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2017.11.29

커버스토리

크라우드펀딩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좋은 아이디어에 억 단위 모금도  …  준비 없인 외면 일쑤

  • 입력2017-11-27 17: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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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그림 800여 점을 남겼지만 그가 생전에 판 그림은 한 점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술의 끈을 놓지 않은 배경에는 동생 테오의 정신적 지지, 경제적 후원이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700여 통에는 형을 위하는 테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의 작품은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오늘날 많은 창작자도 테오 같은 후원자를 열망한다. 저마다 특별한 아이디어를 갖고 살아가지만, 이를 현실화할 지원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4차 산업을 뛰어넘어 ‘5차 산업’을 주도할 창작물, 불합리한 점을 개선한 창작물, 시대적 고민을 담은 창작물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맴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통로가 바로 크라우드펀딩에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다수의 대중(crowd)에게 자금 조달(funding)을 받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기부, 대출, 투자 등을 목적으로 웹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등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초반에 만들어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tumblbug)’ ‘와디즈(Wadiz)’가 대표적이며 미국은 ‘킥스타터(Kickstarter)’, 영국은 ‘인디고고(Indiegogo)’ 등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사례 1 | 잡지 한 권 발간에 모금 1억 넘길 듯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주제로 한 잡지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텀블벅 홈페이지,네이버 영화]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주제로 한 잡지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텀블벅 홈페이지,네이버 영화]

    최근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설경구, 임시완 주연의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 관한 내용을 한 권의 잡지로 출간하려는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다. 5월 개봉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은 관객 수 100만 명을 채우지 못한 채 상영 종료됐다. 그러나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10여 차례나 봤을 정도로 작품을 사랑한 골수팬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덤을 형성했고 스스로를 ‘불한당원’이라며 팬클럽을 결성했다. 이들은 관객 2만 명을 모아 극장을 대관해 상영회를 가지는 등 뜨거운 팬심을 표출했다. 나아가 불한당원들은 영화 전문잡지 ‘프리즘오브’ 편집부 측에 ‘불한당’을 다룬 잡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프리즘오브는 2015년 12월 창간된 영화 전문 격월지이지만, 올해 8월 영화 ‘다크 나이트’를 주제로 한 제7권을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프리즘오브는 불한당원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힘입어 특별호 제작에 나섰다. 11월 13일 프리즘오브 편집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특별호 제작과 관련해 1100만 원 모금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리워드 품목은 총 6가지로 잡지 1권 1만8000원, 잡지 1권과 달력 1개 2만8000원 등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펀딩이 시작되고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했고, 첫날에만 모금액 7000만 원을 돌파했다. 일주일이 지난 11월 20일에는 9300만 원을 돌파했으며, 후원자 수는 1800여 명에 달한다. 펀딩 종료 시점이 12월 12일인 것을 고려하면 1억 원은 쉽게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펀딩 전 SNS를 통해 공지가 나간 덕이 크겠지만, 크라우드펀딩이 출판물에 이렇게 주목한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트위터에 올라온 불한당원들의 반응은 고무적이다. 이들은 ‘만국의 불한당원이여 집결하라’ ‘불한당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지만 여러분은 불한당을 책임져야 한다’ 등 다소 격한 목소리로 펀딩을 응원했다. 또한 몇몇 불한당원은 자체적으로 리트위트 이벤트를 하는 등 펀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프리즘오브 편집부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상상하지 못한 속도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해줘 감사하다. 휴간을 결정하며 우리가 가는 길에 고민이 많았다. 이번 펀딩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텀블벅에서도 내부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임선민 텀블벅 마케터는 “후원금 단가가 10만 원 선으로 높게 책정된 경우 적은 후원자 수로도 1억 원까지 모인다. 그런데 1만~2만 원 선인 출판물에 1억 원 가까이 모금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후원자 수가 많다는 뜻이다. 또 텀블벅 창사 이래 모금 첫날 7000만 원을 달성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사례 2 | 캐리어로 15억 원, 신기록 세운 ‘샤플’

    [와디즈 홈페이지]

    [와디즈 홈페이지]

    샤플의 캐리어와 백팩은 단일 브랜드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15억 원 넘는 모금액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펀딩계에 한 획을 그었다.[와디즈 홈페이지]

    샤플의 캐리어와 백팩은 단일 브랜드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15억 원 넘는 모금액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펀딩계에 한 획을 그었다.[와디즈 홈페이지]

    크라우드펀딩은 대부분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이나 회사를 소개하고 후원 개념으로 모금이 진행된다. 따라서 후원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의류, 가방, 신발 등 이미 시장에서 유명 브랜드들이 수많은 제품을 앞세워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 더욱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기적적인 모금액으로 현재까지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업체가 있다. 7월 ㈜샤플은 캐리어와 백팩에 15억 원 넘게 펀딩해 크라우드펀딩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샤플은 기존 여행 캐리어가 지나치게 화려한 외관 디자인, 비싼 가격 등 여러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단순한 디자인, 합리적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샤플은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원장을 지낸 나건 교수의 도움으로 블랙 컬러에 심플한 캐리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한 제품에 블루투스를 탑재해 여행 시 자신의 캐리어가 어디 있는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덧붙였다. 백팩 역시 단순한 디자인에 추적 가능한 블루투스,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한 외부 USB포트 등 편의성을 높인 기능을 더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했다. 백팩은 2만9000원, 캐리어 20인치는 3만9000원, 25인치는 4만9000원이다. 이는 제품 생산 및 판매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개선해 생산비를 줄였기에 가능했다. 

    캐리어와 백팩 이름을 ‘닥터 나(Dr. Nah)’로 정한 샤플은 6월 20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500만 원을 목표로 공고를 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픈 6시간 만에 1억 원을 돌파했고, 일주일 만에 5억6000만 원을 넘겼다. 마감일인 7월 19일에는 최종 15억1660만여 원이 모여 역대 최대 펀딩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2만2492명의 최대 참여자, 3만332% 달성률 등 다양한 신기록을 세우며 펀딩을 마감했다. 샤플은 미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진창수 샤플 대표는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향후 킥스타터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고 글로벌 마케팅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와디즈 측에서도 샤플 프로젝트를 창사 이래 최대 성공 사례로 꼽았다. 최태형 와디즈 프로는 “한국시장에서 단일 브랜드 상품을 한 달 만에 15억 원어치나 판매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박 나는 상품도 몇억 원인데, 이와 비교하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모금이 잘된 것 이상의 의미도 있다. 최 프로는 “크라우드펀딩은 창업생태계를 지원하는 구실도 한다. 기업이 운영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확보하는 데 하나의 창구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건의 경우 크라우드펀딩으로 금전적 후원을 한 것과 더불어 대중에게 소셜임팩트를 주면서 기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사례 3 | 펀딩으로 창립! 신발 브랜드 ‘ 마더그라운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독특한 밑창, 상생을 표방한 유통구조 등 문제의식을 토대로 제작된 마더그라운드의 스니커즈는 후원자들의 지지로 브랜드 론칭에 성공했다.[마더그라운드 홈페이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독특한 밑창, 상생을 표방한 유통구조 등 문제의식을 토대로 제작된 마더그라운드의 스니커즈는 후원자들의 지지로 브랜드 론칭에 성공했다.[마더그라운드 홈페이지]

    크라우드펀딩으로 회사를 설립한 성공 사례로 신발 브랜드 ‘마더그라운드’를 빼놓을 수 없다. 마더그라운드는 가방 브랜드 ‘브라운브레스’를 창업해 운영하던 이근백 대표가 지난해 3월 독립해 만든 회사다. 신발을 만드는 회사는 많지만 마더그라운드의 제품은 분위기가 색다르다.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고, 제품 생산 시 상생의 원칙을 중요시한다. 

    특히 나무의 껍질, 갯벌의 흙, 빌딩의 먼지 등 투박하면서도 단순한 느낌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한다. 밑창에는 마치 지도의 등고선 혹은 나무의 나이테를 닮은 모양을 새겨 넣어 발자국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게 했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상업적인 스니커즈에 비해 친숙하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질 듯하다. 가격도 스니커즈 한 켤레에 7만9000~9만9000원 선으로 기존 브랜드 제품에 비해 저렴한 편도 아니다. 이 때문에 크라우드펀딩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을 법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2월 6일 1000만 원을 목표로 1개월 동안 진행된 크라우드펀딩은 종료 전 일찌감치 목표액을 달성했다. 펀딩 종료 시점에는 1억139만여 원이 모여 1013% 달성률을 기록했다. 후원자 수는 872명에 이르렀는데, 펀딩 종료 한 달 뒤 제품을 받은 이들은 ‘신어보니 밑창이 푹신해 발이 편하다’ ‘출장 가서 많이 걸어 다녔는데도 피로감이 덜하다’ 등 대부분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다. 

    사람들은 왜 인지도도 없는 독특한 디자인의 신발을 사려고 지갑을 열었을까. 특별한 디자인도 한 이유였지만, 업체에서 신발 한 켤레의 판매가를 어떻게 책정했는지 명세서를 뽑아 공시한 것이 후원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천연가죽·부자재·공임·포장비용, 운영비, 임금 등 제작비와 함께 업체에서 가져가는 마진까지 속 시원하게 공개한 것. 또한 마더그라운드는 쇼케이스를 계획하고 후원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참석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믿고 후원해준 이들에게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마더그라운드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히 돈을 모으는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를 설립하는 창구로도 이용된다는 점을 증명했다. 임선민 텀블벅 마케터는 “소규모 브랜드의 창작자가 제품을 만들 때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면 얼마나 생산하면 좋을지 수요 예측이 필요한데, 대부분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SNS를 통해 펀딩 정보를 공유하면 후원자가 후원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홍보되기 때문에 브랜드 설립과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사례 4 | ‘덕후’의 꿈이 현실로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의 영화 ‘너의 이름은.’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은 관객 수에 따라 수익률을 배분하는 조건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연 환산 80%에 이르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겼다.[네이버 영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의 영화 ‘너의 이름은.’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은 관객 수에 따라 수익률을 배분하는 조건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연 환산 80%에 이르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겼다.[네이버 영화]

    혼자 아껴두고 봤던 해외 명작을 극장에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이런 상상이 현실화된 사례다. 일본에서 지난해 8월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100억 엔(약 977억 원)수입을 올렸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관객을 끌어모으기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어 해외 명작이라도 수입이 녹록지 않다. 수입사 미디어캐슬 또한 명작을 눈앞에 두고 자금이 없어 발을 굴러야 했다. 몇 차례 수입 실패로 당시 강상욱 미디어캐슬 이사의 개인 신용등급은 9등급까지 내려가 있었다. 빚을 내 판권을 사들였지만 배급사 측에서는 ‘잘해봐야 관객 30만 명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캐슬은 영화 홍보비 등으로 사용될 자금을 조달하고자 와디즈를 통해 증권형 펀딩을 진행했다. 최초 목표금액은 5000만 원으로 적잖은 액수였다. 그런데 작품성을 보고 투자자가 몰렸고, 펀딩 종료를 한참 남긴 시점에 목표액을 초과하자 1억5000만 원까지 늘렸다. 결과적으로 152명 투자자로부터 1억9570만 원을 후원받아 펀딩에 성공했다. 

    투자자들은 작품성 하나만 보고 선뜻 돈을 건넸을까. 그보다는 투자전략을 구체화한 것이 주효했다. 무기명식 무보증 공모사채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투자포인트를 명확히 제시한 전략이 먹혀들었던 것. 일단 관객 수 50만 명 미만일 때는 기본 표면금리 10%(6개월 만기)를 적용하고, 100만 명 도달 시 20%, 500만 명 도달 시 50% 등 추가 금리를 제공해 더 높은 이율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만약 200만 원을 투자했는데 관객이 500만 명에 달했다면 3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너의 이름은.’ 관객 수는 350만 명을 기록했고 투자자들은 연 환산 80% 이자수익률을 챙길 수 있었다. 

    은행 이자율이 거의 0%인 것과 비교하면 대박이 난 것이다. 최태형 와이즈 프로는 “투자형 펀딩은 수익률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너의 이름은.’은 매우 좋은 사례다. 지금까지 크라우드펀딩은 공익적 사업에 기부하거나 벤처기업을 후원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사례는 크라우드펀딩의 대체투자처로서 가치를 입증한 것이기 때문에 펀딩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포트폴리오를 짤 때 참고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사례 5 | 파도에너지로 섬에 전기 공급 ‘인진’

    인진은 파도에너지를 전기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 주식배당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4억5000여만 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인진 홈페이지]

    인진은 파도에너지를 전기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 주식배당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4억5000여만 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인진 홈페이지]

    ‘파도로 전기를 생산해 섬에 공급하면 어떨까.’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도전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더니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기술이 됐다. 우리나라 132개 유인도 가운데 전기 해저케이블이 연결되지 않은 섬은 62개. 한국전력공사(한전) 디젤발전기로 전기를 생산, 공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전은 매년 1조 원씩 적자를 떠안아야 했다. 성용준 ㈜인진 대표는 파도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이 같은 적자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파도에너지란 파도의 1m 높이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KW)를 말한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파도에너지 부존량은 2TW로 세계 전력 수요의 2배에 달하며, 원자력발전소 2000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태양광에너지와 비교해도 파도에너지는 50배 강하다. 또 낮에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과 달리 파도에너지는 24시간 비교적 고른 에너지 분포를 보인다. 이러한 장점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이미 파력발전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상용화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기존 파력발전기술은 멀고 깊은 바다의 파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파도의 상하운동에서 에너지를 회수하려면 파도가 센 지역으로 가야 하고, 100억 원에 달하는 해저케이블 설치비용도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수요가 뒷받침돼야 한다. 인진은 해변 가까이 오는 파도의 복잡하고 약한 파력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기술을 고안했다. 약 3m의 낮은 수심에도 에너지 흡수 장치인 부력체를 설치할 수 있도록 수심 제약도 극복했다. 

    2014년 인진은 특허법인에 의뢰해 기술을 분석했고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주관한 ‘창조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는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성용준 대표는 1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제주 바다에서 상용화에 성공했다. 

    성 대표는 상용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2월 25일 와디즈를 통해 모금액 3억 원을 목표로 주식배당형 펀딩을 진행했다. 이미 방송을 통해 인진의 개발과정을 접한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이틀 만에 1억 원을 돌파했다. 종료를 열흘 앞둔 시점에 3억 원이 모이자 인진은 목표금액을 4억5000만 원으로 올렸고 최종적으로 218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당시 인진은 “사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기본이다. 앞으로 인진의 활동과 소식을 즉각적으로 알리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와디즈 측은 인진의 프로젝트를 신재생에너지로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최초 사례로 꼽고 있다.


    사례 6 | 1가구 - 1소녀상 실현한 ‘작은 소녀상’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최고 모금액을 기록했다.[텀블벅 홈페이지]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최고 모금액을 기록했다.[텀블벅 홈페이지]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됐던 크라우드펀딩은 단연코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다. 2015년 12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박근혜 정부와 ‘12·28 한일합의’를 타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보상액으로 10억 엔(약 98억 원)을 내놓으며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고 다양한 시민운동과 시위를 양산했다. 

    그런 가운데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김운성 작가도 나서 ‘소녀상 확산 운동’을 시작했다. 가구마다 소녀상을 비치하자는 취지로 10, 20, 30cm 높이의 소녀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지난해 3월 텀블벅에서 1억 원을 목표로 모금을 진행했다. 제작비로 쓰이는 돈 외에는 전액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손잡는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기로 공지했다. SNS를 통해 이 소식이 확산되면서 한 달 동안 십시일반 많은 후원자가 펀딩에 동참했다. 3월 31일 펀딩 종료 시점에는 9003명이 2억6652만여 원을 후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크라우드펀딩으로 후원금 1억 원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7년 동안 운영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도 1억 원 이상 모금된 경우는 10여 건에 불과하다. 2억 원을 넘긴 것은 단 2건인데 하나는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이고, 또 하나는 미국 인기 호러 수사 게임물을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크툴루의 부름’ 프로젝트로 최종 2억683만 원을 모았다. 금액만 보면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가 6000만 원을 더 모금해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앞섰다. 이 건은 사회적 이슈를 토대로 펀딩을 진행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임선민 텀블벅 마케터는 “금액도 제일 많았지만 플랫폼 운영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기억된다. 단순히 후원하는 것 이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소녀상을 더욱 뜻깊게 기리자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내포하고 있었기에 많은 후원자로부터 큰 지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주 의 사 항 | 창작자는 책임의식, 투자자는 리스크 확인 필수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서 2007년 소셜펀딩으로 시작된 P2P 대출(Peer-to-Peer Lending), 즉 개인 간 대출형 투자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2009년 기부형 펀딩이 등장했고, 지난해 1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법제화되면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본격화됐다. 윤순록 한국크라우드펀딩협회 이사는 “시장점유율은 대출형이 가장 앞서지만 시장 규모 면에서는 리워드형이 대출형보다 크고, 증권형보다 작다. 일각에서는 증권형 펀딩이 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리워드형 펀딩도 벤처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바로 유통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자가 어떤 형태의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하든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하는 창작자는 공통적으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수익금을 돌려주는 형태의 펀딩은 목표한 수익금이 나올 수 있도록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프로젝트를 이행해야 하고, 제품이나 출판물을 약속한 리워드형의 경우 시간 내 결과물을 후원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만약 가능성이 낮거나 창작물이 부실해 보일 경우 목표금액을 달성하지 못한 채 펀딩이 종료되기도 한다. 

    가장 문제는 목표금액 달성 후 후원자들과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기대 이하 결과물로 실망감을 안기는 경우다. 최태형 와디즈 프로는 “때로는 창작자의 역량에 비해 많은 돈이 들어오기도 한다. 가령 목표금액 1000만 원에 펀딩 1억 원을 달성하면 일단 돈에 혹해 진행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제품을 제때 내놓지 못하거나 기대 이하 물품을 제공하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스스로 감당할 만한 프로젝트인지를 따져보고 책임의식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후원자나 투자자 또한 지지하는 프로젝트의 내용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윤순록 이사는 “알다시피 모든 투자에 대한 손실은 오로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만약 크라우드펀딩의 목적이 수익에 있다면 한 업체, 한 플랫폼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보다 분산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또한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맞는지 꼼꼼하게 사실 확인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일반인 최다예 씨 크라우드펀딩 성공기 
    “경험담 공유하고 싶어 에세이 출간 도전했어요”

    대표적인 펀딩 성공 사례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주변에도 소소한 펀딩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한 이가 적잖다. 사회초년생인 최다예(27) 씨는 2014년 영국 런던으로 워킹홀리데이를 2년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에세이 ‘어느 날, 런던에 살게 된다면’을 출간했다. 그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성공해 크라우드펀딩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 크라우드 펀딩으로 에세이를 낼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요.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할 당시 책을 찾아봤는데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2년 동안 경험을 잘 정리했다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죠. 한국에 돌아와 이런저런 계기로 독립출판 문화도 접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인이 크라우드펀딩 시스템을 알려줬어요. 원고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목차 정도는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7월 200만 원을 목표로 두 달간 펀딩을 진행했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사흘 만에 100% 달성했고, 최종적으로 500만 원을 모았어요. 달성했다고 돈을 한번에 받은 것은 아니고 플랫폼에 수수료를 내고, 결제 수수료 등을 제외한 금액을 나눠 받았죠. 책을 내기에는 부족한 액수였지만 개인 돈을 합쳐 독립출판사를 통해 책을 냈어요.”

    ▼펀딩이 잘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전혀요. 솔직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봐 두려웠어요. 권당 2만2000원이었는데 누가 살까 의심스러웠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렸는데 지인들이 초반에 응원의 의미로 많이 도와줬고, 후반으로 갈수록 모르는 분도 꽤 많이 지지해줬어요.”

    ▼출판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10월 초 발송이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일정이 계속 늦춰져 10월 마지막 날 발송하게 됐어요. 3주 정도 늦어진 셈인데, 다행히 후원자분들이 기다려줬어요. 사실 원고를 90%가량 쓴 다음 펀딩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도 사지 않을 거라면 쓰기도 쉽지 않을 듯해서 일단 수요를 파악하고자 펀딩을 일찍 시작했죠. 다행히 후원자분들이 관심을 표해줘 그 덕에 출간할 수 있었어요.” 

    ▼펀딩을 꿈꾸는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무도 환영할 것 같지 않은 프로젝트라 해도 누군가 분명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요. 불안해하지 말고 일단 준비를 많이 한 다음 자신감을 가지고 펀딩을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준비가 부족하면 후회가 많이 남거든요. 그러니 아쉬움 없이 하려면 생각을 더욱 구체화하고 후원자들의 필요를 잘 반영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 또한 그런 부분을 보완해 다시 한 번 펀딩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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