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인터뷰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장(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수리온 백지화는 타격 크다”

성능 개량 통해 국산화 필요…방위사업청, 경제적 측면만 고려한 것이 문제, 文정부 군 복무 단축은 시기상조…선(先)정예화로 중국 개입까지 대비해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04 17: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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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 국산화의 최고 성과로 꼽히던 KUH-1 수리온 헬기(수리온)와 K-2흑표 전차(흑표)에서 최근 문제점이 연달아 발견되자 무기 국산화 사업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성능이 떨어지고 군작전요구성능(ROC)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국산 장비 개발이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의문에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장(사진)은 “국산화는 필요하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명확한 기준을 갖춰 무기 국산화 사업을 진행했다면 국산 무기가 애물단지가 될 일도 없었다는 것.



    수리온, 방향은 맞았는데 관리 부실로 실패

    국산화가 필요한 장비의 기준이 있다면.
    “해당 장비의 운용 대수가 많고 오래 사용해야 한다면 국산화가 필요하다. 예외는 있다. 최첨단 장비 가운데 일부는 해외 기종을 도입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공군 전투기는 타국의 첨단 전투기와 직접 교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성능 기종을 수입해 당장 영공방어에 투입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최근 감사원이 수리온의 결함을 이유로 육군 측에 수리온 실전배치를 잠정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2013년 완성됐다 4년 뒤 배치를 중단할 정도로 결함이 있는데 국산화를 계속 추진해야 할 이유가 있나.
    “헬기는 국산화가 꼭 필요한 장비다. 애초 헬기는 공중교전을 위한 장비가 아니기 때문에 적 헬기를 압도할 정도의 성능이 필요하지 않다. 지상군에게 수송이나 화력을 지원하는 것이 군용 헬기의 주목적이다. 현재 한국군은 헬기만 600대 넘게 운용하고 있다. 유지비용을 감안하면 국산화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 

    하지만 감사 결과 치명적 결함이 발견됐고, 헬기가 추락하는 등 사고가 있었다.
    “로터 결빙, 결로 문제 등 감사원 지적 사항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런 것들은 개발 후 성능시험을 통해 문제를 확인, 보완해 고쳐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수리온은 최초 성능시험부터 너무 안일하게 이뤄졌다. 이러다 보니 기체 성능 결함 같은 문제가 쌓여왔다. 사업 자체가 아니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제대로 성능시험을 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방위사업청(방사청)이 무기 국산화 사업 부실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이전 국방부가 관련 사업을 담당할 때는 군이 직접 사용해야 하는 장비인 만큼 비용이나 시간이 들더라도 엄격한 성능시험을 거쳐 도입을 결정했다. 방사청이 책임을 맡은 뒤 군과 관련 없는 일반 공무원이 주로 무기 국산화 사업의 계산기를 두드렸고, 이로 인해 국방부가 담당할 때보다 가격 등 경제적 측면을 더 고려하게 됐다. 그 결과 무기 개발 기업으로 하여금 개발비를 줄이게 하고, 성능시험 기준을 완화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만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신형 무기를 개발할 때 초도 생산을 통해 일단 사용해보는 사례가 있다. 전투에 해당 장비를 투입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라면 확인된 문제점만 해결한 뒤 일정 정도 생산하고 전투 시 문제가 나타날 경우 다음 기종 개발에 이를 반영한다. 한국군은 당장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 아니다. 기왕이면 문제를 모두 짚은 뒤 도입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미 장비를 도입한 만큼 전면 백지화보다 미국 사례처럼 시간을 두고 고쳐가면서 사용하는 것이 낫다. 수출을 고려했을 때도 수리온 사업 전면 백지화는 타격이 크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흑표

    ‘흑표’ 문제로 넘어가보자. 이 전차는 이미 구동계인 파워팩을 제외하면 국산화가 완료된 상황인데 파워팩 국산화 때문에 제 성능을 못 내고 있는 것 아닌가.
    “수입 파워팩을 달았다면 흑표는 이미 성공한 전차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사실 국산 파워팩이 성능이 떨어지고 가격도 비싼데도 국산화를 추진한 이유는 부품 비용 때문이다. 독일 MTU사 파워팩을 도입하면 해당 부품을 계속 수입해야 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 국제법상 전쟁 중인 나라에 군용 물품을 판매할 수 없어 전시에는 파워팩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국산화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파워팩을 수입하는 회사의 사외이사로 있었다.
    “파워팩 국산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MTU의 기술 이전 없이 독자 국산화를 진행한 것이 문제였다. MTU는 100년 넘게 디젤엔진을 만들어온 회사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국내 기술로는 MTU 제품과 비슷한 성능의 파워팩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만큼 독자 국산화보다 기술 도입 식의 계약을 통해 부분 국산화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MTU 제품을 수입하는 유비엠텍에서 MTU와 국산 전차 엔진의 합작 생산을 추진 중이라고 해 고문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방사청이 기술 도입 없는 독자 국산화를 추진해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 문제로 2013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했던 것으로 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이 내용을 문제 삼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퇴한 것은 당시 야당 의원들이 대북관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 이에 대한 피로감이 컸기 때문이다.”

    기술 도입 방식의 장점이 있다면?
    “일단 빠르게 장비를 배치하는 것은 물론, 부족한 기술력을 점차 축적할 수 있다. 무기 국산화 성공 사례로 꼽히는 K-9 자주포도 미국 M109A2 자주포를 기술 도입해 생산한 경험이 든든한 바탕이 됐다. 기술 도입 방식을 거치면 흑표뿐 아니라 이후 차세대 전차 개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차 외 장갑차, 군용 선박 등에도 MTU 제품이 널리 쓰인다. 이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면 관련 장비의 부품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대비해 파워팩 기술 도입 협상에 나서면서 MTU 측에 전시 부품 수급을 요청할 수 있다. 국제법상 완제품 수입이 금지돼 있는 것이지 부품 수입은 가능하다. 파워팩 기술 도입 생산을 이용해 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도 있다.”

    방사청이 파워팩 전면 국산화를 고수하는 데는 방산업계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압력이 작용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파워팩을 기술 도입 식으로 생산하면 현재 국산 파워팩 개발 업체가 반발할 것은 당연하다. 국산화에 실패했으니 그에 대한 위약금은 물론, 지금까지 국산 파워팩 개발에 쏟은 시간과 비용이 전부 허사가 된다. 군용 개발 물품을 민간에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같은 형국이라면 파워팩 문제의 해결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국방부 장관이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파워팩 국산화 방향을 기술 도입 식으로 바꾸려 한다면 지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장관이 기획재정부 및 방사청과 협의해 국내 업체가 개발한 파워팩을 민간에 판매할 수 있게 해준다면 반발도 수그러들 것이다.”



    명분이 아닌 합리적 방안 찾아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2013년 당시 국방부 장관직을 수락한 것인가.
    “무기 관련 문제는 부수적인 사안이다. 장관이 되려 했던 것은 한국군의 체질 변화를 위해서였다. 현재 한국군은 북한 도발을 방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북한군 전력이 워낙 약세라 북한군 방어만 고려한다면 현 전력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후 북한과 문제가 생기면 중국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중국군에 대비할 전력을 갖춰 중국이 섣불리 남북문제에 군사적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기계화 및 보병 전력을 강화해 7개 사단을 정예화하는 실험을 통해 한국군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심산이었다.”

    병력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한데, 현 정부의 군 복무 기간 단축 방침을 어떻게 생각하나.
    “문제가 있다고 본다. 복무 기간 단축으로 현역병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인데, 정예화된 현대전 전력이 주 전투를 치른다지만 여전히 군 규모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지금도 군 병력이 부족해 유사시 예비군을 소집해야 하는데 소집 기간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을 현역병 병력만으로 버텨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병력 규모로도 이는 쉽지 않다.”

    병력 규모를 줄이고 정예화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전후관계가 틀렸다. 정예화를 한 다음 병력 규모를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일단 병력 규모를 줄이고 정예화에 손댄다고 하니 불안이 커지는 것이다. 독일은 1970년대부터 징집된 병력의 복무 기간을 18개월에서 최종적으로는 9개월까지 줄였다. 이처럼 의무복무 기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질 수 있었던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다. 복무 기간이 줄어들면 제대로 전투훈련을 받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독일은 이를 해결하고자 징집된 병력은 전투 훈련만 받게 했다. 취사, 행정, 설비 등 기타 업무는 외부에 맡겼다. 이 때문에 복무 기간이 짧아도 충분한 전투력을 갖출 수 있었다.”

    정부가 이처럼 갑자기 병력 규모를 줄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결국 모병제로 가는 것이 정부의 궁극적 목적인 듯하다. 하지만 모병제는 아직 이르다. 독일도 통일 이후 20여 년에 걸친 장기적 병력 감축을 통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지 5~6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이 징병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모병제로 전환하면 직업군인으로 선발된 인원만 군에 가게 된다. 징병제 시절에 비해서는 군 내부를 살필 수 있는 국민의 눈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 군이 특수이익집단으로 변할 위험도 있다. 이와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직 모병제는 이르다.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시절 당시 버렐 벨 주한미군 사령관도 나에게 ‘모병제는 절대 좋은 대안이 아니다. 모병제로 가면 비용이 많이 들고 병력의 질도 담보할 수 없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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