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2011.09.26

선배 기자를 떠나보내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09-23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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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눈빛을 가진 한 선배가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내 얘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그래? 그렇구나!’라며 맞장구쳐주는 듯했다. ‘이해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고 더 신이 나서 얘기했다. 한참 동안 얘기를 듣던 선배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흑과 백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라는 선택을 강요받을 때가 많지. 하지만 우리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처지에서 ‘팩트’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잖아. 팩트가 만일 ‘회색’이면 우리는 용기를 내 ‘회색이 팩트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그런데 만일 어느 한쪽 편에 치우친다면 어떨까. 팩트를 놓치고 진실과 멀어지지 않을까. 네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를 강변하는 내게 선배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세상일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아. 같은 사안이라도 보는 사람의 처지와 견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 하나의 사건을 두고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갖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일 아닐까.”

    그 선배는 “사실을 곡해하지 않고 진실에 다가서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내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것에 대한 그의 완곡한 충고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조언은 기자인 내가 지켜야 할 원칙이 됐다.



    선배 기자를 떠나보내며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고, 결국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미소를 머금은 선배의 영정 앞에 섰을 때 2년 전 그가 해준 조언이 마치 유언처럼 떠올랐다. 선배는 떠났지만, 선배가 남긴 그 귀한 뜻은 ‘주간동아’ 지면에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옳다’는 흑백논리가 판치는 현실에서 앞으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팩트’를 좇아 진실을 보도하는 일에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공종식 선배!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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