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마감시간 논란 시중은행 떨고 있니?

4시는커녕 한밤중 퇴근도 다반사…예대마진 장사는 옛말, 상품 판매에 매달리는 행원들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11-02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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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시간 논란 시중은행 떨고 있니?
    10월 초 은행권은 마감시간을 놓고 발칵 뒤집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구상에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며 “업무 방식을 바꿔서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는 140개국 중 26위로 전년도와 같았지만 금융 부문은 87위로 낮은 순위”라고 지적하고 적극적인 금융개혁을 주문했다. 정부가 4대 개혁 과제인 공공·노동·금융·교육 가운데 금융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최 부총리의 은행 마감시간 발언을 놓고 은행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은행원의 진짜 업무는 오후 4시 이후 시작되는데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 한 시중은행 입사 5년 차인 박모(33) 대리는 “은행 시스템이 전산화된 지 오래지만 실물 화폐와 전산 수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사람이 해야 한다. 은행 금고에서 돈이 드나들기 때문에 직원 한 명의 계산이 틀리면 다른 직원들과 일일이 대조해야 돼 일찍 끝나면 오후 8~9시에 퇴근하고, 계약서 확인 등 각종 서류작업까지 해야 하는 날에는 밤 10~11시 퇴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사정도 모르고 하는 소리”

    그러나 은행이 수익 창출을 위한 경영을 하지 않아 위기 상황에 처한 것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는 과거 은행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던 몇 가지 수익창구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이 이윤을 남기는 부분은 거래수수료,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카드·적금·펀드·방카쉬랑스 판매수수료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현재 거래수수료는 시중은행이 고객 모집을 위해 너나없이 할인 적용 혹은 면제정책을 펼쳐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예대마진 또한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 한 시중은행 입사 9년 차인 최모(40) 과장은 “기준금리가 7%일 때는 차익이 5~10%로 컸지만 지금은 기준금리가 1%대로 떨어지면서 차익도 1~2%로 낮아져 은행의 주된 수익으로 집계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은 상품 판매수수료가 은행의 중요한 수익 창출 수단이 됐다. 이 때문에 은행창구에서 고객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향후 고객 불만이 접수되는 등 심심찮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최 과장은 “상품 판매가 고스란히 실적으로 집계되는 상황이라 일부 은행원은 업무가 끝나면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등 다들 압박을 받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은행원 영업실적 목록에 ‘통일’이 있었다면 이미 통일이 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은행들이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수익이 줄자 은행들은 저마다 체급을 줄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집계한 최근 4년간 은행별 점포 수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시중은행 점포 수는 4419개로 3년 전에 비해 267개 줄었다(표 참조). 매년 새로 뽑는 인력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통계청이 집계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금융·보험업 취업자 수는 79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83만 명)에 비해 3만7000명 감소했다. 금융·보험업 취업자 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생산성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이다.

    마감시간 논란 시중은행 떨고 있니?
    관치경영으로 경쟁력 약화

    은행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는 뿌리 깊게 박힌 관치금융이 첫손으로 꼽힌다. 1970~80년대 급성장 시기 정부는 금융을 산업으로 생각지 않고 단순히 산업 발전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여겼다. 이 때문에 국가 발전은 이뤘지만 금융이 자생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동력은 생성되지 않았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미래전략실장은 “은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표되는 정책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여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친서민정책을 펼치며 은행에 서민금융 활성화를 주문했지만, 현 정부는 기술금융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5년마다 바뀌는 정책에 따라 일을 하다 보니 자생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관치금융은 정부 책임도 크지만 국민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은행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를 요구해왔고 정부 또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실장은 “부실은행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야 은행도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정부가 국민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해 개입한 측면이 큰데 이는 엄격히 분리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수익원 다변화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문제다. 예대마진과 각종 수수료 수익 외 금융상품 개발이나 은행별 차별화된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이 또한 관치금융 문제와 맞닿아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과 교수는 “은행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부가 통제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움직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수십 년간 은행은 수동적인 영업 형태에 길들여져왔고, 혁신에 게으른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위기가 닥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은행에 대한 금융 규제, 관치금융 문제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이효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글로벌 마켓에서 정부 규제가 큰 금융시장은 외면받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예금자보호 등의 명목으로 얽힌 규제가 많은데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이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이는 시대적 과제라 볼 수 있다. 정부의 금융 규제와 관치금융 문제는 4~5년 이내 철폐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은행 수익이 증가할 개연성이 낮기 때문에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모든 조직이 수익 저하 국면에서는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원가의 상당 부분을 인건비가 차지하는데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 해도 비용 절감은 이뤄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매출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 원장은 “과거 은행 경영진은 관리자 마인드로 운영을 해나갔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정해진 틀에서 경영을 해나갔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은행도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등 외형을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감시간 논란 시중은행 떨고 있니?

    수익이 감소하면서 각 은행이 점포 수를 줄이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좀 더 능동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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