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4

2018.01.31

김맹녕의 golf around the world

“골프장은 자연과 함께 만드는 것”

골프장 설계가 송호 ‘송호골프디자인’ 대표

  • 입력2018-01-30 14: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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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충주 동촌골프클럽(왼쪽)과 이 골프장을 설계한 송호 대표. [사진 제공 · 김맹녕]

    충북 충주 동촌골프클럽(왼쪽)과 이 골프장을 설계한 송호 대표. [사진 제공 · 김맹녕]

    28년간 국내외에서 61개 골프장을 설계한 이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장 설계가 송호(61) ‘송호골프디자인’ 대표다. 그는 경사가 심한 한국 산악지형에 어울리는 골프장 설계를 통해 전 세계 골프장 설계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를 세계적 골프 설계가의 이름을 빌려 ‘한국의 톰 파지오’ ‘한국의 피트 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송 대표를 최근 만나 골프장 설계에 대한 철학 등을 들었다. 

    “골프장은 프로, 아마추어 구분 없이 모든 골퍼의 꿈을 담아내야 합니다. 골퍼가 자연과 조화롭게 동화되고 순응할 수 있도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린 코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내 명품 골프장으로 이름난 경기 광주 남촌컨트리클럽(CC), 경기 양주 송추CC, 경남 거제 드비치골프클럽(GC), 제주 세인트포CC, 충북 충주 동촌GC, 제주 아덴힐CC, 부산 아시아드CC 등을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골프장은 국내 골프잡지 등이 매년 선정하는 10대 코스에서 늘 상위권을 오간다. 이들 골프장에서는 KPGA나 KLPGA 공식 대회가 자주 개최된다. 

    그의 설계 기본 개념은 ‘하느님과 함께 만드는 코스’다. 하느님이 만들어놓은, 즉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설계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자연 풍광과 지형에 충실한 톰 파지오를 가장 좋아한다.

    “골퍼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게 목표”

    송호 대표가 설계한 경기 광주 남촌컨트리클럽. [사진 제공 · 김맹녕]

    송호 대표가 설계한 경기 광주 남촌컨트리클럽. [사진 제공 · 김맹녕]

    그는 “골프장 난도를 높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골퍼가 코스에 몰입해 흥미와 감동을 느끼고 다시 찾고 싶은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비슷한 홀이 한 개라도 있는 골프장은 골퍼에게 지루함을 주기 때문에 명문 코스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골프장은 자연의 느낌이 가득하고 다채로운 개성이 살아 있는 18개 홀을 통해 골퍼에게 적절한 휴식과 긴장을 제공하는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그레그(dogleg) 홀과 아일랜드 그린, 깊은 벙커, 워터해저드, 코스 중간의 큰 나무, OB(Out of Bounds) 구역, 파5홀의 두 번째 샷 때 개미허리 배치와 계곡 넘기기, 높은 언덕에서 티샷하기 등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는 다양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최소한 한 개 이상 도전적인 홀을 만들어 경기에서 박진감과 전율을 느끼게 하고, 티샷이 잘못될 경우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홀들을 배치한다. 

    “벙커나 연못, 깊은 러프 등 해저드에 위험과 보상(Risk  &  Reward) 개념을 도입해 굿샷에는 보상을, 미스 샷에는 철저하게 어려움을 주는 것이 제 설계의 콘셉트입니다.” 

    그는 골프장 설계가로서 세계 100대 코스에 선정될 명코스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1년에 3개월가량 미국 및 세계 100대 코스를 방문해 직접 라운드를 한다. 세계적 설계가들의 노하우와 해당 지역 지형을 이용한 아이디어 등을 찾아내 새로운 골프장 설계 시 반영하기 위한 것.
     
    골프장을 설계할 때 대지가 결정되면 100여 차례 현장을 방문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로, 아침 점심 저녁 새벽 해질녘 등 시간대별로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 안개, 태양의 방향, 착시현상 등을 감안해 설계한다. 

    그는 “좋은 골프장이란 코스가 주변 경치와 매우 조화로우면서 골퍼의 재능과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골퍼를 공격자라고 한다면 코스 설계가는 방어자다. 파(par)를 호락호락 내줘서는 안 된다. 골퍼가 낮은 타수를 기록하려면 골프장 설계가의 의도를 잘 파악해 거기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 

    송 대표는 “골퍼들이 18홀을 마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코스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로골퍼나 한 자릿수 핸디캐퍼에게는 아주 어려운, 아마추어골퍼에게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홀을 만들어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시에 제공해 골프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게 내 철학이다. 가끔 내가 만든 함정에 빠진 골퍼들이 허우적거리다 끝내 화를 내는 모습을 볼 때면 뒤돌아서서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물론 나도 내가 판 함정에 빠져 곤경에 처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세계 100대 코스 선정되는 게 꿈”

    그는 기업의 주문으로 골프장을 설계할 때 가장 힘든 것으로 ‘뒷북 지시’를 꼽았다. 설계 때는 요청사항을 말하지 않다 공정률이 70%를 넘어가는 종료 단계에서 갑자기 대기업 회장이나 오너가 현장에 나타나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코스 자체의 밸런스와 설계자의 의도가 망가져 공정 지연과 비용 추가는 물론, 무미건조한 코스를 만드는 결과만 가져온다. 외국 골프장 설계가들도 이런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일이 많다. 한 유명 미국 프로골퍼 출신 설계가는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기도 했다. 

    송 대표는 “골프 설계 과정에서는 어떠한 요청도 수용할 수 있으나 일단 설계가 완성되면 수정해선 안 된다는 의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골프장 설계 하면 대부분 유명 외국 설계가를 떠올리지만 한국 지형에서는 역시 토종 설계가가 그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외국 설계가를 초빙해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외화 낭비이자 시간 낭비인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 설계가들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 설계회사에서 몇십 년 동안 일하고 돌아와 기술력과 아이디어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외국 브랜드 선호사상이 남아 있어 회원권 분양 시 전시효과와 판매 활성화를 위해 유명 외국 프로골퍼나 설계가를 초빙하지만 이런 전략도 요즘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잡지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미국 외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10인 패널 가운데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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