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회

“빈 병은 너무 힘듭니다”

빈 병 보증금 인상으로 환경부·주류업계 갈등…안전한 회수 과정부터 보장해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빈 병은 너무 힘듭니다”

“빈 병은 너무 힘듭니다”

음식점에서 수거되는 빈 병은 회수용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주류회사로 옮겨진다. 환경부에 따르면 음식점에서 반환되는 빈 병의 경우 양호한 상태로 거의 전량 회수된다.

어두운 공장 안, 동이 트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지난 밤사이 나는 다시 완벽한 존재가 됐습니다. 몸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받고 깨끗하게 씻었지요. 먼저 단장을 끝낸 친구들이 보입니다. 햇빛이 비치면 우리의 초록색이 예쁘게 반짝이겠지요. 밝은 세상으로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빈 병’입니다. 어느 유리공장에서 태어났어요. 모래, 소다회, 석회석, 그리고 깨진 유리가 내 몸을 이루고 있지요. 깨진 유리는 나보다 먼저 부서진 내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평생 재활용되기 위한 존재들이거든요. 여러 재료가 용해로에 모여 1600도 온도에서 가열되면 끈적끈적한 유리물이 됩니다. 그리고 병을 만드는 틀에서 몇 시간 동안 잠을 자지요. 틀 밖으로 나오니 나는 예쁜 소주병이 돼 있더군요. 그리고 주류회사로 옮겨졌습니다. 내 몸은 투명한 술로 채워졌고 머리엔 뚜껑도 씌워졌어요. 그동안 네 번 재사용됐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 뚜껑이네요. 한국에선 빈 병이 평균 8회 재사용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쓰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술을 담아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요.

한 해 49억 병, 이동 중 다수가 깨져

빈 병인 나에게도 ‘몸값’이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빈 병 보증금’이라 부르지요. 소주병(360ml 기준)은 40원, 맥주병(500ml 기준)은 50원이에요. 음식점이나 가정에서 나온 빈 병을 슈퍼마켓이나 도매점에 반환하면 이 돈을 받아요.

그런데 요즘 내 몸값이 화제인가 봅니다. 환경부가 9월 3일 ‘빈용기보증금 및 취급수수료 인상안’을 입법 예고했거든요. 빈 병 보증금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같았는데 소주병은 100원으로, 맥주병은 130원으로 인상한다고 해요. 이 법안은 2016년 1월 21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환경부는 21년 동안 동결했던 빈 병 보증금을 왜 올린다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재사용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보증금을 올리면 개인이 소매점에 빈 병을 반환하는 비율이 높아질 테고, 그래야 빈 병이 덜 깨져 오래 쓸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쓰레기장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깨진 우리 친구들을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어떻게 쓰이고 반환되고 다시 태어나는지 좀 더 설명해볼게요.

2014년 국내에서 출고된 소주·맥주병은 49억4000만 병. 이 중 31억6000만 병이 음식점에서, 17억8000만 병이 가정에서 소비됐어요. 가정에서 소비된 경우 개인이 빈 병을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 반환하는 경우는 24.2%에 불과합니다. 빈 병 보증금이 높지 않을뿐더러 무거운 우리를 운반하기도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소비자는 대부분 가정에서 나온 빈 병을 분리수거함에 넣죠. 그러면 공병상이 수집해 고물상이나 도매점 또는 제조사에 반환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공병상이 반환하는 빈 병의 17%는 정상 품질이 아니어서 재사용할 수 없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분리수거함에 던질 때 이미 상처가 납니다. 공병상이 마대에 빈 병을 가득 넣어 운반할 때도 금이 가지요. 나도 며칠 동안 분리수거함 안에 있을 때 날아오는 유리병에 여러 번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내 몸에도 얇은 균열이 있어요.

음식점에서 반환될 때는 안전하게 이동해 큰 문제가 없답니다. 빈 병 회수용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지거든요. 주류 도매상이 음식점에 새 술을 배달하고 우리를 트럭에 실어 주류회사로 돌아가지요. 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플라스틱 상자가 아닌 종이상자나 비닐봉지에 20~30개씩 담겨 이동하기도 합니다. 어느 비 온 날에는 종이상자가 젖어 우리가 한꺼번에 상자 밖으로 쏟아졌답니다. 운전사는 화를 내면서 우리를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던졌지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친구가 다치고 깨졌습니다.

주류회사로 반환되면 기계로 안전성 검사를 받습니다. 특히 주둥이에 흠집이 나기 쉬우므로 이 부분을 꼼꼼하게 확인받아요. 그리고 세척기에 돌려집니다. 재사용 허가를 받은 빈 병은 새로운 술로 채워집니다. 허가를 받지 못하면 우리가 태어난 유리공장으로 돌아가지요. 이곳에서 우리는 무참히 깨지고 다른 재료와 섞여 새로운 유리병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순환 과정이에요.

보증금 몇 푼으로 안전 반환?

환경부는 빈 병 보증금을 올리면 개인의 빈 병 반환율이 늘어나 우리가 더 안전한 상태로 회수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반환한 빈 병의 파쇄율은 2%에 불과해 상태가 양호한 편이거든요. 현재 빈 병의 재사용률은 전체 생산량의 85%인데, 95%까지 올라가면 주류업체가 451억 원의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환경부는 ‘보증금 회수는 소비자 권리’라는 인식을 확산해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고 자원도 절약하겠다는 계획이에요. 해외 선진국에서는 빈 병이 평균 20회 재사용되는데, 현재 국내 수준(8회)을 그만큼 끌어 올리자는 것이지요.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이 정책에 대해 주류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해요. 한국주류산업협회(주류협회)는 10월 22일 환경부에 ‘빈용기보증금 및 취급수수료 인상안’ 철회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류협회는 주류 가격 인상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시행되면 우리의 ‘취급수수료’도 올라갈 예정이거든요. 취급수수료란 제조원가에 포함되는 것으로, 제조사가 도매점이나 음식점으로부터 빈 병을 회수할 때 지불하는 금액입니다. 소주병은 16원에서 33원으로 106%, 맥주병은 19원에서 33원으로 74% 오를 예정인데요. 이렇게 되면 소주 출고가는 1002원에서 1097원으로 9.5%, 맥주는 1129원에서 1239원으로 9.7%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주류협회는 “식당의 경우 보증금 인상 등을 이유로 지금보다 500~1000원 비싸게 판매할 수 있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이번 인상안이 국산 주류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수입 주류 가격이 꾸준히 낮아지는 상황에서 국산 주류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국산 소주와 맥주를 더욱 외면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수입 주류 빈 병은 해외까지 반환하는 물류비용이 커 재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 정책은 국산 주류에만 해당합니다. 게다가 분리수거정책이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증금을 몇십 원 올린다고 소비자들이 빈 병을 대형마트까지 들고 가는 습관을 들이지는 않아 정책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요.

환경부는 “보증금 인상분만큼 주류 가격이 오르기는 하겠지만, 이는 빈 병을 반납하면 환불받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기존과 달라진 점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보증금 인상 때문에 식당에서 주류를 500~1000원씩 더 비싸게 판매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업소용의 경우 거의 전량 회수되고 있어 보증금 인상과 주류 가격 변동은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있어요.

“빈 병은 너무 힘듭니다”
일부 단체는 환경부의 이번 정책에 찬성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한국소기업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빈 병 회수 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며 “도·소매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빈 병 회수를 통해 주류 제조사가 가져가는 편익이 연 5000억 원이 넘을 것이다. 주류 제조사들이 환경보호제도 개선안을 거부하면 우리도 빈 병을 회수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빈 병 사재기’ 발생 혼란도

환경부의 이번 정책으로 각종 혼란도 일어나고 있어요. 최근 ‘병파라치’라 부르는 사람들이 빈 병을 사재기해 쓰레기장에서 빈 병이 줄었다고 합니다. 빈 병을 대량으로 모아뒀다 내년 보증금이 오르면 현 보증금보다 비싸게 받고 반환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데요. 주류협회에 따르면 9월 3일 입법 예고한 후 빈 병 반환율이 10~20% 줄어들어 일부 주류업체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상되는 보증금은 내년 1월 21일 이후 판매되는 병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빈 병 사재기는 효익이 없습니다. 환경부는 “법 시행일 전 구매한 병은 헌 병 보증금이 지급되고, 차익을 위해 헌 병을 새 병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나 폭리를 목적으로 빈 용기 반환을 기피하면 관련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주류업계는 “매일 약 2000만 개의 빈 병이 제조사로 회수되는데 헌 병과 새 병을 일일이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며 환경부의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환경부와 주류업계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빈 병 재사용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 걸까요. 먼저 우리가 버려지고 회수되는 과정이 안전하면 재사용률은 훨씬 높아질 텐데요. 공병상은 우리를 고물상에 가져다줘도 “어차피 일부 파손된 것”이라는 이유로 보증금을 100%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를 더 거칠게 다루기도 하고요. 소비자도 우리를 깨끗하게 다뤄줬으면 합니다. 빈 병에 담뱃재, 오물, 휴지를 넣으면 빼기 정말 힘들거든요. 분리수거함에 대충 던져 넣으면 우리는 깨질 수밖에 없어요. 환경보호와 자원 절약, 좋은 목표예요. 하지만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운반되는 상황에서 보증금 약간 올린다고 우리가 더 귀하게 다뤄질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다시 주류 제조사로 되돌아왔네요. 그동안 균열이 온몸에 퍼져 곧 부서질 것 같았는데, 기계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나도 세상과 작별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태어난 유리공장으로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용해로 너머로 다른 회사에서 온 소주병들이 보이네요. 우리는 재사용되기 위해 규격이 표준화돼 있어 담는 술도, 붙이는 스티커도 여러 번 바뀌거든요. 나도 매번 다른 라벨을 붙이는 등 여러 브랜드의 소주병으로 사용됐으니까요. 내 몸은 이제 깨어지고 다른 친구들의 몸과 섞여 새로운 빈 병으로 태어나겠지요. 또래 친구들은 8회 정도 쓰였는데, 나는 횟수의 절반을 이제 겨우 넘겨 아쉽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덜 험하게 다뤄지고 오래 쓰일 수 있을까요.



주간동아 2015.11.09 1012호 (p40~42)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