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9

2017.10.18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영화음악 거장이 만들어낸 우리 삶의 OST

한스 치머 첫 내한공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10-17 11: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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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7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영화음악가 한스 치머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올해부터 시작된 음악축제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출연자로 19명 규모의 밴드를 이끌고 왔다. 영화 ‘다크 나이트’ 3부작을 비롯해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작업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한스 치머는 1990년대부터 멈추지 않는 창의력과 실험성으로 스스로 진보해왔다.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코네 등 지난 세기를 대표한 영화음악가들이 클래식 작법에 많은 부분을 기댔다면, 한스 치머는 록과 일렉트로닉, 그리고 익스페리멘탈(실험음악)의 방법론을 흡수하면서 디지털 시대에도 잘 맞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스타일을 영화에 맞출 뿐 아니라 영화를 위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조커의 테마곡인 ‘Why So Serious?’에서 바이올린 줄을 톱으로 긁어 캐릭터의 기괴함을 표현한다든가, ‘맨 오브 스틸’의 전투 장면에서 수많은 드럼 사운드를 쌓아나가며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박력을 극대화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덩케르크’에 한스 치머의 음악이 없었다면 영화의 매력이 절반 이하로 줄었을 거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자 엔니오 모리코네나 히사이시 조의 내한공연을 보러 갔다면, 한스 치머의 공연은 그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눈앞에서 느끼려 간 것이다.

    한스 치머가 동행한 이들뿐 아니라 한국에서 고용한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세션까지 도합 50명 가까운 인원이 펼치는 공연이었음에도 사운드는 놀라웠다. 마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벌이는 리허설을 보는 듯 정교하면서도 생생했다. 연주자들의 퍼포먼스도 대단했다. 특히 무대 중앙에서 리듬을 이끈 인도 출신 드러머 샤트남 싱 람고트라, 중국 출신 일렉트릭 첼리스트 티나 궈가 그랬다. 올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쟁쟁한 뮤지션들을 제치고 한스 치머의 공연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데는 이런 퍼포먼스적 요소도 한몫했을 테다. 한스 치머 또한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기타와 만돌린을 오가며 지휘자 이상의 구실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한스 치머의 디스코그래피를 다 알지는 못했다. 영화광이 아닌 데다 음악 글을 쓸 때도 영화음악은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놀런 감독과 작업이 아니었다면 이 공연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놀랐다. ‘이 곡도 한스 치머가 만든 거였단 말인가’라는 감탄이 떠나지 않았다. ‘레인맨’ ‘델마와 루이스’ ‘라이온 킹’ ‘트루 로맨스’ ‘씬 레드 라인’ ‘크림슨 타이드’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와 ‘인터스텔라’까지, 이날 연주된 음악들은 극장을 들락거린 경험이 있다면 반드시 들을 수밖에 없던 곡이었다. 굳이 이 노래가 어느 영화의 삽입곡인지 무대 뒤에서 영상을 틀지 않아도 관객은 대번에 알아차리곤 했다.

    공연 후반으로 가면서 고조되는 스펙터클에 비례해 애잔한 회상도 쌓여간 건 그 때문이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기 전 극장에 가는 행위가 이벤트였던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저 영화는 어디서 누구랑 봤는데’ 같은 묻혀 있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넘어 무대 앞에 있던 각자의 인생이 전시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앙코르곡인 ‘인셉션’의 테마가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한스 치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그의 팬이 아닐지라도 피해갈 수 없던 음악들이 은막 위에 흐르며 우리 인생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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