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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반쪽 예산 KFX, 앞길 첩첩산중

계속되는 국내 기술 수준 논란…다시 부각되는 朴 대통령 ‘불통 리더십’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반쪽 예산 KFX, 앞길 첩첩산중

반쪽 예산 KFX, 앞길 첩첩산중
사업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돈이다. 기술이나 인력이 충분하더라도 예산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원활한 사업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허로 크게 홍역을 치른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이 이번에는 당초 요구한 예산의 60%가 삭감되는 재앙을 맞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직 기술협력업체와 체계통합을 위한 공식협상은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이미 예산이라는 암초에 반파된 KFX가 맞닥뜨릴 암초는 아직 여럿 남아 있다.

국방부에서 KFX 사업의 내년 예산으로 요구한 금액은 1618억 원. 그러나 기획재정부(기재부)가 내년 KFX 사업 예산으로 국회에 제출한 예산액은 670억 원. 당초 요구한 금액의 60%에 달하는 948억 원이 삭감된 것이다. 예산이 이 정도로 깎이면 KFX 사업은 지체를 피할 수 없다. 기재부의 예산 삭감 직후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국방부에 “계획했던 것보다 47% 수준의 인력만 투입이 가능해 목표 대비 41%만 사업 수행을 할 수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상임위) 내부의 예산결산소위원회(예결소위)를 거친 다음 상임위 전체회의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로 넘어간다. 예결특위에서 심의가 끝난 예산안은 내년 예산으로 확정된다. 통상적으로 정부 예산안은 상임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증액되고 이것이 예결특위에서 다시 조정되는 양상을 보이곤 하는데, 이번 KFX 사업 예산은 엄청나게 삭감된 정부안이 아무런 증액 없이 상임위인 국방위원회(국방위)를 통과하는 특이한 사례를 보여줬다.

국내 기술 수준 논란…14%냐 90%냐

반쪽 예산 KFX, 앞길 첩첩산중

정두언 국회 국방위원장(왼쪽)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8월 열린 새누리당 긴급 주요 당직자회의에서의 모습.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허 파문이 예산 삭감의 가장 큰 원인이다. 2013년 국방위는 KFX 예산집행의 선결과제 가운데 하나로 문제의 기술들에 대한 미국 측의 수출승인 확보를 요구했다. 국방위 위원들이 국내 기술 수준을 문제 삼자 장명진 방사청장과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 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90%의 기술을 이미 보유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도 방사청장과 국과연 소장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대면보고를 받고 “매우 중요한 사업이니 차질 없이 완수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이 11월 2일 발표한 KFX 사업 진상조사 보고서의 평가는 정반대다. 기획단은 보고서에서 국과연이 말하는 ‘핵심 기술 90% 보유’ 주장은 “이해관계가 있는 연구자와 업체 관계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불과한 것으로 객관적인 기술 평가도 아니다”라며 “2014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주관 하에 시행된 항전장비에 대한 객관적 기술성숙도 평가 결과 AESA(능동형위상배열) 레이더 자체의 국내 기술 수준이 14%에 불과해 체계개발 가능성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는데도 이 사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은 이튿날 AESA 레이더 기술 수준에 대한 해당 평가는 “국내 일부 업체의 자체 기술 수준 정도를 조사한 것으로 국과연을 포함한 국내 보유 기술을 전체적으로 조사한 결과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국과연은 지상용 및 함상용 AESA 레이더를 개발하면서 충분한 기술 수준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11월 4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국내에서 개발한 AESA 레이더는 해외 업체의 핵심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수준에 불과하다며 국과연 측 주장을 반박했다.

AESA 레이더의 국내 기술 수준을 둘러싼 논란은 KFX 사업이 앞으로 맞닥뜨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이전을 거부한 주요 기술은 AESA 레이더를 포함한 장비들을 기체에 제대로 장착하는 ‘체계통합’ 관련 기술. 이 때문에 AESA 레이더 개발을 완료하더라도 체계통합을 어떻게 할지가 또 다른 난관이다. 현 상황에서는 차기전투기(FX) 사업 기종으로 선정된 F-35A의 공급업체인 미국 록히드마틴이 KFX 사업의 기술협력 파트너인 만큼 록히드마틴과 협상해 비용을 지불하고 체계통합을 맡기는 것이 첫 번째 선택지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에 대해 록히드마틴과 공식협상은 진행된 바 없으며, 록히드마틴은 쌍발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 개발 사업 참여에 난색을 표했다고 김종대 단장은 말한다. “이러한 규모의 사업은 정부 차원의 협의가 필요한데 방사청은 록히드마틴과 협상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측에 떠맡긴 상태다. 총체적으로 ‘주인이 없는 사업’으로 전락했다.”

국방위는 일단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통과시키되 KFX 사업에 대해서는 11월 중 추가로 논의한 뒤 그 결과를 다시 예산안에 반영하겠다는 부대조건을 달았다. 국방위는 미국 측의 기술 이전 불허 파문 이후 KFX 사업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특히 정두언 국방위원장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10월 30일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사업 재검토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유 의원이야 예전부터 대표적인 KFX 사업 회의론자였으니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 위원장의 합류는 흥미롭다. 국방위 전체회의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 위원장의 사감(私感)까지 포함된 듯하다.

朴, 정두언 공개서한 무시, 사업 강행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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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KFX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앞)과 장명진 방위사업청장.

정 위원장은 회의 전날인 10월 29일 박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정 위원장은 서한에서 주요 기술 이전 무산으로 큰 차질을 빚게 된 KFX 사업을 재검토할 것과 감사원 감사에 착수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이 문제로 불러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겠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언제라도 공개적으로 토론할 용의가 있으니 허락해달라”고 할 정도로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바람을 맞았다. 10월 30일 전체회의를 마치면서 정 위원장은 대통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어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중략) 아직까지 (대통령의) 답장이 없는 상태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게 불편하다. 미국은 예산안을 처리할 때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러는데….”

정 위원장의 발언을 단순한 섭섭함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의 현행 삼권분립 구도 하에서 국회 권한은 예산안 심사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다. 예산안 심사는 물론 매우 강력한 권한이기는 하지만, 애당초 사업 방향이 잘못 잡히면 예산안 심사만으로는 이를 바로잡을 수 없다. 예산만 깎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행정부의 권한이 두드러지게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부 외에는 잘못된 사업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정 위원장의 ‘튀는’ 공개서한 발표에는 이러한 고려도 깔려 있다.

그런데 11월 1일 김재경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새누리당)이 KFX 사업의 내년 예산을 증액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기사 서두에서 설명했다시피 보통 예결특위에서는 사업 예산을 감액하는 쪽으로 조정한다. 이례적일뿐더러 정부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국방위의 의견을 무시하는 꼴이다. 정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월권”이라며 “김 위원장이 어디선가 ‘오더’를 받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같은 ‘오더’를 내릴 수 있는 곳은 청와대뿐이다.

KFX 사업 논란과 그 진행 양상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의 표본을 볼 수 있다. 이견은 무시하고 우회로를 찾아 환부를 강제 봉합하는 것. KFX 사업 예산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문제 해결 방식을 고집할 경우 KFX 사업이 도달할 곳은 밝은 창공이 아닌 어두컴컴한 심해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곳에는 소통이나 투명성 같은 민주주의의 덕목은 없고 무리한 봉합으로 인한 내출혈 따위만 있을 뿐이다. 그 피는 우리 국민이 낸 세금이다.



주간동아 2015.11.09 1012호 (p22~23)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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