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2017.11.29

특집 | 알·쓸·지·잡

“지진 나면 의자 머리 위에 들고 밖으로 탈출”

‘머리 보호, 출구 확보, 화재 예방’ 필수…일본과 다른 상황 감안해야

  • 입력2017-11-28 15:28:4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1월 15일 지진 후 균열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 한 아파트.[동아일보 박경모 기자]

    11월 15일 지진 후 균열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 한 아파트.[동아일보 박경모 기자]

    11월 15일 경북 포항시에서 대형지진이 발생하면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에 따라 요즘 서점가에서는 지진 관련 서적이 인기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도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전문가들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지진 대처 능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단,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매뉴얼이 대부분 일본 상황에 기반을 둔 것이라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토 기요시 일본 교토대 방재연구소 교수 등 일본 전문가 5명이 쓴 ‘지진과 화산의 궁금증 100가지’(푸른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건물 안에 있는 경우 어떤 건물에 있는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만일 1981년 이전에 건설된 것으로서 내진 진단, 내진 보강을 실시하지 않은 건물이라면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1981년’은 일본이 건축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한 해다. 일본에서는 이때 이후 지은 건물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진에 안전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우리나라는 1990년 중반까지 지진 대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일본에서 방재학을 전공한 김태환 용인대 특수재난연구소장(경호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말하면 ‘1990년대 말 이전에 지은 건물은 지진에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층건물이 위험하다. 엘리베이터 등이 있는 고층건물은 상대적으로 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탁·탁자 밑은 더 위험할 수도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면 낙하물이나 창유리 파편 등에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피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9·12 지진 백서]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면 낙하물이나 창유리 파편 등에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피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9·12 지진 백서]

    같은 이유에서 최근 지은 건물이라도 설계 기준을 어기고 부실시공한 경우 지진에 버티지 못할 수 있다. 이번 포항 지진 때도 신축 저층건물 가운데 피해를 입은 것이 적잖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 확인된 만큼, 내가 사는 집이나 주로 일하는 건물 등이 지진에 안전한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해당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내진설계가 적용됐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건물 이력 추적이 어려울 경우 구조안전진단을 받으면 된다. 전문업체에 의뢰하면 해당 건물의 위험 정도와 개선 방안 등을 알려준다. 김 소장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개축할 때 건물구조안전진단을 권장하며, 필요한 경우 지방정부가 비용 일부를 보조한다. 우리나라도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김 소장의 의견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지진에 취약한 건물이 다수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건물 안에서 지진을 맞닥뜨릴 경우 우리에게는 무사히 탈출할 방법을 찾는 게 매우 중요해진다. 방재 전문가인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 보급된 지진 대비 매뉴얼 중 상당수에는 ‘건물이 흔들릴 경우 외부로 뛰쳐나갈 것이 아니라 식탁이나 책상 아래로 들어가 머리를 보호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라’는 지침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것은 목조주택이 많고 콘크리트 건물 대부분이 내진설계가 잘돼 있는 일본 실정에 맞는 안내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내용을 그대로 따를 경우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의견이다. “내진설계가 잘 안 된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질 때 식탁이나 책상 아래로 들어가 있으면 사방이 막힌 상태에서 건물 잔해에 깔려 꼼짝 못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물이 흔들릴 때 낙하물이나 창유리 파편 등에 머리를 다쳐 큰 부상을 입는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든 머리를 보호하긴 해야 한다. 조 교수는 “책상이나 식탁 밑에 들어가지 말고, 그 대신 의자를 집어 들어 머리를 가리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할 경우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자기 쪽으로 쓰러지는 물건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당장 탈출할 태세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진 발생 시 강력한 진동은 보통 수 분 안에 끝난다. 의자 등으로 머리를 보호한 채 발밑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는 혼란을 버텨낸 다음엔 당장 현관문이나 창문 등을 활짝 열어 대피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지진 여파로 건물 구조가 뒤틀리면 아예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소리 지르거나, 다른 사람 앞지르면 안 돼”

    더불어 가정 내 가스 밸브도 신속히 잠가야 한다. 일본에서 나온 자료 중에는 ‘지진 발생 시 가스레인지가 켜져 있어도 불을 끄려고 서둘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있다. ‘지진 발생 시 도시가스가 자동적으로 차단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가스 안전 차단 장비를 널리 보급했다. 현재는 많은 가정이 진동감지 센서가 달린 가스계량기를 사용하고 있어 위급상황 발생 시 저절로 가스 공급이 끊긴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장비를 갖춘 가정이 거의 없다. 따라서 스스로 화재를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진에 동반하는 화재 또는 폭발은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지진 발생 시 반드시 가스 밸브를 잠그는 게 좋다. 지진 피해 최소화를 위해 반드시 할 일은 △머리를 보호하고 △대피로를 확보하며 △화재를 예방하는 것인 셈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비명을 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앞질러가는 행동이다. 조 교수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패닉에 빠지는 것”이라며 “모두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내면 주위 사람까지 흥분한다. 먼저 탈출하겠다고 앞사람을 밀치면 여럿이 뒤엉키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 5.8로 관측됐다. 최근 포항 지진 규모는 5.4였다. 정부가 발행한 ‘9·12 지진 백서’에 따르면 지진 규모 5.0~5.9는 ‘설계 및 건축이 잘못된 부실 건축물에서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며, 굴뚝이 무너질 수 있는’ 수준의 강도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면 평소 훈련이 중요하다. 조 교수는 “어느 장소에 가든 이곳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지 상상해보는 게 좋다.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기 대처력이 훨씬 커진다”고 조언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