 이하 유아를 둔 부부의 하루 시간 사용 패턴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를 시간균형모델(Life Balance Model)에 기반해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시간균형모델은 일상생활을 크게 △잠이나 식사와 같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필수유지시간(Regenerative time) △일이나 가사노동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활동을 위한 의무시간(Constrained time)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시간(Discretionary time)으로 나눈 뒤 세 영역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 살펴보는 접근 방식이다. 하루 24시간 중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묶인 시간’ 혹은 제한된 시간의 성격을 지닌 의무시간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시간 압박과 피로를 경험할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자녀 어릴수록 ‘의무 시간’ 비율 높아

자녀 땜에 시간 뺏겨도 “난 행복해”
살펴보면 미취학 자녀를 둔 집단의 하루 평균 의무시간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취업한 엄마의 경우 미혼 또래집단에 비해 90분이나 더 많은 시간을 의무시간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유시간은 미혼 또래집단에 비해 80여 분 적었다. 이를테면 30대 중반 미혼 여성이 퇴근 후 휴식 삼아 짧은 영화를 한 편 볼 동안 퇴근한 늦맘은 아이를 돌보며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6세 이하 자녀를 둔 40대 취업 여성이 시간 빈곤에 가장 취약하다는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육아와 가사에 상대적으로 덜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 아빠’의 경우에도 또래 미혼 남성에 비해 1시간 가까이 더 많은 의무시간을 사용하는 한편, 자유시간은 1시간가량 적었다. 이는 유급노동시간은 미혼 남성과 마찬가지로 높지만, 퇴근 후 아이를 돌보기 위해 1시간가량을 사용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시간 사용 형태는 높은 시간 압박(Time Pressure)과 피로로 연결된다. ‘그래프2’는 각 집단별로 평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보여준다. 미혼 남녀의 약 30%만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반면, 미취학 자녀를 둔 남녀의 경우에는 절반가량(남성 48%, 여성 50%)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시간이 가끔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경우를 포함하면 30, 40대 아빠의 86%, 엄마의 89%가 시간 압박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 40대 부모의 경우에는 피로도도 높았다. ‘하루 일과 후 매우 피곤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미혼 남성의 경우 26%, 미혼 여성의 경우 34%인 데 비해 미취학 자녀를 둔 경우는 이 비율이 각각 남성 45%, 여성 42%에 달했다. 

이쯤 되면 역시 비혼 혹은 무자녀가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퇴근 후 소소하게 즐기는 나만의 여유, 독서의 즐거움, 주말 아침의 늦잠, 데이트, 영화감상을 포기한 채 익숙지 않고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집안일,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이,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급한 마음으로 시간에 쫓기는 일상, 피로에 찌든 배우자의 투덜거림을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실제 그렇게 사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결혼이나 출산을 주저하는 사람도 적잖을지 모른다. 


자녀 땜에 시간 뺏겨도 “난 행복해”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취학 자녀를 둔 30, 40대 엄마 아빠가 느끼는 평소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가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이다(그래프3 참조). 미혼 남성의 경우 ‘평소 삶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이 25%인 반면, 아빠들의 경우 41%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시간 부담에 가장 시달리는 취업한 엄마들의 경우에도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44%에 달해 33%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한 미혼 여성들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삶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미혼 남성은 1.6%에 그친 반면, 아빠들은 8.9%가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경우도 같은 응답을 한 미혼 여성의 2배에 가까운 9.3%의 엄마가 ‘삶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결과는 소득 수준이나 건강 같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늦맘이 되기 전의 나였다면 아이로 인해 그토록 힘든 일상을 사는 30, 40대 엄마 아빠가 오히려 자유로운 미혼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콘서트나 영화관에 가본 것은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마음껏 낮잠을 자본 때도 아마 임신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상을 사는데도 더 만족스럽다니. 아마 너무 힘들어 스스로를 위안하는 정신승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싱글보다 삶 만족도 2배가량 높아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설거지 하는 동안 굳이 내 다리에 매달려 깔깔거리는 아이가 주는 기쁨을. 유치원이 끝날 무렵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팔짝 뛰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따스함을. 잠들기 전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품에 안고 도란도란 그림책을 읽어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물론 같은 30, 40대 엄마 아빠라 해도 굳이 한국처럼 모두가 높은 의무시간에 신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북유럽 국가나 네덜란드와 같이 아이가 있으면 유연하게 근무시간을 쓰면서 남녀 모두 일과 가사, 육아의 짐을 나누며 좀 더 여유 있게 일상을 꾸려가는 사회도 있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지 않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30, 40대 부모가 이렇게 힘든 일상을 사는 것이 ‘괜찮은’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든 이 짐을 덜고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더 크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다만 현재 한국에서 부모로 살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흔히 이런 종류의 글에 달린 댓글에 보이듯) ‘비혼만이 답’인 것 또한 아닐 수 있다. 그 무엇보다, 원한다면 누구나 아이를 키우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주간동아 2019.03.01 1178호 (p64~66)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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