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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남선희 신임 전통주갤러리 관장

“폭염에 안동소주 온더록 어때요?”

“전통주 하이볼, 막걸리 화채로 젊은 층에 어필 … 소비자, 기업, 정부의 가교 역할 할 것”

“폭염에 안동소주 온더록 어때요?”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8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전통주갤러리로 가는 길.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오르막길을 오르니 얼굴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소줏 고리 주구(注口)에서 떨어지는 증류식 소주방울이 이럴까. 땀방울도 뜨겁다. 전봇대에 걸린 강남대로98길이라는 도로명 간판도 폭염에 휘어질 듯하다. 영화관과 카페, 아기자기한 레스토랑이 밀집한 강남역 일대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강남역 인근에 전통주갤러리라니…. 묘한 웃음이 났다. 전통주갤러리는 강남구 테헤란로5길 51-20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Eeum)’ 건물 1층에 터를 잡았다. 문화관 2, 3층에서는 식품 명인들의 제품을 전시하고 전통식품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전통 한옥 건물일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화관은 테라스가 딸린 모던한 카페 건물이다. 


전통주 제조에 쓰이는 소줏고리. [조영철 기자]

전통주 제조에 쓰이는 소줏고리. [조영철 기자]

“폭염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전시물을 교체하느라 어수선하죠?” 

남선희(50) 전통주갤러리 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날은 휴관일이라 관람객은 없었지만, 직원들과 함께 전통주를 새로 전시하는 그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8월 1일부로 전통주갤러리 신임 관장에 취임한 남 원장과 마주앉았다. 

갤러리가 전통 한옥 건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대식 건물이네요. 

“2016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이음’을 개관하면서 서울 인사동에 있던 전통주갤러리를 이곳으로 이전했어요.” 



‘전통주=인사동’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전통주 하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찾는 옛 술로 인식하는데, 최근에는 젊은이와 외국인도 전통주를 많이 찾고 있어요. 특히 20, 30대 여성의 관심이 부쩍 커졌죠. ‘먹방’(먹는 방송) 트렌드에 맞춰 맛있는 음식에 곁들이는 술로 전통주를 찾기도 하고,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해요. ‘전통주 홍보관’(전통주갤러리)을 강남역으로 이전한 이유이기도 해요.”


‘전통주 홍보관’이 강남역으로 간 까닭

서울 계동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린 ‘향기로운 술 이야기’ 행사에 참여한 남선희 관장. [사진 제공 · 남선희]

서울 계동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린 ‘향기로운 술 이야기’ 행사에 참여한 남선희 관장. [사진 제공 · 남선희]

갤러리는 어떻게 단장하고 있나요. 

“3가지 섹션으로 준비 중이에요. 전통주 명인이 만든 술 코너가 있고, 매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대축제’ 수상 작품들, 그리고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양조장 대표 술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다양한 전통주를 맛보고 직접 구매 가능한 시음 및 판매 코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갤러리를 방문해 시음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술을 고르면 좋을 거 같아요.” 

전통주는 말 그대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제조법으로 만드는 술인가요? 


“전통주는 전통 양조 방법을 계승·보존하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술인데, 한국 풍토와 생활방식, 문화가 담긴 술이라고 보면 돼요.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오는 술이라는 의미가 크지만, 최근에는 포도 와인, 복분자 와인 등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도 ‘우리 술’이라고 부르고 있죠.” 

술은 잘하세요? 

“아뇨. 두세 잔이 주량이에요.(웃음)” 

어떻게 우리 술과 인연이 됐나요. 

“아버지 덕분이죠. 1999년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가 빚은 막걸리를 먹고 싶다’고 해서 직접 만들어봤어요. 누룩을 사러 간 시장의 상인이 알려준 술 빚는 법과 할머니로부터 들은 비법이 다르더라고요. 어쨌든 직접 빚은 맑은 술을 걸러서 아버지에게 드렸더니 ‘맛은 비슷한데 술 색이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죠.” 

그래서요? 

“수소문 끝에 박록담 선생님(한국전통주연구소장)을 찾아가 우리 술에 대해 배웠어요. 쌀과 누룩, 물이 잘 어우러지면 다양한 맛을 내는 술이 완성되는 매력에 빠져 3년간 ‘술 공부’만 했어요. 내친김에 2003년 서울시가 운영하는 종로구 계동 북촌문화센터에서 술 강의를 시작했고, 2008년에 현재의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을 설립해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15년째 술 교육을 하고 있네요.(웃음)”


내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술

전통주갤러리 내부 전시실. [조영철 기자]

전통주갤러리 내부 전시실. [조영철 기자]

아버지가 맺어준 전통주와 인연은 이후 남 관장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한국방송통신대 식품영양학과에 다시 입학했고, 농촌진흥청 양조기술과정과 경희대 한방약선전문가과정 등 전통주 관련 강의를 섭렵했다. 전통주 강의는 물론, 농식품부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 등 대외 활동도 많아졌고, 전통주를 주제로 한 책을 내기도 했다. 그가 설립한 연구원은 농식품부의 ‘우리 술 교육 훈련기관’에 선정됐다. 

“전공 분야도 아닌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분명 저는 행운아예요. 수강생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술을 빚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아요. ‘집에서 빚은 전통주를 마시려고 남편이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귀가한다’는 수강생의 말을 들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강의도 계속하나요. 

“그럼요. 최근에는 젊은 수강생이 많아요.” 

젊은 수강생들이요? 왜 그런가요. 

“수강료나 수업시간 등 ‘원가계산’을 하면 전통주를 사서 마시는 게 낫죠. 그런데 젊은이 중에는 마니아층이 꽤 형성돼 있더라고요. 내가 마신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찾아오거나, ‘내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술’이라는 데 의미를 두죠. 술 한 방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니 술을 아껴서 먹더라고요.(웃음)” 

전통주갤러리를 인사동에서 강남역 인근으로 이전한 것만 봐도 알만 합니다. 젊은 층에 ‘어필’하려는 노력이….
 
“그럼요. 젊은 세대가 전통주와 친숙해지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예요. 위스키나 외국 유명 맥주는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잖아요. 우리 전통주도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젊은 층을 겨냥한 다양한 전통주 시음도 준비하고 있죠. 먹방 트렌드에 맞춰 특정 요리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위스키 대신 전통주에 소다수와 얼음을 섞고 레몬이나 라임을 짜 넣은 하이볼을 추천하거나, 친구들과 ‘막걸리 과일 화채’를 만들어 즐길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하는 식이죠. ‘부어라 마셔라’ 하며 과음하는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에 전통주 한두 잔을 곁들이면서 식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일과 후 가족, 친구들과 소박한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 한 잔으로 웃음꽃이 피는 것처럼….” 

한국인이 좋아하는 전통주는 무엇인가요. 

“주세법(酒稅法)에 따른 전통주 분류는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뉩니다. 발효주는 다양한 농산물을 원료로 해 발효시켜 만든 술로 △막걸리(탁주) △약주(소곡주처럼 곡물, 누룩, 물을 원료로 해 발효시킨 뒤 고형분을 걸러낸 맑은 술) △청주 △과실주(와인)가 있죠. 이런 발효주를 증류 과정을 거쳐 알코올을 농축해 만든 술을 증류주라고 해요. △술을 끓여 증류한 소주인 증류식소주 △곡물이나 과실을 증류한 일반증류주 △증류주에 과실, 과즙, 약재를 넣은 리큐어가 있어요. 지난해 오프라인 판매 실적(하나로마트 POS 기준)을 보면 청주와 약주, 과실주가 많이 팔렸어요. 다만 전년과 비교하면 증류주 판매 증가율이 가장 높아요. 증류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죠.”


2030 여성, 전통주에 빠지다

예약 후 방문하면 다양한 우리 술을 시음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예약 후 방문하면 다양한 우리 술을 시음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2월 농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 빅데이터센터가 발표한 ‘빅데이터로 본 전통주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지난해 7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전통주 언급량이 2만 건을 넘어선 뒤, 지난해 말 3만 건을 돌파했다. 전통주 소비 장소로는 서울 강남과 전통주갤러리, 홍대 앞이 각각 1~3위, 인사동 6위, 이태원이 9위에 올랐다. 농식품부는 “전통주는 특별한 날보다 일상에서 다양하게 즐기고 있으며 20, 30대가 자주 찾는 강남, 홍대 앞, 이태원 등에서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온라인 판매지수를 비교하면 30, 40대의 구매 비중이 높고 20, 30대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전통주를 더 많이 구매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오프라인 판매 건수는 청주(288만여 건), 약주(139만여 건), 과실주(97만여 건) 순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증류주 판매가 2016년 대비 22.1% 증가(11만1837건)했다는 점이다. 

흔히 청주나 술을 약주(藥酒)라 부르는데 왜 그런가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건 금주령과 관계있다고 봐요. 조선시대에는 가뭄으로 먹을 곡식이 부족해지면 여러 차례 금주령을 내렸는데, 이때도 인삼 등 약재를 넣은 약주는 예외였죠. 그래서 양반은 청주를 약주인 양 사칭하면서 마셨다고 해요. 그 뒤로 술을 약주로 부르게 됐고, 오늘날 술을 통칭하는 이름이 된 거죠. 사실 우리 조상은 막걸리나 청주, 약주만 마신 걸로 아는데 19세기 초에 쓰인 ‘임원경제지’를 보면 170여 가지 술 이름이 나와요. 다양한 술을 마신 거죠.” 

그런데 왜 소주가 한국 술의 대명사가 됐을까요. 

“190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법을 공포하고, 이후 몇 차례 주세령이 내려지면서 우리 술의 명맥이 끊겼거든요.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양조업을 중요 산업이자 조세원(租稅源)으로 봤어요. 수탈 작업의 하나로 주세법(령)이 공포되면서 자가용주(自家用酒)에 무거운 세금이 매겨졌고, 집집마다 빚어왔던 가양주(家 釀 酒)가 사라졌죠. 그래도 밀주가 성행하자 일제는 1916년 모든 주류를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했고, 이듬해에는 지방마다 대단위 주류 제조업 공장이 선정됐어요. 전통 누룩 대신 일본 고지(粒麴 · 단일곰팡이) 같은 발효제가 사용되면서 전통주의 맥이 끊긴 거죠.” 

해방 후에도 복원이 되지 않았던 거죠? 

“예, 맞아요. 식량이 부족해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한 ‘양곡관리법’(1965)이 시행되면서 쌀로 빚던 술은 수입 밀가루로 대체됐어요. 질 낮은 막걸리가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국민은 희석식소주로 눈을 돌리게 됐죠. 처음 소주가 나왔을 때 희석식소주 도수는 30도여서 찾는 사람이 적었는데, 막걸리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소주 도수를 25도로 낮추면서 ‘국민 술’ 자리를 차지합니다. 1990년대 쌀 소비가 줄면서 제한은 다 풀렸어요. 그런데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는 고구마나 사탕수수 같은 원료를 이용해 주정(酒精), 즉 에탄올을 만들고 이를 물에 타 희석해 만든 희석식소주입니다. 반면 우리 전통 소주는 안동소주처럼 막걸리 원료인 ‘술밑’을 증류해 만든 술이에요. 우리 조상은 대체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청주와 막걸리를 마셨는데, 고려 말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몽골인이 즐겨 먹던 소주가 전래됐어요.”


삼별초와 몽골군이 만든 술

그렇다면 ‘울란바토르 소주’ 대신 안동소주가 유명한 이유는 뭔가요.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려고 병참기지를 만든 곳이 안동과 개성인데, 이 지역에 몽골군이 주둔해 소주를 만들었고, 당시 양조문화가 지역에 정착된 걸로 추정해요. 개성도 문배술이 유명하잖아요. 몽골에 대항한 삼별초의 항쟁과도 연관이 있는데, 삼별초와 전투를 한 강화도와 전남 진도, 제주에 몽골 군사기지가 세워져 진도홍주, 제주 고소리술 같은 증류주로 발전했을 걸로 추정하죠.” 

술에 대한 역사도 흥미롭군요. 

“그럼요. 개성에서는 최근까지 소주를 ‘아락주’라고 불렀는데, ‘아락’은 아랍, 즉 중동에서 전래됐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봐요. 중세 페르시아에서 개발된 증류법은 십자군을 통해 유럽으로 넘어와 브랜디와 위스키를 만들고, 원나라를 통해 고려에 전래돼 소주를 탄생시킨 거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통주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알면 풍미(風味)는 배가됩니다. 전통주갤러리에서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농식품부와 aT가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은 양조장을 견학하며 술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4곳을 추가해 전국 34개 양조장에서 운영 중이다. 전통주갤러리에선 이들 양조장이 만든 술을 만날 수 있다. 

신임 관장으로서 어깨가 무겁겠어요. 젊은 층도 공략하면서 전통주 알리기에도 나서야 하니…. 

“1년 임기 동안 우리 술을 알리는 데 헌신하려고 해요. ‘찾아가는 양조장’ 같은 좋은 사업은 계속 진행하면서, 전통주 제조 관련 창업과 교육을 위한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준비하고 있어요. 갤러리를 찾는 소비자의 의견과 기호를 파악해 업체에 전달하고, 전통주 제조업체들과 농식품부, aT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해야 하고요.”
 
요즘 같은 폭염에는 어떤 전통주가 좋을까요. 

“이런 폭염에는 술은 안 드시는 게 좋은데….(웃음) 비교적 도수가 낮은 복숭아 와인을 ‘아이스 와인’으로 한 잔 즐기거나 맑은 증류주에 얼음을 띄운 ‘온더록’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관장이 추천하는 ‘주당을 위한 해장국’도 궁금한데요. 

“3잔 정도면 그다음 날 해장국을 찾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요. 조갯국이나 콩나물국, 맑은 곰탕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해독에도 도움이 되는 속풀이 국이 좋겠죠.”


Tips! 
전통주갤러리 예약
•운영시간 :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관)
•가는 길 :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CGV 방면 도보 7분. 서울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CGV 방면 도보 7분
•문의 : 02-555-2283
상설 시음회(시음주 4~5종/무료)
•한국어 · 일본어 : 오후 1, 3, 5시
•영어 : 오후 2, 4시
프리미엄 시음회(10여 종/1인 2만5000원)
•3~10인 단체 시음
•일정은 전통주갤러리와 협의
정기 프리미엄 시음회(10여 종/1인 2만5000원)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1인 이상 신청/선착순
예약 : thesoolgallery.modoo.at






주간동아 2018.08.15 1151호 (p28~32)

  •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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