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7

2018.02.28

경제

기업은행이 KT&G 경영에 ‘새삼 ’ 뛰어든 이유

스튜어드십 코드 vs 관치 … ‘주인 없는 기업’의 수난

  • 입력2018-02-27 10: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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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 없는 기업’인 KT&G가 사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시금 정권의 ‘수장 흔들기’ 논란에 휩싸였다. [뉴시스]

    ‘주인 없는 기업’인 KT&G가 사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시금 정권의 ‘수장 흔들기’ 논란에 휩싸였다. [뉴시스]

    IBK기업은행이 KT&G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기업은행은 KT&G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꿔 공시한 뒤 사외이사 2명을 추천하는 등 경영 참여 행보를 공식화했다. 기업은행 측은 이를 정부가 추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은행의 갑작스러운 행보가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단일한 근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권 행사의 모범 규준으로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자율지침이다. 기업은행은 KT&G의 2대 주주로 현재 지분 6.93%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지분 9.09%)이다. 

    기업은행의 ‘경영 참여’ 공시 후 첫 번째 활동 무대는 3월 중순으로 예정된 KT&G 정기 주주총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주총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안건은 바로 사장 선임안이다. 

    KT&G 이사회 소위원회인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는 백복인 현 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대했다. 하지만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은 공식적으로 백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국책은행 이용해 낙하산 투하?

    1993년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에 입사한 백복인 사장은 글로벌본부 터키법인장,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생산R&D부문장 겸 전략기획본부장(부사장)을 거쳐 2015년 10월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사회는 올해 3월 백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1월 31일과 2월 1일 사장 후보를 공모했으며 백 사장을 비롯한 3명이 지원했다. 이사회 사추위는 단독 후보자로 백 사장을 낙점하면서 “산업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지난 3년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리더십 측면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백 사장은 2015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글로벌시장에서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지난해 ‘해외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또한 국내에서는 전자담배시장이 급격히 확장되는 가운데,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을 성공적으로 출시해 시장에 안착케 한 점을 높게 평가받는다. 



    하지만 기업은행이 백 사장의 연임에 제동을 건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셀프 연임’ 의혹이다. 신임 사장 공모에서 지원 자격을 ‘KT&G 전·현직 전무 이상 또는 자회사 사장 역임한 자’로 한정해 문호를 좁혔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각각 하루 만에 졸속으로 끝내는 등 지원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백 사장의 ‘CEO(최고경영자) 리스크’를 문제 삼는다. KT&G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2011년 인도네시아 법인 트리삭티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금융감독원(금감원)이 회계부정과 관련해 KT&G를 상대로 회계 감리를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KT&G 경영정상화를 바라는 전 임직원들’이란 단체가 트리삭티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이중장부 및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당시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해외 신사업을 주도했던 백복인 사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CEO 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경영권 정상화를 위해 주주로서 정당한 개입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트리삭티에 1534억 원을 투자해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후 2013년부터 3년간 지분투자분 897억 원을 회계상 감액처리하고, 대여금 637억 원을 대손처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또다시 1447억 원을 추가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KT&G가 분식회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T&G 측은 “인도네시아 관련 내용은 현재 금감원에서 감리 중이고,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주주가 불확실한 내용으로 CEO 리스크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1월 18일 최흥식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트리삭티 의혹에 대해 “아직 특별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기업은행의 이 같은 행보가 단순히 스튜어드십 코드, 즉 ‘선한’ 기관투자자의 역할론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을 ‘관치’라며 비판을 제기한다. 기업은행의 대주주인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사실상 KT&G의 경영에 관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재 기재부는 기업은행 지분을 51%가량 보유하고 있다.

    KT · 포스코도 동병상련?

    IBK기업은행이 최근 KT&G 경영 참여를 공식화해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중식 기자]

    IBK기업은행이 최근 KT&G 경영 참여를 공식화해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중식 기자]

    물론 기업은행에 앞서 KT&G 대주주이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이 있긴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이 백 사장 연임과 관련해 뚜렷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는 만큼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해 KT&G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려는 속셈’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실제로 KT&G처럼 과거 공기업이었다 민영화된 KT, 포스코 등은 정권교체 때마다 수장이 ‘물갈이’되는 수난을 겪었다. 정권 의중에 따라 수장의 명암이 엇갈리는 등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 

    최근 KT는 불법 정치자금 후원 혐의로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했고, 포스코건설 역시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물론 해당 기업 CEO들의 임기 중 경영 성과나 비리 혐의 등에 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으나, 민간기업이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번 KT&G 사장 연임에 대한 기업은행 측의 제동을 ‘우회적 관치’로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담뱃세와 주식 배당 등 재정 측면에서 KT&G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KT&G는 기업은행과 기재부를 통해 정부에 높은 배당을 보장하는 고배당 기업으로 꼽힌다. 먼저 KT&G가 기업은행에 배당하는 금액은 2010년 보유 지분 기준으로 285억 원에서 2013년 304억 원, 2016년 342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도 KT&G는 고배당을 이어갈 전망이다. 2월 1일 KT&G는 보통주 1주의 배당금을 전년 대비 400원이나 높은 4000원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배당금 총액은 5050억 6050만 원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 역시 고배당 종목 가운데 하나로, 대주주인 기재부는 해마다 기업은행 측에 배당성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2020년까지 4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기재부의 목표인데, 2012년 24.1%에 불과하던 배당성향은 지난해(2016년 회계연도 결산 기준) 30%를 넘어섰다. 결국 KT&G에서 시작되는 배당 파이프라인은 기업은행을 통해 정부로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해 9월 기업은행이 KT&G 지분 매각 계획을 철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은행은 2015년 이사회 결정을 통해 KT&G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2013년 국내 은행의 건전성 규제가 바젤2에서 바젤3로 바뀌면서 은행이 보유한 기업 주식의 위험가중치가 100%에서 300%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새 국제회계기준(IFRS 9)의 영향도 컸다. 그전까지는 기업이 주식을 처분하면 해당 손익이 당기순손익으로 분류됐지만 올해부터는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된다. 이에 기업은행은 올해가 되기 전에 지분을 매각해 영업 능력과 관련 있는 당기순손익에 반영할 계획이었다. 2월 22일 현재 KT&G 주가(10만 150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분(951만 485주) 매각 금액은 약 965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매각 계획을 돌연 중단했다. 주식 매각을 통해 일회성 이익을 누리기보다 지속적으로 배당 수익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경우 KT&G 보유 지분에 따른 위험가중치가 늘어나 자기자본비율이 0.16%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은행의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은 14.16%로 2016년 13.13%에 비해 1.03%p 오르긴 했지만 은행권 평균인 15% 선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에 특화된 은행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BIS 비율이 더 낮아질 경우 중소기업 대출 여력이 하락할 수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 대출 확대와 건전성 지표 관리를 동시에 진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업계 관계자들은 “KT&G 지분은 언제고 매각해 건전성을 확보하고 대출의 종잣돈으로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책은행의 본분 망각 말아야

    백복인 KT&G 사장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제공 · KT&G]

    백복인 KT&G 사장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제공 · KT&G]

    금융업 한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은행의 자본건전성이 악화되더라도 중소기업 대출을 계속하라는 취지에서 KT&G 지분을 현물 출자한 것인데, 그 취지를 살리지 않은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위원회 등은 기업은행의 기업 대출이 전반적으로 담보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규정상 필요가 없음에도 창업대출 지원에서 연대보증을 요구한 사례도 나와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 때 KT&G 지분을 현물 출자한 데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기업은행 자본금을 확충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데 힘썼다. 당시 정부는 정부 보유 공공기관 주식을 기업은행에 양도하는 방식으로 현물 출자를 진행했다. 한때 기업은행은 공공기관 지위에서 자유로워지기도 했지만 2014년 기타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되면서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기업은행의 KT&G 지분 보유 연혁을 따질 경우 이제 와서 경영 참여를 목표로 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최근 KT&G는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넌딜로드쇼(Non-Deal Roadshow·거래 목적이 아닌 투자 유치 설명회)에 나섰다. 3월 주주총회에서 사장 연임과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 제안에 대한 표 대결이 이뤄질 게 분명한 만큼 전체 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 기관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역시 국민연금과 보조를 맞추면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와 곧 접촉할 예정이다. ISS는 기업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 기관으로, 외국인 주주들은 보고서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KT&G 역시 ISS와 접촉하면서 세계 각국 지사를 통해 외국인 주주를 설득할 전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KT&G가 외국인 주주들에게 고배당 정책을 편 점을 고려하면 연임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표 대결은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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