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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2·28민주운동’ 주역 이대우 교수 8주기 추도식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으로 이승만 독재 항거… 40여 명 추도객 故人 뜻 기려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9월 13일 오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이대우 교수 8주기 추도식.[배수강 기자]

9월 13일 오후 3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입구 벤치에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하나 둘 모여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들은 대구 경북고 42회 졸업생이 주축이 된 2·28민주운동 참여자들로, 2·28민주운동 주역인 고(故) 이대우 부산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자 전국에서 모였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당시 자유당 정권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경북고, 경북대사대부고, 대구고, 경북여고 등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 학생민주운동. 이날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박광현 씨(경북고 42회 졸업생)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2월 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예정돼 있었다.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 박사가 서거하는 바람에 장 박사 연설에 전국적인 이목이 쏠리자 자유당 정권은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릴 것을 우려해 대구 시내 공립 고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고, 이에 저항해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이던 고 이대우 교수가 부정선거 규탄 집회를 열고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했다. 당시 서슬 퍼런 이승만 정권을 향해 감히 고교생이 ‘깃발’을 든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다.”



3·15마산의거와 4·19혁명 기폭제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1960년 2월 28일 결의문을 낭독하는 이대우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연세대 기록물보존소에 따르면 1961년 2월 27일 대구 동인동 고인의 집에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고 학생 8명이 모여 시위를 조직했고,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을 작성했다. 이튿날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은 대구 반월동을 거쳐 도청으로 향했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커졌다.



고 이대우 교수 등 숱한 학생이 연행돼 고초를 겪었지만, 2·28 대구학생의거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국내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날 추도식에는 미망인 김향선 씨 등 유족과 제자, 민주운동 참가자 등 4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으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노동일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의장(전 경북대 총장) 등은 화환을 보냈다. 고인의 제자인 김홍수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은 “이 교수는 평생 ‘2·28 정신’으로 맑게 살다 가신 존경스러운 분”이라며 “불의에 맞선 저항, 민주화, 인권, 사람에 대한 배려 등 고인이 남긴 맑은 뜻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21세기 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 4·19혁명공로자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평생을 2·28 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하다 2009년 9월 13일 별세했다. 추도식은 매년 4월 19일과 9월 13일 두 차례 열린다.







주간동아 2017.09.20 1106호 (p61~61)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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