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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맛, 신화가 살아난다

전설의 그리스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태고의 맛, 신화가 살아난다

태고의 맛, 신화가 살아난다

그리스 산토리니 와인(왼쪽)과 산토리니 아시르티코 포도밭.

그리스는 기원전 3000년부터 포도를 재배했다. 유구한 와인 역사를 가진 나라답게 그리스에는 생소한 이름의 토착 품종이 많고 와인 관련 설화도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에 대한 이야기다. 제우스가 인간 여인과 바람을 피워 헤라클레스를 낳자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케네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노예로 만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12년간 열두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했는데, 첫 번째가 네메아(Nemea) 계곡에 사는 불사신 사자를 퇴치하는 일이었다. 화살이나 칼로는 죽일 수 없는 그 사자를 헤라클레스는 육탄전으로 물리쳤고, 승리를 자축하며 아기오르기티코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마신 와인이라고 하니 거칠고 남성적일 것 같지만 아기오르기티코는 체리향이 돋보이는 산뜻한 와인이다. 부드럽고 마시기 편해 레드 와인뿐 아니라 로제 와인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아기오르기티코는 그리스 여타 지역에서 생산된 것보다 네메아산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고지대인 네메아는 기후가 서늘해 부드러운 아기오르기티코에 스파이스향과 타닌이 더해져 구조감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또 다른 적포도 시노마브로(Xinomavro)는 아기오르기티코와 정반대로 묵직하고 힘찬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다. 시노마브로는 우리말로 ‘시고(xino) 검다(mavro)’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검붉은색에 높은 산도와 거친 타닌을 자랑한다. 향미도 독특해 올리브와 토마토 같은 채소향에 말린 꽃, 약초, 정향, 담배 같은 다양한 향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다.

태고의 맛, 신화가 살아난다

시노마브로 품종으로 만든 와인.

타닌이 워낙 강해 생산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와인은 떫고 마시기 힘들지만, 오랫동안 병 숙성을 거치면 우아한 와인으로 변모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시노마브로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명품 와인 바롤로(Barolo)와 자주 비교된다. 오랜 숙성이 만들어낸 복합미를 좋아한다면 시노마브로 와인을 마셔보자. 시노마브로가 당신의 베스트 와인으로 기록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백포도로는 아시르티코(Assyrtiko)를 들 수 있다. 이 품종은 화산섬 산토리니(Santorini) 태생인데, 산토리니는 사막이나 다름없을 만큼 강수량이 적고 해풍도 강하다. 이 악조건을 견디기 위해 아시르티코는 새 둥지 같은 독특한 형태로 자란다.



아시르티코로는 단맛이 없는 드라이한 와인뿐 아니라 견과류향이 매력적인 스위트 와인도 만든다. 드라이한 아시르티코는 상큼한 과일향과 미네랄향이 좋아 우리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해물파전처럼 기름진 해산물 요리에 곁들이면 와인의 미네랄향이 해산물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와인의 높은 산도가 음식의 느끼함도 잡아준다.

그리스 와인은 품질이 워낙 뛰어나 고대에는 로마 귀족이 앞다퉈 찾았고 중세시대에는 북유럽에서 높은 값에 팔렸다. 하지만 15세기 중반부터 약 400년간 지속된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서 와인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교는 술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독립한 지 200년이 돼가는 지금 그리스 와인은 옛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리스가 고대 토착 품종을 되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태고의 맛을 품은 그리스 와인.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발전이 기대된다.



주간동아 2015.11.09 1012호 (p71~71)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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