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8

2018.03.07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공연 대미를 장식한 이문세의 노래는?

‘작곡가 이영훈’ 콘서트 관람기

  • 입력2018-03-06 10: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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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영훈뮤직]

    [사진 제공 · 영훈뮤직]

    많은 출연자가 나와 많은 명곡을 불렀다. 마지막 출연자는 이문세였다. F코드로 시작하는 피아노 전주가 흘렀다. ‘소녀’였다. 윤도현, 한영애, 전제덕, 김범수, 박정현 등 명가수들이 이미 무대에 올라와 ‘옛사랑’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의 노래를 부르고 내려간 터라 이문세는 무슨 곡을 부를까 궁금하던 찰나 시작된 ‘소녀’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이문세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부 엄인호를 찾아갔다. 당시 이문세는 가수로서 앨범 2장을 발매했지만, 진행자와 DJ로 더 알려진 상태였다. 곡을 달라는 부탁에 엄인호는 자신의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던 이영훈을 소개했다. 이문세가 이영훈 방에 들어갔을 때, 그가 만들고 있던 곡이 바로 ‘소녀’였다. 이문세와 이영훈, 대중음악사에 다시 나오기 힘들 황금콤비의 시작이 바로 ‘소녀’였던 것이다. 이영훈 타계 10주기를 맞아 2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헌정 콘서트 ‘작곡가 이영훈’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영훈은 유재하와 더불어 1980년대 한국 팝 발라드를 완성한 작곡가다. 유재하가 앨범 한 장을 남기고 단명한 반면, 그는 이문세와 함께 여덟 장의 앨범을 작업하며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다. 이문세-이영훈 콤비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 후반, 즉 이문세의 3집부터 5집까지 발표되던 그 시기를 통해 가요는 저급하고 팝은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조금씩 깨졌다. TV의 황제가 조용필이었다면, 라디오의 왕은 이문세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물론 이영훈이 있어서였다. 

    작곡가로 데뷔하기 전 이영훈은 연극과 미술 음악을 하면서 클래식 감성을 쌓았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감각은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지속됐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전주와 후주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클래식에 대한 센스가 기존 발라드와는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감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전의 발라드가 트로트적인 과장된 창법과 신파조의 멜로디로 이어져왔다면, 이영훈의 발라드는 팝 팬들의 취향까지 자극할 수 있는 세련된 애수의 노래였다. 그렇게 이영훈은 한국 발라드의 모더니즘을 확립했다. 

    이영훈을 얘기함에 있어 가사를 빼놓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문세와 고은희가 함께 부른 ‘이별 이야기’의 ‘그대 내게 말로는 못하고/ 탁자 위에 물로 쓰신 마지막 그 한 마디/ 서러워 이렇게 눈물만/ 그대여 이젠 안녕’처럼, 시적 압축과 구체적 상황 묘사가 살아 있는 그의 언어는 멜로디와 착 붙곤 했다. 



    사랑 노래에서 그런 감성은 더욱 빛나곤 했다. 대부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회상이다. 이영훈 음악 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옛사랑’ 같은 노래를 들어보라. 읊조리듯, 삼키듯 노래하는 이문세의 목소리가 타고 흐르는 그 간결하고도 극적인 멜로디와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두듯이’ 같은 관조, 달관의 언어가 처연하게 어울리면서 공허한 엔딩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이 노래는, 그래서 이영훈의 정서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고,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란 이들은 이제 중년이다. 그들의 첫사랑은 대부분 옛사랑이 됐을 테지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영원하듯 이영훈의 곡들은 어느덧 클래식이 됐다. 

    공연 시작 전 한 곡의 노래가 흘렀다. 이영훈이 만들고 직접 부른, 제목 없는 미발표곡이었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에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상과 악상을 떠올리던 평범한 청년의 풋풋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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