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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타들의 ‘갑질’ 계약서, 다양성의 권리장전으로 바뀔까

인클루전 라이더

연예계 스타들의 ‘갑질’ 계약서, 다양성의 권리장전으로 바뀔까

3월 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울려 퍼진 두 단어.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 영화 ‘쓰리 빌보드’로 이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함께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리프를 비롯해 자리를 함께 한 모든 여성 영화인에게 일어나 달라고 한 뒤 “오늘 밤 마지막으로 두 단어만 남기겠습니다”라며 한 말이다. 당시 국내 언론은 그 정확한 의미를 몰라 이에 주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다음 날 구글 검색어 1위로 올라서며 국제적 화제가 됐다. 

인클루전 라이더는 ‘포용 특약’을 뜻한다. 영화인들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출연과 고용을 요구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라이더(rider)는 협약 또는 계약 체결 시 추가 조항이나 부칙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파생된 연예계 용어다. 주로 록밴드가 순회공연을 할 때 백 스테이지 온도를 몇 도에 맞춰주고, 음료와 식사는 무엇을 얼마나 갖다 놓으라는 식의 요구사항을 정리한 문건을 말한다. 그러다 연예인의 특수한 성향이나 취향을 반영한 계약조항이란 뜻을 갖게 됐다. 

인클루전(inclusion)이란 용어는 1950년대 미국 노동계에서 직원 채용 시 소수인종의 포함 및 참여를 촉구하며 다양성(diversity) 확보라는 의미를 띠게 됐다. diversity가 밖으로 확산을 지향한다면, inclusion은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뜻을 지녔다는 점에서 뜻은 비슷하지만 방향성은 반대다. 

인클루전 라이더는 남가주대(USC)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 · 저널리즘 스쿨의 여성 교수인 스테이시 스미스와 여성 인권변호사인 칼파나 코타갈의 주창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 스미스 교수는 미국 연예산업에서 젠더·인종·성적 취향·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조사한 ‘아넨버그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미국 내 흥행 100위 안에 든 영화 가운데 대사 있는 흑인 여성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48개, 대사 있는 아시아계 여성이 등장하지 않은 영화가 70개, 장애 여성이 나오지 않은 작품이 84개, 대사 있는 성소수자(LGBT) 여성이 등장하지 않은 영화가 93개였다. 



스테이시 교수는 이를 토대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 계약을 맺을 때 이런 사회적 소수자를 실제 사회 구성 비율에 걸맞게 출연시킬 것을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코타갈 변호사는 이런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표준 계약서를 만들었다. 연예인 ‘갑질 문화’의 파생품이라 볼 수 있던 라이더가 영화계의 다양성 보장을 위한 권리장전으로 승화된 셈이다. 

이는 제87,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남녀연기상 후보에 흑인이 없었던 데 대한 거센 비판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냈다. 실제 맥도먼드가 인클루전 라이더 이야기를 접한 건 시상식 1주일 전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는 ‘티저 홍보’로 불을 질렀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직후 자신이 제작하거나 출연하는 영화에 인클루전 라이더를 적용하겠다는 배우가 계속 늘고 있다. 절친한 배우 겸 제작자인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은 물론, ‘블랙 팬서’에 출연한 흑인 배우 마이클 B 조던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주간동아 2018.03.21 1130호 (p20~20)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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