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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베 상생경제협력

‘생산적인 원조’로 새로운 협력 공간 함께 열어야

한국-베트남 상생협력을 위한 제언

  •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생산적인 원조’로 새로운 협력 공간 함께 열어야

  • ●K-프로젝트(복합 한류문화사업) 추진으로 청년 해외 일자리 창출
    ●베트남의 후진 시스템 개선 협력으로 한국 기업 애로사항 해결
    ●베트남 과학기술인력 양성 프로그램, 미래 위한 마중물 기대
    ●무역수지 불균형 지속되기 어려워, 베트남 수출 기반 조성도 지원해야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 곳곳에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신화=뉴시스]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 곳곳에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신화=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반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힘에 기초한 양자주의’가 ‘규범에 의한 다자주의’를 거칠게 압박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국가 간 통상·안보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위대한 미국 재건’을 노리는 트럼프는 ‘미국이 국제질서의 수호자가 아님’을 천명한 데 이어 이를 행동에 옮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공급된 국제공공재에 대해 미국이 ‘무임승차자’ 단속에 나선 것이다.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이 주요 타깃이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은 ‘관세 부과’나 ‘투자 제한’ ‘공급망 공격’과 더불어 ‘미군 철수’ 등 다양한 협상 카드를 내밀며 상대국을 위협하고 있다. 백악관은 우방인 한국과 일본에 기존 방위비 분담금의 5배를 요구하는 동시에 한국산, 일본산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 안보조항 적용을 고민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배치하면 제2의 보복을 감행할 태세고, 한일 양국은 전략물자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서로를 우방국(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다. 과거사를 둘러싼 소모적인 정치 행위가 양국의 현재와 미래를 흔드는 형국이다. 

이 혼돈과 광기의 시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맹주이자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인 베트남과의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먼저 베트남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상생협력의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보자.


베트남의 불편한 현주소

하노이에 세워진 롯데센터 하노이. [사진 제공 · 롯데건설]

하노이에 세워진 롯데센터 하노이. [사진 제공 · 롯데건설]

1986년 도이머이(개혁정책)를 도입한 이후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눈부시다. 매년 6%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하노이와 호찌민은 스카이라인을 뽐내는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올해 초 발효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창립 회원국이기도 한 베트남은 향후 수준 높은 시장 개방과 제도 개혁까지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경제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발전 경로가 이례적임을 알 수 있다. 

독일, 일본부터 한국, 중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후발국 정부는 ‘산업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이행하고 특히 제조업의 경우 노동집약재 → 자본집약재 → 기술집약재 → 첨단 융복합재라는 기술사다리 이행 경로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제조업 강국이 되는 것이 이들의 지상 목표. 하지만 베트남은 이 경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제조업이 국내에 자리 잡기도 전 농업에서 서비스로 경제 중심축이 이동한 나라, 기술사다리 타기를 포기한 경제, 이것이 베트남의 불편한 현주소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과 1980년대 반도체 진출로 경제발전의 이정표를 새롭게 써나간 한국이나, 2049년 기술력 세계 1위를 꿈꾸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제3의 길을 베트남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약 20%, 수출의 72%를 외국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도 조립과 포장 등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가 베트남에서 이뤄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과 베트남 정부가 약속한 각종 특혜 조치, 예를 들어 낮은 법인세와 저렴한 임차료, 용이한 통관 절차, 거대시장 중국과의 근접성 등이 외국 기업들을 베트남으로 끌어들인 유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토착기업이 베트남에 전무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시가총액 1위인 빈그룹(Vingroup)은 부동산개발업체로 시작해 현재는 병원과 백화점, 학교, 슈퍼마켓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빈패스트)와 스마트폰(빈스마트) 제조에도 뛰어들었지만 기술력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2위 마산그룹(Masangroup)은 식음료업체다. 자산 규모 최상위도 모두 은행이다. 

1992년 한국과 정식 국교를 맺은 베트남의 ‘제조업 부재 현상’은 주요 수출품의 변화 추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트남은 1992년과 2019년 상위 수출 품목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녹차, 커피 등 농산물과 한치 같은 수산물, 그리고 원유, 의류, 가전, 목재가구, 전선류 등이 변함없이 주력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결국 도이머이 이후 35년이 흘렀지만 토착기업에 어떤 기술 축적도 발생하지 않았고, 그 결과 수출 품목은 여전히 1차 산업과 노동집약재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최근의 첨단제품 수출 성과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외국 기업이 현지 조립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연합(EU)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현상에 따른 것이다.


‘포스트 차이나’ 유망 투자처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은 베트남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gettyimages]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은 베트남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gettyimages]

한국과 베트남의 상생협력을 위한 제언은 ‘베트남의 성장전략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과 그 해답에 대한 모색 과정에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10년간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 유망 투자처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중국은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내수마저 부진을 거듭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중국 정부가 노동법과 환경법을 강화하면서 외국 기업들은 폐업마저 어렵게 되자 중국을 대체할 지역을 적극 모색하고 나섰다. 베트남 정부의 개혁·개방 의지도 외자 유치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마시밀리아노 칼리(Massimiliano Cali) 세계은행 박사는 지난해 미·중 충돌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부분균형 분석을 통해 제시했는데, 미국이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줄이면서 대체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 국가를 조사한 결과 1위는 베트남, 2위는 필리핀, 3위는 캄보디아로 나타났다. 베트남은 특히 새우와 목재가구, 핸드백, TV, 카메라, 전선류 등에서 중국산의 대체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중국을 대체할 투자처로도 베트남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에서 각국 부가가치 비중은 대만이 압도적으로 높은 6.5%이고 2위는 한국으로 3.3%였으며 말레이시아 3.0%, 싱가포르 2.8%, 그다음은 태국, 필리핀, 베트남 순이었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과 수출 감소에서 오는 피해도 베트남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와 함께 그 비중이 0.1% 이하로 드러나 중국 주도의 가치사슬에 편입되지 않은 국가로 분류됐다. 

하지만 베트남 경제의 장기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1986년 도이머이 이후 수많은 학자와 싱크탱크는 베트남이 ‘잠재력이 뛰어난 나라’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베트남의 ‘잠재력’만 이야기하는 상황이라면 뭔가 일이 심하게 꼬인 게 틀림없다.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베트남은 공업화 초기 단계 진입에 실패했다. 공업화를 시작하려던 1980년대 중반 이미 중국산이 범용 공산품부터 기본 생필품까지 베트남산에 비해 비교우위를 확보한 상황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그 대신 외국 기업 유치를 통한 공업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1960년대 초 중국에 앞서 경제개발을 시작한 한국의 공업화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는지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국제분업체계에서 베트남의 입지는 자체 보유 기술의 낙후성으로 인해 저부가가치 생산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베트남이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가치사슬 구조는 포화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최근 보호무역주의와 디지털 기술의 세계적 확산은 각국 기업의 리쇼어링(본국 회귀)을 부추기고 인건비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베트남 정부와 시장이 제공하는 외국 기업에 대한 각종 유인은 시간을 두고 그 효과가 줄어들 개연성이 크다. 예를 들어 베트남 외자 기업의 임금상승률의 경우 2010년 이후 연 11.4%에 이르고 월평균 임금 또한 400달러(약 47만 원)를 넘어섰다. 최저임금 상승에 정부가 앞장서 외자 기업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도소매, 숙박, 관광, 부동산 임대, 유통 등 서비스 산업 또한 제조업 기반이 부실해 경기에 민감하고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복합 한류문화사업의 효용성

결국 한-베트남 상생협력은 베트남 경제의 중장기적 역동성 제고와 내수 위주의 제조업 기반 구축을 통해 양국 기업의 상호 보완성과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합 한류문화사업(K-프로젝트)’ 추진을 양국 정부에 제안한다. K-프로젝트는 베트남 주요 도시, 예를 들어 하노이와 호찌민, 다낭에 복합 한국문화타운을 건설하고 한글학당과 한류문화센터(케이팝, 케이댄스, 케이뷰티, 케이웨딩 등), 영화관, 전시장, 케이팝 공연장(아이돌그룹 정기공연), 태권도장, 한국학 교육 및 연구센터 등을 복합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베트남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한-베트남 문화 교류의 실질적인 구심체 기능을 할 것이다. 한국 상품 홍보의 최첨병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많은 한국 청년에게 해외 일자리를 제공할 K-프로젝트는 양국 민관 합동 출자 방식 등 다양한 설립 형태를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베트남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후진적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는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법적 요건을 충족했지만 정부의 최종 허가가 나지 않아 우리 기업인들이 사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 베트남 정부의 각종 시행령이나 규정이 상위법과 어긋나도 법원은 문구의 해석만 내리는 상황이라 기업이 제소를 통해 보상받을 길이 막혀 있다. 부동산 또한 최종 소유권이 정부에 있어 경매나 공매 제도를 통해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와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자니 대관(對官) 업무 비용도 만만찮다. 최근 한국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법제연구원 등 26개 국책연구기관 관장)가 인도네시아 산업부와 주요 산업 공동연구 및 협력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시행 협약 체결에 이어 공동사무국을 자카르타에 두기로 한 것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또 베트남 산업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 전문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해 우리 기업인들의 문제를 원스톱 방식으로 해결하는 창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베트남 과학기술 연구 인력의 양성에 한국이 큰 역할을 담당했으면 한다. 베트남 정부가 매년 1000~2000명 규모의 이공계 대졸자를 선발해 한국 대학에 관련 교육을 위탁하고, 그들을 석·박사 과학기술 인력으로 양성하는 사업이다. 이는 베트남 미래 산업의 마중물이 될 의미 있는 작업이다. 한국 정부가 한-베트남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그 전략적 의미 또한 상당하다. 현재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유학생 초청 장학사업이 있지만 그 대상이 너무 적고 하나의 군(群)을 형성하기도 어려워 졸업 후 대부분 공무원이 되거나 외국 기업에 취업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스코의 ‘아시아펠로우십’ 제도는 민간기업이 석·박사 국제인력을 육성하고 친한(親韓)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자세

하노이 인근에 자리한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생산 공장. [ 장승윤 동아일보기자]

하노이 인근에 자리한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생산 공장. [ 장승윤 동아일보기자]

넷째, 베트남의 수출 여건을 개선하는 데 한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베트남은 농수산물을 많이 수출하고 싶어도 수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애로가 많다. 한국과의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난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부품소재를 한국으로부터 수입해 베트남에서 조립하고 이를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한국 기업을 보자.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대(對)세계 수출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한-베트남 양국 무역수지로만 보면 세계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한(對韓) 무역 적자폭이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베트남 역시 한국에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도록 ODA(공적개발원조) 기금을 활용해 베트남 수출 기반 조성사업을 지원하고 SPS(위생검역) 장벽을 낮추는 등 우리 정부의 배려와 지원이 절실하다. 

삼성전자는 하노이에서 75km 떨어진 타이응우옌성에 제2공장을 짓고 5만여 명의 현지 근로자를 고용해 휴대전화를 생산하고 있다. 2013년 대학 도시인 이곳에 삼성전자 공장이 문을 열면서 10만 명이던 대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어 현재 6만5000명이 됐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월급 300달러를 받기가 어려운데,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에 취업하면 월급으로 400달러를 받게 되니 삼성전자에 대한 현지 대학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또 삼성전자의 50여 개 현지 협력기업 가운데 47개는 동반 진출한 한국 기업이고 나머지 3개는 종이상자와 노끈을 납품하거나 포장, 하역 등을 해주는 베트남 회사들이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가 베트남 토착기업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측은 납품을 받을 만한 기업도, 기술을 전수할 만한 기업도 현지에서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처럼 서로 필요에 의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각자의 기대치는 다른 게 현실이다. 

현재 5만 명의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자와 결혼해 이 땅에 살고 있다. 베트남을 그저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호혜 상생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식민지로 점철된 과거사를 과감히 떨쳐버린 베트남은 한때 총을 겨누던 미국과 한국 모두를 두 팔로 부둥켜안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한다. ‘생산적인 원조’를 통해 새로운 지평을 같이 열어가는, 유연하고도 전략적인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주간동아 2019.11.29 1216호 (p23~27)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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