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중년 남자 앞에 찾아온 아드레날린의 화수분

하드코어 밴드 ‘바세린’ 20주년 기념 앨범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8-14 14: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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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록 음악을 트는 음악 술집에 그날은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가 흐르고 있었다.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생각했지만 손님들은 즐거워 보였다. 일행과 함께 술을 마시는데 낯익은 얼굴이 가게로 들어왔다. 서울 홍대 앞에서 라이브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으니 20년 가까이 된 사이다. 그는 서울 문래동에서 역시 라이브클럽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와의 인연도 20년 가까이 된다. 두 명 모두 펑크 밴드를 오래 해온 음악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셋이 이야기를 나눴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밴드를 한다는 건 예전에 비해 확실히 더 힘든 일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다 하드코어 밴드 ‘바세린’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들이 막 새 앨범을 냈기 때문이다. 그냥 새 앨범이 아니라 20주년 기념 앨범을. ‘20’이란 숫자가 새삼 다가왔다.

    한 밴드에게 20년은 참 긴 시간이다. 지나고 나면 현실이지만 닥치기 전엔 비현실 같은 개념이다. 바세린이 통과해온 그 긴 시간의 터널은 한국 하드코어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1997년 보컬 신우석과 베이시스트 이기호를 중심으로 결성된 바세린은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있던 클럽 ‘하드코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인디 음악의 발원기이던 그 시절, 펑크의 중심이 홍대 앞 ‘드럭’이었다면 ‘하드코어’는 이름 그대로 더욱 강성인 밴드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 클럽의 대표 밴드였던 바세린은 포괄적 록 애호가들에게도 지명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신우석의 보컬에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강한 공격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EP반 ‘Blood Thirsty’를 시작으로 1집 ‘The Portrait Of Your Funeral’, 2집 ‘Blood of immortality’를 거치며 그들의 음악은 나날이 발전해갔고, 하드코어의 저변 역시 넓어졌다. ‘브라더후드’(brotherhood·형제애)를 강조하는 장르 특성상 많은 밴드가 바세린과 연대했으며, 어제의 팬이 오늘의 밴드가 돼 무대에 섰다. 밴드끼리 합동 공연을 할 때면 관객이 가득 찬 객석에선 과격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패싸움이라고 오해할 만한 그런 퍼포먼스는 하드코어 신의 상징이자, 한국 록의 아드레날린 생성 기관과도 같았다.

    바세린은 그 후 몇 번 멤버를 교체했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20년, 사투와도 같았을 시간을 기념하는 앨범 ‘Memoirs Of The War’는 그들이 발표한 넉 장의 정규 앨범에서 대표곡을 모은 작품이다. 30명 넘는 동료 뮤지션이 참여해 한국 록의 상징적 밴드가 주최하는 지옥 같은 파티에 불을 지른다. 신우석의 성대는 예나 지금이나 야수 같고 바세린의 연주엔 더욱 강고한 근육이 붙었다.



    이 앨범을 들으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20년 동안 내가 변해온 시간을 곱씹었다. 세월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중년이 된 한 남자 앞에, 바세린이라는 거울이 있다. 에드 시런이 록 음악 술집을 장식하는 날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화수분 같은 아드레날린의 샘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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