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63

2018.11.09

늦맘이어도 괜찮아

고령 산모니까 제왕절개 해야 한다?

순산체조 등 준비 잘하면 40대에도 자연분만 가능

  • 입력2018-11-09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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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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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만실 침대에 눕는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우와,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통증이 아니야!’ 머릿속에 냉정한 계산이 스쳐갔다. ‘노산이라 분만 중에 체력이 떨어지면 중간에 수술할 수도 있다고 했었지.’ 그동안 열심히 자연분만을 준비했고 열두 시간 이상 진통을 잘 견뎌왔지만, 막상 출산할 때가 돼 분만실로 옮겨지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정색하고 말했다. “저, 수술해주시면 안 될까요?” 

    의료진의 격려와 도움으로 나는 결국 무사히 자연분만을 했지만, 한국에서 35세 이후 출산하는 늦맘의 경우 젊은 여성에 비해 제왕절개분만율이 매우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출산한 전체 기혼여성의 39.1%가 제왕절개분만을 했다(이 수치는 2017년 45%까지 상승했다!). 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30세 미만 산모의 33.3%, 30~34세 산모의 35.4%가 제왕절개분만을 한 반면, 35~39세 산모는 절반이 넘는 50.4%, 40~45세 산모는 61.4%가 제왕절개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그래프1 참조). 

    제왕절개분만은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산모와 아이의 안전을 위해 시행하는 수술적 방법이다. 그러나 자연분만에 비해 산모의 회복이 더디고 감염이나 과다출혈, 방광이나 장 손상 등 부작용 위험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제왕절개분만을 권고하고 있으며, 그 비율을 전체 산모의 10~15%로 본다. 

    노산은 의학적으로 제왕절개분만을 피하기 어려울까. 고령 산모가 증가하면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제왕절개분만율이 높아지고 있는 경향을 고려하면 그럴 법도 하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산모 연령이 높을수록 분만 중 제왕절개를 할 가능성이 증가했으며, 특히 산모 연령과 순산에 중요한 자궁 수축력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Smith, Cordeaux, White 등, 2008). 노르웨이의 최근 연구에서도 20대 산모에 비해 늦맘의 제왕절개분만 비율이 2.5배가량 높았다(Herstad 등, 2016).

    한국 제왕절개분만율 45%로 세계 최고 수준

    하지만 숫자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노르웨이의 연구에서 건강한 산모가 진통이 오기 전 미리 제왕절개분만을 하겠다고 결정한 경우는 20대가 0.6%, 30~34세가 1.3%, 35세 이상은 3.4%에 불과했다. 분만 중 응급 제왕절개분만을 한 경우도 30~34세가 11.6%, 35세 이상이 16.9%에 그쳤다(표 참조). 다시 말해 35세 이상 늦맘의 80%가 자연분만을 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고령 산모의 증가와 함께 제왕절개분만이 늘어났다고 우려를 표하는데, 제왕절개분만율이 26%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그래프2 참조).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렇게 제왕절개분만율이 높을까. 여러 사회적·구조적 이유가 있겠지만, 제왕절개분만의 상대적 위험성이나 회복 기간의 불편함, 후유증 가능성 등을 산모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진통 및 분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도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테다. 영국은 특별한 의학적 필요성이 없는 산모가 제왕절개분만을 고려할 경우 수술이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후 출산에 미칠 영향, 회복 기간 및 아이와 교감 등에서 자연분만과 차이점 등을 상세히 적어놓은 안내문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규정이 없어 많은 산모가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야 제왕절개분만을 한 산모가 퇴원이 더 늦고 회복 기간도 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와 산후조리원에 같이 있었던 한 산모는 “제왕절개분만 후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며 “출산 후 바로 걸어 다니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자연분만 산모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진오비산부인과의원은 연평균 제왕절개분만율이 10% 미만인, 한국 사정에선 ‘특이한’ 산부인과다. 심상덕 원장은 “고령 산모는 젊은 산모에 비해 뼈가 덜 유연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가 많다고 다 수술하거나 젊다고 다 자연분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신체적·정신적 준비”라고 말했다. 

    고령 산모의 자연분만을 위한 심 원장의 권고는 이렇다. “임신 전부터 체력을 키우고, 임신 중에는 골반을 유연하게 하고 복부 근육을 강화하는 순산체조를 열심히 할 것.” 심 원장에 따르면 체력, 영양 관리를 포함해 건강관리에 전반적으로 힘쓴 산모는 40세 정도까지는 순산 여부 측면에서 젊은 산모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 먹고 보습을 잘하면 피부 주름이 늦게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늦맘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젊은 산모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의사도 그만큼 신경 써서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심 원장은 “진통 중인 젊은 산모의 경우 두세 시간에 한 번 심장 소리 등을 확인하면 되지만, 35세 이상 산모는 혈압이나 태반에 이상이 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자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피부’ 가꿔가듯이

    초산은 진통과 분만이 야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밤새 세심하게 산모를 살펴야 하는 자연분만을 권장하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반면 제왕절개분만은 의사 근무시간 중 아무 때나 정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적 필요성이 없는데도 제왕절개분만을 한 경우 단점이 적잖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늦맘이더라도 안전하게 자연분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즉 각 병원의 제왕절개분만율을 공개하고 분만 방식의 위험도와 장단점 등 정보를 제공해 늦맘이 충분히 숙지한 뒤 병원과 분만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 ‘무통 주사’라고 불리는 경막외 마취주사도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출산 과정에서 제때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해 난산이나 응급 제왕절개수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 산모와 의사 간 신뢰도 중요하다. 임신과 출산은 마라톤처럼 긴 여정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은 늦맘에게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 

    출산 과정에 대한 공부, 호흡법이나 힘주기 연습, 이완과 명상 훈련 등 분만 시 통증을 줄이고 견뎌낼 수 있는 방법들을 젊은 산모보다 더 열심히 익힐 필요가 있다. 진통이 올 때 오히려 몸에서 힘을 빼 이완한다든지, 정확한 방법으로 힘을 준다든지 하는 훈련이 순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 평화로운 분만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본 것이 출산 통증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줄이는 데 힘이 됐다. 35세가 넘은 늦맘은 직장에서 한창 바쁜 시기에 임신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준비를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주변의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고령 산모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걱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한다. 걱정이 많은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위험을 알고 준비를 잘한다면 늦맘도 순산할 수 있다. 순산하는 늦맘이 늘어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왕절개분만율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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