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7

2017.09.27

사회

사립유치원이 싫어도 자녀 보내야 하는 부모들

11월에 원생 모집 시작…‘휴업 끝’이라 안도 말고 ‘백년대계’ 세워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9-25 16: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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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11월은 입시의 계절이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대학 입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만 3~5세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에게 11월은 아이의 ‘생애 첫 입시’를 치르는 달이기도 하다. 대다수 유치원이 11월 중하순에 신입생을 뽑기 때문이다.

    이 입시 경쟁의 치열함은 결코 대입에 뒤지지 않는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6학년도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69.8%이다. 2010학년도에 75.4%를 기록한 후 다소 하락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고교 졸업자 10명 중 7명이 대학에 간다. 그런데 유치원 교육 대상인 만 3~5세 유아의 유치원 취학률은 2016학년도 현재 50.7%에 불과하다.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학령기 아동의 절반이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상당수가 전형 과정에서 탈락해서다.

    두 자녀를 둔 직장인 A씨는 “올해 다섯 살 된 딸이 작년에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 선발 추첨에서 다 떨어져 지금 두 살 된 동생과 같이 동네 어린이집에 다닌다”며 “작년에는 그나마 육아휴직 중이라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추첨도 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대입보다 어려운 유치원 입시


    실제로 주거 밀집지역 공립유치원 중에는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르는 곳이 적잖다. 교육 여건이 좋은 사립유치원, ‘영유’라고 부르는 영어유치원도 입학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유치원 공급이 가장 부족한 광진구 중곡동은 지난해 공·사립유치원 수용률이 13.7%에 그쳤다. 영·유아 10명 중 8명 이상이 동네 유치원에 들어갈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는 부모는 입시 일정에 맞춰 여러 유치원에 원서를 내고 현장 추첨에 참여해 ‘행운’을 노려야 한다. 선택되지 못하는 다수는 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둔 채 놀이학교나 어린이집 등에 적을 두고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유치원 갈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속이 바싹바싹 탄다’는 얘기가 도는 이유다. A씨는 “엄마들끼리 모이면 ‘대학 보내는 것보다 유치원 보내기가 더 어려우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를 한다”며 “올해 입시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최근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사립유치원 집단휴업을 추진하면서 사립유치원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졌다. 이 여파로 아이를 새로 유치원에 보내게 된 학부모들은 더 큰 스트레스에 직면했다. 당초 한유총은 정부에 △국공립유치원 확대 중단 △사립유치원 학부모 지원금 인상 △사립유치원 재정 운용 자율성 인정 등을 요구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9월 18일 전국 사립유치원의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집단행동 시도는 교육부가 ‘최악의 경우 유치원 폐쇄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맞서고, 여론 또한 사립유치원에 등을 돌리면서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특히 후자의 힘이 컸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공동대표 이고은, 장하나, 조성실)이 성명을 통해 ‘(이번에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들이 유아교육을 자신들의 비즈니스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음을 확신했다’고 비판하는 등 상당수 학부모가 사립유치원 측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두 자녀를 각각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B씨는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은 집단휴업을 추진하면서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을 늘려 학부모의 보육비 부담을 낮춰달라’는 주장을 표면에 내세우면 학부모가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돈이 아니라 교육이다. 아이들을 볼모 삼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한 이번 사태로 사립유치원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B씨는 여전히 아이를 해당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심지어 11월이 되면 둘째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려고 다른 학부모들과 경쟁해야 할지도 모를 처지다. 사립유치원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자녀를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은 현재 상당수 대한민국 학부모를 ‘보육 스트레스’에 빠지게 하는 주범이다.



    “정부 예산 받으니 회계장부도 공개하라”

    2016학년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국립유치원은 강원, 충북, 충남에 1개씩 총 3개밖에 없다. 공립유치원은 개수가 좀 더 많지만 수도권처럼 학령기 아이가 모여 있는 지역의 경우 취원율(전체 유치원생 중 공립유치원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17.0%(서울), 21.6%(인천)에 그친다. 전국 평균 국공립유치원 취원율도 24.2%로, 영유아 10명 중 7명 이상이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게 현실이다. 2013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유치원 비율이 공립 68.6%, 사립 31.4%인 것과 거의 정반대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일거에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높일 수 없다면 최소한 국민이 사립유치원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세 살배기 딸을 키우는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이번 집단휴업 과정에서 사립유치원에 대해 학부모가 갖고 있던 막연한 불신, 의혹 같은 것이 상당 부분 표면화됐다. 그럼에도 ‘동네 유치원 원장님’들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모들을 위해 정부가 국민이 안심할 만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유치원 집단휴업이 철회되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문제가 풀린 건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특히 학부모들을 충격에 빠뜨린 건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재정관리 실태다. 교육부는 2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했다. 골자는 사립유치원도 9월부터 학교법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회계 및 감사를 받는 것이다. 사립유치원들은 그동안 이것이 ‘위헌적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사립유치원은 대부분 생계형 개인사업체로 학교법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정부가  감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이자 위헌이라는 논리다. 사립유치원들은 올해 ‘장미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을 관철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책은 끝내 바뀌지 않았고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이 적용될 9월이 ‘닥쳤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는 사립유치원들이 마침 이달에 맞춰 집단행동을 벌이려 한 건 실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정부의 회계·감사를 막으려 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런 배경은 그동안 일반 학부모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면이 있다. 장 공동대표는 “이번에 한유총이 집단행동을 하면서 정부에 ‘지원금 확대’와 ‘경영 자율성 보장’을 동시에 요구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유치원업계의 고질적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경기교육청이 펴낸 ‘2016 시민감사관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립유치원은 100여 년 동안 ‘유아교육’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운영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중간에 모호한 모습’으로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회계부정이 ‘방치’됐다. 경기교육청이 1000개가  넘는 관내 사립유치원 중 51개를 감사한 뒤 작성한 자료에는 감사 대상 유치원에서만 모두 228건의 회계부정이 적발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유치원들은 △사적재산 증식(유치원 시설수리비로 4억5000만 원을 자료 없이 지출한 것으로 결산서에 기록해놓고, 실제는 별도의 통장에 보관) △사적 사용(허위 서류를 만들어 설립자의 부친, 장인 및 장모에게 2억764만5000원을 부당 집행) △가장거래(서류상으로는 유치원 공사업체에 4700만 원을 입금한 것처럼 해두고 2900만 원은 원장이 보관, 은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적 이익을 챙겼다. 경기교육청에 따르면 이 감사는 국무조정실이 2015년 9월 일부 사립유치원의 허위 납품 서류 발행, 리베이트 수수 등 문제를 적발한 뒤 17개 시·도교육청에 감사 조치를 요청해 진행된 것이다.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도 2015년 자체적으로 전국 유치원·어린이집 95개를 대상으로 회계집행 점검을 실시한 일이 있다. 이때는 조사 대상 유치원 55개 중 54개에서 위반사항 398건이 적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유치원들의 부당 사용금액 총액은 182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상당한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지금까지 전국 모든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한 회계감사는 진행되지 않았던 셈이다.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확대

    이 배경에는 사립 초·중·고·대학과 사립유치원을 구별해온 우리 정부의 태도가 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설립 및 운영은 학교법인만 할 수 있다. 반면 사립유치원은 개인 설립의 길도 열어뒀다. 특히 전두환 정부는 1981년 수립한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에서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한시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80년 861개이던 사립유치원 수는 87년 3233개로 급증했다. 2016학년도 현재도 우리나라 사립유치원 4291개 가운데 3739개가 개인이 설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립유치원 사업자들은 “우리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공 유아교육 체계를 세우는 대신 개인 투자를 받았다. 이에 참여한 개인의 헌신으로 현재의 유치원 교육 환경이 완성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관리·감독을 하겠다고 나서는 게 적절하냐”고 반박한다.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최근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감사관 등을 직권남용·협박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립 유치원은 공적 자원이기 이전 개인이 사비를 들여 설립하고 유지해온 사유재산이다. 사유재산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은 소유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사유재산의 회계장부를 들추고 일일이 지적하는 교육청의 특정감사는 명백한 부당 감사요, 불법 감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립유치원을 더는 ‘사인이 운영하는 생계형 개인사업자’로 볼 수 없는 사회 환경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5년 사이 사립유치원에 나랏돈이 대거 들어간 것이다. 2012년 개정된 유아교육법 제24조에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無償)으로 실시’하고 ‘무상으로 실시하는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후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재정 지원을 본격화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사립유치원 원아 인당 29만 원씩 누리과정 지원금(학비 22만 원, 방과후 과정비 7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또 공립유치원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사립유치원 담임교사의 처우개선비(교직수당 25만 원, 인건비 보조 15만 원, 담임수당 13만 원)도 매달 정부 재정에서 지원한다. 원장, 원감, 방과후 담당교사는 각각 40만 원을 받는다. 원아 급식비(매일 2460원씩 200일분), 학급운영비(학급당 평균 25만 원), 교사연수비용까지 포함하면 2016학년도 1년간 전국 사립유치원에 투입된 교육 예산은 2조330억여 원에 이른다.

    이번에 한유총이 ‘개인사업자로서 자율성을 존중해달라’고 주장하면서 역설적으로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지가 세세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각종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와 청와대 청원게시판 등에서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꼼꼼한 회계감사 촉구 청원’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 사립유치원 학부모는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스스로 교육자라고 자처하면서 국가지원금은 요구하고 감사는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내 자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이들에게 자녀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치원 보육, 나라가 책임져라”

    이에 대해 서울지역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일부 사립유치원에서 의도적이고 비도덕적인 회계부정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원장은 그동안 회계처리에 대한 기본 상식조차 없이 유치원을 운영해왔다고 보는 게 맞다. 정부가 그것을 바로잡고자 나서는 것은 필요하지만, 갑자기 군사작전을 하듯 유치원 회계장부를 뒤지고 원장들을 ‘적폐세력’으로 몰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사립유치원연합회는 6월 1일 새 정부 국민인수위원회에 ‘사립유치원 감사를 2년 유예라도 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사립유치원 운영자의 다소 잘못된 운영 관행이 심어진 데는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교육 사업을 하면 돈 번다’는 사고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아닌, 국가가 조장한 데서 비롯된 이야기다. 비상식의 군사정권 시절의 일이었다고 이제 와서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여론의 질타에 밀려 사립유치원 업계가 고개를 숙였을 뿐,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2, 제3의 보육대란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참에 유아교육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100년 대계’를 세울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부모들이 국공립유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립유치원 교육 여건 개선 등의 문제도 복합적으로 풀어내 모든 영·유아가 차별 없이 좋은 교육을 받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11월 ‘유치원 입시대란’이 벌어지기 전 학부모의 불안을 달래줄 가시적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장 공동대표는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유치원 입시가 ‘로또 추첨’처럼 변질되고, 상당수 부모는 좌절감을 느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가 당장 모든 문제를 풀어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이 이슈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부모들에게 ‘정부를 믿고 맡기면 우리 아이가 잘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첫걸음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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