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고들 한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실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치를 버릴 용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다섯 살 아이조차 예쁘고 젊은 선생님을 더 좋아하니 말이다.
영화배우라는 직업군은 더욱 그렇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모태솔로, 낙오자, 실패자를 연기하지만 스크린을 벗어나 레드카펫 위에 서면 군계일학이며, ‘1만 분의 1’ 정도 확률에 가까울 우수한 유전자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연기’를 보며 기꺼이 눈속임을 당할 뿐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도 겉으로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속물근성에 딱 맞는 영화에 더 가깝다. 이름이 우진인 남자가 있다. 그는 열일곱 살 이후 매일매일 얼굴이 바뀐다. 인종, 나이, 성별까지 매일 변한다. 외국인 여성이 됐다 노인이 되고, 심지어 아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변신이 비극의 씨앗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럭저럭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매일매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건은 우진이 사랑하는 사람 이수(한효주 분)를 만나며 시작된다. 우진은 자신의 상태를 상대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오히려 문제는 이수 쪽에서 발생한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남자를 알아볼 수 없고, 그가 사라질 경우 찾을 길도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뷰티 인사이드’는 판타지, 즉 동화라는 점이다. 주인공이 매일 외모가 바뀌니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도 운전면허증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의문 같은 건 갖지 말아야 한다. 여권도 못 만들 텐데 어떻게 외국에 나갈 수 있는지도 물으면 안 된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매일 외모가 바뀐다는 것, 그것뿐이다.
흥미롭게도 이 판타지는 우리의 어떤 욕망 깊은 곳을 건드린다. 외모는 바뀌는데 마음은 바뀌지 않는 것, 그래서 매일 신선하게 상대를 만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한 것, 그런 욕망을 보여준다. 이 욕망을 충족하고자 영화 속에서는 중요한 순간 모두 그럴 듯한 외모를 지닌 잘생긴 남자 배우가 출연한다. 첫 고백은 박서준, 첫 섹스는 이진욱, 처음으로 진지하게 싸우는 남자는 서강준, 이별을 고하는 사람은 김주혁 등으로 말이다. 물론 김상호, 김희원, 배성우처럼 평범한 외모의 남자 배우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인물은 주인공의 내적 고민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뷰티 인사이드’가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건축학개론’은 워낙 남성 관객들의 공감대에 의존한 작품이다 보니 수지가 15년이 지나 한가인이 되기도 하지 않나. 나이를 먹어 더 예뻐지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사실에 가깝다. 첫사랑이 나이를 먹어 더욱 아름답기를 바라는 남성의 욕망 말이다.
여성의 욕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뷰티 인사이드’는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대단한 철학적 사유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사랑을 재미있게 재구성하기는 했지만 사랑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은 없다. 그럼에도 로맨스가 거의 사라진 지금 영화에서조차 보기 어려웠던 달콤한 연애를 보는 즐거움은 있다. 딱 그 정도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배우라는 직업군은 더욱 그렇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모태솔로, 낙오자, 실패자를 연기하지만 스크린을 벗어나 레드카펫 위에 서면 군계일학이며, ‘1만 분의 1’ 정도 확률에 가까울 우수한 유전자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연기’를 보며 기꺼이 눈속임을 당할 뿐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도 겉으로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속물근성에 딱 맞는 영화에 더 가깝다. 이름이 우진인 남자가 있다. 그는 열일곱 살 이후 매일매일 얼굴이 바뀐다. 인종, 나이, 성별까지 매일 변한다. 외국인 여성이 됐다 노인이 되고, 심지어 아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변신이 비극의 씨앗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럭저럭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매일매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건은 우진이 사랑하는 사람 이수(한효주 분)를 만나며 시작된다. 우진은 자신의 상태를 상대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오히려 문제는 이수 쪽에서 발생한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남자를 알아볼 수 없고, 그가 사라질 경우 찾을 길도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뷰티 인사이드’는 판타지, 즉 동화라는 점이다. 주인공이 매일 외모가 바뀌니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도 운전면허증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의문 같은 건 갖지 말아야 한다. 여권도 못 만들 텐데 어떻게 외국에 나갈 수 있는지도 물으면 안 된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매일 외모가 바뀐다는 것, 그것뿐이다.
흥미롭게도 이 판타지는 우리의 어떤 욕망 깊은 곳을 건드린다. 외모는 바뀌는데 마음은 바뀌지 않는 것, 그래서 매일 신선하게 상대를 만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한 것, 그런 욕망을 보여준다. 이 욕망을 충족하고자 영화 속에서는 중요한 순간 모두 그럴 듯한 외모를 지닌 잘생긴 남자 배우가 출연한다. 첫 고백은 박서준, 첫 섹스는 이진욱, 처음으로 진지하게 싸우는 남자는 서강준, 이별을 고하는 사람은 김주혁 등으로 말이다. 물론 김상호, 김희원, 배성우처럼 평범한 외모의 남자 배우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인물은 주인공의 내적 고민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뷰티 인사이드’가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건축학개론’은 워낙 남성 관객들의 공감대에 의존한 작품이다 보니 수지가 15년이 지나 한가인이 되기도 하지 않나. 나이를 먹어 더 예뻐지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사실에 가깝다. 첫사랑이 나이를 먹어 더욱 아름답기를 바라는 남성의 욕망 말이다.
여성의 욕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뷰티 인사이드’는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대단한 철학적 사유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사랑을 재미있게 재구성하기는 했지만 사랑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은 없다. 그럼에도 로맨스가 거의 사라진 지금 영화에서조차 보기 어려웠던 달콤한 연애를 보는 즐거움은 있다. 딱 그 정도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