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2

2015.11.09

반기문보다 뜨거운 안희정 대망론

대전·충청의 선택에 쏠린 눈…대전시장 중도하차 총선 최대 변수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11-06 15: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반기문보다 뜨거운 안희정 대망론

    19대 총선(왼쪽)에서 새누리당이 우위를 보였던 대전·충청권이 지난해 지방선거(오른쪽)에서는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 충북도지사 등 광역단체장을 야당이 싹쓸이하면서 야권 우세지역으로 바뀌었다. 내년 총선에서 대전·충청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전국 판세가 달라질 전망이다.

    때는 2006년 5월 20일 오후 7시 20분. 장소는 서울 신촌 한 백화점 앞.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보름여 앞둔 이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커터칼 테러’가 발생했다. 괴한이 휘두른 칼에 박 대표 오른뺨에 11cm 길이의 자상(刺傷)이 생긴 것. 박 대표는 2시간에 걸쳐 60여 바늘을 꿰매는 큰 수술을 받았다. 유정복 당시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현 인천시장)이 수술에서 막 깨어난 박 대표로부터 들었다며 전한 첫마디는 “대전은요?”였다. 박 대표의 이 한마디는 대전시장 선거 판세를 일순간 바꿔놓았다. 당시 대전시장 선거는 염홍철 현직 시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상황. 현직 프리미엄에 여당 프리미엄까지 등에 업은 염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표의 한마디로 전세는 급반전했고, 결국 박성효 한나라당 후보가 신승을 거뒀다.

    영호남의 축소판, 대전

    대전과 충남, 충북 등 이른바 충청권은 전국 선거 판세를 가르는 전략적 요충지다. 지도를 펴놓고 전국 선거 결과를 살펴봤을 때 대전·충청이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호남이 고립되거나 영남이 포위되는 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대전시장 승리를 발판으로 한나라당에서 충남도지사(이완구), 충북도지사(정우택)까지 모두 석권하면서 호남 고립 구도가 완성됐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는 2006년 지방선거와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대전시장은 물론 충남도지사, 충북도지사, 심지어 강원도지사까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하면서 영남 포위 구도가 만들어진 것.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충청권에서 나타난 야권 우위의 정치 지형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국회선진화법 무력화를 위해 내심 목표로 삼고 있는 181석 달성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전·충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정치적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2012년 4월 치른 19대 총선에서 충청권, 특히 대전의 선거 결과는 대한민국 영호남 선거 결과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쪽은 야당세, 동쪽은 여당세가 강했다. 대전 동쪽 동구, 중구, 대덕구는 새누리당이, 대전 서쪽 서구갑, 서구을, 유성구는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승리했다.

    19대 대통령선거(대선)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초접전을 벌였다. 결과는 박 후보의 2000여 표차 신승.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대전시장은 물론,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배출한 동구와 중구에서조차 야당에게 구청장 자리를 내줬다. 빨강과 파랑이 팽팽하게 맞서 균형을 이루던 대전이 새파랗게 물들며 외견상 야권 우세로 바뀐 것이다.

    새정연 모순 해결할 적임자

    반기문보다 뜨거운 안희정 대망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전이 야당세로 돌아선 것은 2012년 대선 직전 합당한 ‘자유선진당(합당 당시엔 선진통일당) 출신 홀대’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대전지역 한 인사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당선한 동구청장과 중구청장은 모두 자유선진당 출신”이라며 “새누리당이 공천에서 배제할 움직임을 보여 지방선거 직전 야당으로 말을 갈아탄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대전·충청을 근거지로 하는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에 사실상 흡수 통합된 이후 대전·충청 정서를 대변해야 할 정당은 새누리당이 됐다. 그런데 여당이 충청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불만이 누적돼 지역 여론이 야당 지지로 돌아서게 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충청에서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해진 또 다른 이유가 ‘안희정 대망론’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야권 한 전략통 인사는 “안희정 지사가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뒤 안 지사를 차기 대권주자로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대전·충청을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며 “최근에는 당의 대주주인 호남과 당권을 쥔 PK(부산·경남) 출신 문 대표 간 갈등과 반목이 일상화되면서 중립지대에 있는 충청 출신 안 지사가 당이 처한 모순을 해소할 적임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여론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안 지사가 현직 광역자치단체장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점에서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며 “문재인 대표가 건재하는 현재의 당내 역학구도에서는 활동 공간이 열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한 지역 언론인은 “안희정 대망론은 이제 막 태동 단계”라며 “내년 총선에서 ‘안희정 사람들’이 대거 총선에 나서 선전한다면 소형 태풍 정도로 커질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안희정 대망론’이 야권 지지층을 결집할 구심이 되고 있다면, 대척점에는 ‘반기문 대망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반기문 대망론은 안희정 대망론에 비해 바람 강도와 세기가 현저히 약하다는 게 지역 내 여론이다. 충북 출신 한 인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국내가 아닌 국외에 주로 머물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반기문 대망론’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며 “내년 총선 때 반기문 대망론이 영향을 끼칠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충청 지역 인사도 “반기문 대망론은 정치권과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뚜렷한 실체가 없다”며 “아직 인구(人口)에 활발히 회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을 1년 6개월 앞두고 실시한 2006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선거의 여왕’인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한마디 말로 불리하던 대전·충청 여론을 급반전시켰다. 야당세로 돌아선 대전·충청 민심을 잡기 위해 여당과 청와대가 총선 직전 어떤 반전카드를 꺼내 들지 지역 정가가 주목하는 이유다. 특히 대전 정가에서는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권선택 대전시장의 중도 하차 여부에 관심이 높다. 만약 내년 총선에 대전시장 보궐선거까지 함께 치르게 되면 대전은 물론, 인근 충남과 충북까지도 파급효과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아직 권 시장에 대한 판결 기일을 확정하지 않고 있다. 만약 연말까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대전시장 보궐선거는 총선 이후로 미뤄지게 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