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커버스토리

“5, 6세 아이보다 똑똑한 가전제품 만든다”

김락용 LG전자 책임연구원 인공지능+데이터 결합해, 쓸수록 편한 제품 만들 것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8-14 13: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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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사분기 LG전자는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홈얼라이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이 사상 첫 두 자릿수(11.2%)를 기록했다. 제조업 중에서도 특히 가전제품 부문은 인건비 비중이 높아 영업이익률이 5% 안팎인 게 일반적이다. 글로벌 가전제품업체 월풀, 일렉트로룩스도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그친다.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사업에서는 창사 이래 처음 있는 경사의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프리미엄’ 전략에 있다. 한때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던 가전제품 부문이 ‘효자’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획기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LG전자는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초프리미엄 통합 브랜드 ‘LG시그니처’와 빌트인 브랜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론칭했다. 그 덕에 같은 양을 팔아도 더 많은 수익을 남겼다. LG전자가 올해를 ‘인공지능(AI) 가전의 원년’으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6월에는 최고기술경영자(CTO) 부문에 ‘인공지능연구소’와 ‘로봇선행연구소’를 신설하기도 했다.

    그동안 음성·영상·센서 인식 등을 연구해온 ‘인텔리전스연구소’를 각각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분리해 확대 개편한 것. 두 연구소는 최고경영자(CEO) 직속 ‘클라우드센터’, H&A 사업본부에 속한 ‘H&A스마트솔루션BD’와 협력해 인공지능 가전,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한다. 인공지능 가전의 에너지 절약을 연구하는 H&A제어연구소 H&A선행제어연구팀의 김락용(51·사진) 책임연구원은 LG전자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이다.

    H&A제어연구소는 가전제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터와 컴프레서의 에너지효율성을 책임지는 부서로, LG 에어컨 사용자가 한여름 전기요금 폭탄을 면할 수 있느냐 등의 문제를 연구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냉장고와 에어컨에는 컴프레서가, 공기청정기와 세탁기 등에는 모터가 사용되는데 이것들의 운동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게 인버터 기술이고, 이 기술을 인공지능과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사용 패턴 익히는 ‘클라우드 지능’

    1991년 LG전자(당시 금성)에 입사한 김 책임연구원은 이미 그때부터 인공지능을 탑재한 ‘오케이 전자동세탁기’를 연구했다. 세탁기가 세탁 양을 스스로 측정해 헹굼과 탈수 정도를 자동으로 정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LG전자는 2011년부터 스마트홈 애플리케이션인 ‘LG 스마트씽큐(SmartThinQ)’를 운영해 와이파이(Wi-Fi)가 탑재된 제품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보다 한 발 더 진화한 것이 바로 ‘딥 씽큐(Deep ThinQ)’다.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연동해 제품 환경과 고객 니즈 등을 미리 파악, 대응하는 가전제품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술의 총칭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딥 씽큐’에 대해 “고객이 쓰면 쓸수록 더 똑똑해지는 가전”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의 궁극적 롤모델은 사람입니다. 가전이 똑똑해져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람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딥러닝’ 기술을 적용하고 있어요. 인지-인식-판단 과정은 지능을 가진 생물체의 행동 특성인데, 기계가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음성·영상·사물 인식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최적의 판단을 내려 동작하는 거죠. 세탁기를 예로 들면 요즘 깐깐한 주부는 세탁기 ‘표준 코스’ 외에도 ‘세탁’과 ‘헹굼’ 등을 추가로 설정하잖아요. 이러한 데이터가 와이파이를 통해 클라우드에 축적되면 이를 분석해 소비자의 세탁 패턴을 기계가 숙지한 뒤 최적의 세탁 모드로 맞춰주는 거죠. 이것을 ‘클라우드 지능’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가전제품이 클라우드 지능을 확보하면 백색가전은 그야말로 ‘화이트박스(White Box)’에 불과하게 된다. 항공기 블랙박스(Black Box)가 핵심 운항 정보를 담는 것과 달리 가전제품은 핵심 부품이 없는 하드웨어일 뿐, 정작 중요한 건 클라우드에 쌓인 데이터다. 김 책임연구원은 “노후화된 가전제품을 새 제품으로 바꾸더라도 이전 제품이 기억하던 것을 그대로 이식해주면 새 제품을 다시 학습시킬 필요가 없다. 디자인이나 기계적 성능은 더 좋아지고, 제품에 대한 친숙함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LG전자는 ‘휘센 듀얼 에어컨’에 ‘딥 씽큐’ 기반의 인공지능을 적용했다. 인체 감지센서로 사용자 위치를 파악해 사람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에어컨 스스로 구분하는 것. 사람이 있는 공간에만 집중적으로 바람을 내보내다 보니 실내 전체를 냉방할 때보다 최대 20.5%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에어컨이 새로운 장소에 설치되고 1주일가량 지나면 ‘스마트케어’ 기능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향후에는 냉장고, 세탁기,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생활가전에 ‘딥 씽큐’를 적용할 예정이다.



    조만간 펼쳐질 ‘공간의 스마트화’

    “로봇청소기를 예로 들면 ‘LG전자 로보킹’은 2015년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로봇청소기 지능지수시험’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았어요. 주위 지형과 장애물을 인지하고, 인지한 정보를 잘 처리해 적절하게 행동하는 5, 6세 아동의 지능 수준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죠. 그런데 출시를 앞둔 새 모델은 훨씬 더 똑똑할 겁니다. 청소기에 부착된 카메라(인체센서)를 통해 문턱과 사람 발을 구별하고, 항해사가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배를 운항하는 것처럼 청소기 카메라가 천장의 특징을 익혀 안방과 거실, 주방 등 공간별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거든요.”

    한편 가전제품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4월 미국 일부 소비자는 삼성전자 스마트TV 제품에 인터넷 방문기록 등 통신 내용을 숨길 수 있는 기능이 없고, 스마트TV 내부 녹음장치(실제로는 리모컨 음성인식 기능)에 대화 내용이 녹음돼 사생활 침해를 겪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책임연구원은 사생활 침해는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영상이나 음성이 해당 클라우드에 직접 전송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 스스로 그것을 텍스트화해 자기만의 암호로 저장하는 겁니다. 인공지능 에어컨도 비전센서(카메라)로 사람을 인식할 때 얼굴 영상을 직접 촬영하는 게 아니고 눈, 코, 입에 대한 좌표만 있어 영상으로 합성하는 일은 불가능하죠.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사생활 침해, 해킹 위험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전제품이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영상처리 전문가를 대거 모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LG전자 H&A제어연구소의 궁극적 목표는 ‘공간의 스마트화’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품들이 한 공간에서 스스로 쾌적한 생활공간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 김 책임연구원은 “주방에서 생선을 구우면 연기 입자와 공기 오염도에 따라 공기청정기, 에어컨, 레인지후드가 서로 작동을 명령하고 스스로 켜지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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