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기업

이해진 ‘총수’ 지정 꺼리는 진짜 이유

네이버 “회장도, 최대주주도 아냐…‘재벌’ 꼬리표 해외사업 진출에 치명적” 공정위 “사실상 지배, 새로 드러난 기타 회사 3개…총수 책임 회피 말아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9-08 20: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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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더불어 이해진(50)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동일인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을 의미한다. 이날 공정위는 네이버 외에도 카카오, 넥슨, 동원, 삼라마이더스(SM) 등 자산 규모 5조 원이 넘는 57개 기업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 상호출자제한규제 대상 기준을 자산 규모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올리면서 ‘규제 공백’이 생긴 데 따른 보완책이라 할 수 있다. 자산 규모 5조~10조 원의 ‘준(準)대기업집단’을 포함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별도로 지정해 기업 오너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행위를 감시하겠다는 의도다. △비상장사 주요 사항 공시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기업집단 현황 공시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 편취 규제도 적용된다. 

    그동안 업계는 네이버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현재 네이버의 총자산은 6조6140억 원(8월 말 기준)으로 5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네이버는 최근 라인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현금성 자산이 늘었고, 법인을 새로 설립하거나 인수한 사례도 17건에 달한다. 현재 네이버가 거느린 계열사 수는 71개다.



    총수=재벌 오너?

    문제는 과연 이해진 창업자가 ‘총수’로 지정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네이버 측은 이 창업자가 최대주주도, 회장도, 이사회 의장도 아닌 만큼 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왔다. 8월 14일 이 창업자는 공정위를 직접 방문해 “네이버는 총수 없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춘 회사로 봐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날 이 창업자는 자신의 네이버 지분이 4%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3대 주주에 불과하고 기존 재벌과 달리 순환출자도 없으며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네이버의 대주주는 국민연금(10.76%), 영국 애버딘에셋매니지먼트(5.04%), 미국 블랙록펀드어드바이저(5.03%)다(그래프 참조). 그렇기에 이 창업자는 네이버도 포스코나 KT처럼 개인이 아닌 법인 자체가 동일인으로 지정되길 요구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창업자는 보유하던 네이버 지분 일부도 팔아치웠다. 본인이 네이버에서 기업총수로서보다 전문 경영인으로서 소임에 매진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창업자는 8월 22일 주식 11만 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주당 74만3990원, 총 818억3890만 원에 매각했다. 이로써 이 창업자의 네이버 지분은 4.74%에서 4.31%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움직임에도 공정위는 이 창업자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그를 총수로 지정했다. 네이버 측은 즉각 불만을 표출했다. 공식자료를 통해 “기업이 규모에 걸맞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해진 창업자가 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된 것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네이버 측 관계자는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30년 전 기업집단제도가 처음 태동했을 때 맞춰져 있다. 일정 규모로 성장한 민간기업에게 재벌과 총수라는 굴레를 씌우는 건 합당치 않다. 네이버 창업자는 4%대 낮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친인척의 지분도 없으며 이를 활용한 순환출자도 없다. 이미 네이버는 전문 경영인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경영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한 내부적으로 소송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정위의 생각은 다르다. 이 창업자는 네이버의 경영 활동과 임원 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향후 자사주를 이용한 우호지분을 10.9%까지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 동일인 지정이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영 참여 목적이 없다고 공시한 국민연금과 해외기관투자자의 지분 22.52%를 제외할 경우 이 창업자의 지분이 가장 많다. 또 1% 미만 소액주주가 50%에 달하는 등 높은 지분 분산도를 고려하면 이 창업자와 임원진(0.18%)이 보유한 4.49%는 사실상 지배력 행사를 하는 유의미한 지분”이라고 말했다.

    자사주를 우호주로 바꾸는 행위는 이미 한 차례 이뤄졌다. 6월 26일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와 자사주를 교환하며 우호지분(경영권 분쟁 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유리한 지분)을 1.71% 추가로 획득했다. 당시 두 회사는 “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하기 위해 상호 지분을 취득하는 등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지분 낮지만 사실상 지배력 높아


    지분 교환의 효과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두 회사는 상대방 주식을 서로 5000억 원씩 매입하기로 하고 미래에셋대우는 당시 종가 기준으로 네이버 주식 56만3063주(지분 1.71%),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 주식 4739만3364주(7.11%)를 사들였다. 이로 인해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 지분을 흡수하면서 자기자본 규모가 6조7000억 원에서 7조2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기준인 8조 원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데 의미가 크다.

    네이버 역시 이번 주식 교환으로 이 창업자의 경영권이 강화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두 회사는 일정 기간 주식 매각을 제한하고, 서로 보유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주식매도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제3자에게 지분을 처분하려고 할 때 우선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자본 확충 효과를 거둔 셈이다.

    네이버는 여전히 359만 주(10.9%)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다. 이는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의결권을 부활시킬 수 있다. 이사회 구성은 변대규 의장(비상임), 한성숙 대표이사, 이해진 창업자, 그리고 사외이사 4명이다. 상근자는 한성숙 대표와 이 창업자뿐이다. 또 1% 이상 의결권을 가진 이사는 이 창업자가 유일하다. 이사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다. 이 창업자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도 참여한다. 결국 이 창업자와 그의 영향력이 확고한 이사회가 직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분은 17%(자사주 10.9%+이해진과 임원진 4.49%+미래에셋대우 1.71%)가 넘는다. 또한 공정위는 이 창업주가 대주주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회사 설립 이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사내이사로 재직하고 있다는 점도 총수 지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네이버 측이 ‘총수’라는 타이틀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는 해외 진출의 어려움을 거론한다. 총수일가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강해 해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네이버 관계자는 “라인과 관련해 프랑스 등 유럽 쪽에서 활발히 투자 활동이 진행되는 와중에 네이버가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재벌기업이 됐다는 게 안타깝다. 유럽 쪽에서는 재벌, 총수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다. 옥스퍼드사전에도 ‘특히 가족이 소유한 기업’으로 ‘chaebol(재벌)’이란 단어가 등재돼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창업자의 가족 지분이나 경영 참여가 아예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창업자는 현재 유럽에 머물며 해외 사업 관련 분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100% 개인 회사, 지음

    네이버의 총수 지정이 해외시장 등에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창업자의 죽마고우로 알려진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는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네이버의 기업 지배구조는 아주 이상적이다. 대기업이 이런 이사회 구성과 지분구조였다면 지금까지 생겼던 많은 비리와 횡령, 정경유착 등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며 이 창업자와 네이버의 입장을 지지한 바 있다. 또한 그는 3월 이 창업자가 네이버 의장직을 외부 인사인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에게 넘겨준 것과 관련해서도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범’이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공정위를 포함해 업계 관계자들은 네이버의 반응에 오히려 의구심을 표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네이버 논리대로라면 삼성이나 현대차도 해외투자가 잘 안 돼야 한다. 네이버가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수와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는 재벌과는 의미가 현격히 다른데, 네이버가 이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인식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창업자가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지 미지수다. 동일인으로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총수로 지정됐다는 것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종전의 재벌들이 안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네이버가 깨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이번 총수 지정은 네이버가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졸업장’”이라며 “만약 네이버가 계속해서 총수 지정에 불만을 품는다면 동일인 지정에 따른 규제를 회피하려는 몸짓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앞으로 이 창업자는 네이버와 관련된 법적 책임이 커지고 공정거래법 제23조 2항에 의거해 사익 편취(일감 몰아주기), 편법 상속 등에 대해 감시와 규제를 받게 되는데, 실질적인 기업 지배자로서 이를 거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창업자가 동일인에서 벗어나려면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 창업자의 동일인 지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본인과 친족이 관련된 회사 3곳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유한회사(50인 이하 유한 책임 사원으로 조직된 회사로, 사원은 자본에 대한 출자 의무를 부담하며 회사 채무에 대해서는 출자액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 ‘지음’을 들 수 있다. 지음은 이 창업자가 2011년 11월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100% 개인 회사로, 이 창업자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컨설팅업체다. 총자산은 642억 원(지난해 기준)이며 일본과 싱가포르에 100% 자회사를 두고 있다.



    국감 때 국회 출석할 수도

    이 창업자는 지음을 통해 다양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세대를 위한 사업을 하는 벤처를 대상으로 한 ‘C-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일본 도쿄에서 철수될 뻔한 일본 쓰케멘 장인의 라멘집에도 투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지음과는 어떠한 사업적, 금전적 연관도 없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1992년 설립된 (주)영풍항공여행사다. 이 창업자의 6촌(아버지 사촌의 아들)의 배우자가 대표이며,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음식점 (주)화음이 있다. 2008년 설립된 회사로 이 창업자의 사촌이 대표이며, 대표가 지분 50%를 보유 중이다. 이 세 회사의 자산 규모는 700억 원 정도로 파악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네이버 기업집단(계열사)은 총 71개로, 그중 24개사는 네이버 계열, 13개사는 라인 계열, 19개사는 휴맥스 계열, 15개사는 기타로 분류됐다. 네이버 업종과는 별개인 휴맥스 계열(전자장비 개발 시스템 제조 및 판매업 등)이 기업집단에 포함된 이유는 변대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변 의장은 1989년 (주)휴맥스홀딩스를 설립했고, 현재 13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총자산은 6월 말 기준 1조571억 원이다.

    이 창업자는 본인과 친인척(배우자, 6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이 네이버와 거래할 경우 모두 공시해야 하며 내부거래로 규제받을 수도 있다. 국회 국정감사 때도 기업 총수로 국회에 불려나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국회에서는 네이버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증인으로 이 창업자를 출석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국내 인터넷 검색시장 1위 사업자로서 책임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닐슨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6월 기준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서 네이버의 점유율은 74.7%로 집계됐다. 2위 카카오(15.3%)와 3위 구글(7.2%)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모바일 시장 점유율도 네이버 72.9%, 구글 13.9%, 카카오 13.1% 순으로 네이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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