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4

2021.06.18

능력주의가 공정? 이준석의 착각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얼굴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6-18 10:03:3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동아DB]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동아DB]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오랜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재개하며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물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겨냥한 글이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나 보다. 몇 달 전 나 역시 이준석의 능력주의 성향을 경계하며 그에게 샌델을 권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내게 샌델이 “약을 판다”고 폄훼하며 그 대신 ‘뚜웨이밍’이라는 매우 생소한 철학자 이름을 들이댄 적 있다.

    이번에 고 의원이 능력주의를 의제로 꺼내 든 이유는 그 부분이 앞으로 이 대표의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전여옥 씨가 당대표가 돼 바빠진 이 대표를 대신해 방어에 나섰다.

    “이 나라가 지금 문재인의 ‘무능’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

    ‘능력주의(meritocracy)’를 ‘유능함’을 뜻하는 말로 이해한 게다. 그만이 아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면 대부분 “아니, 실력대로 하자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반발한다. 이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능력주의가 엄밀한 정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일상어로 사용되는 데 따른 혼란이다.



    성공한 이는 대부분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실력 덕이라고 믿곤 한다. 이 대표도 언젠가 자신이 서울 목동에 자리한 학교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른 끝에 과학고와 하버드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에게 이미 ‘목동’이라는 조건이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능력주의는 그런 환경에서 그런 아이들만 보고 크는 과정에서 그의 신체에 기입된 것이리라.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휴대전화 대리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대표보다 뛰어난데도 지방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기회를 잡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많겠는가.

    부정 입학 사례를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반칙 없이 진짜 실력대로 시험을 치른다 해도 그것은 특정 인구집단 내 경쟁일 뿐이다. 게다가 부모 실력이 과도하게 개입되는 한국 사회에서 ‘실력’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은 정유라뿐인 듯하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야.”

    능력주의자는 이 근원적 불공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 불공정한 상황이 그들에게는 자연의 질서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 그래서 이를 인위적으로 수정하는 장치들이 외려 공정을 해친다고 우긴다. 이 대표가 여성할당, 청년할당, 지역할당을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 시행 중인 인종할당제 역시 능력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1심과 2심은 대학의 할당제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최종심에서 이 판결이 확정될지는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기간에 대법원 구성이 보수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갔어도 ‘트럼피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요원 직접 고용으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인국공’ 사태를 보자. 문제 본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있다. 정말로 고용 유연화를 원한다면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손해를 상쇄하기 위해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받고 있다.

    “입사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정규직 자격을 주자”는 것은 결국 이 차별의 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시험성적을 근거로 누가 차별의 ‘주체’가 되고 누가 ‘대상’이 될지 결정하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을 ‘공정’으로 여긴다. 한마디로 공정하게 ‘차별’하자는 얘기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어렵게 입사시험에 붙었으니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하고, 떨어진 너희는 차별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능력주의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얼굴이다.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이 신분제를 혁파하려 할 때 가장 크게 반발한 집단은 무사가 아니라 상민들이었단다. 신분제가 사라지면 천민을 차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사에게 당한 차별을 천민에게 투사하는 낙에 살아왔는데, 세상의 유일한 낙이 사라져버린다니 얼마나 암담한가.

    공정, 피할 수 없는 대선 의제

    차별을 철폐한다면서 사회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고작 대통령 이벤트 연출로 대체해버린 것이 현 정권이 범한 오류였다. 그 오류를 수정하는 길이 ‘차별 철폐’라는 목적 자체를 폐기하고 차별을 ‘공정’하게 하는 것일 리 없다. 그 길로 나아가면 차라리 현 정권의 ‘위선’과 ‘무능’이 그리워질 게다.

    능력주의는 오래전부터 이 사회의 강력한 이데올로그였다. 그것이 사회문제의 집단적 해결 전망을 잃은 젊은 세대에게 더 명확하고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이 대표의 능력주의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세월이 흐르면 어차피 그들이 이 사회의 주력이 된다.

    이번 대선에서 ‘공정’은 피할 수 없는 의제가 됐다. 그것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상징자본이지만, 최근엔 ‘기본’ 시리즈를 얘기하던 민주당의 이재명 경기도지사마저 슬쩍 ‘공정’ 이슈에 숟가락을 올렸다. 도대체 ‘공정’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물음이 다가오는 대선의 중요한 논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의 ‘공정’ㅂ은 무엇일까. 그의 측근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전 총장의 공정과 이 대표의 공정은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윤 전 총장도 이 대표처럼 ‘공정’을 능력주의로 정의할까. 걱정된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