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집행관은 법원 또는 검찰청 명령에 따라 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한 사람들의 재산을 회수하거나 집과 토지 등 부동산을 경매해 돈으로 바꿔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부동산 외 돈을 갚아야 할 이가 가진 가구나 TV 등 가재도구와 사무실 물건 등을 가압류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담당하고 있다.
할 말 잃게 하는 고압적 태도
이들은 4년 임기의 특별직 공무원으로 정식 공무원의 지위를 갖지는 않는다. 지방법원장이 법원행정처와 검찰청 사무국 소속 일반직 공무원 서기관급 이상 관료 가운데 적당한 인사를 뽑아 권한을 부여할 뿐, 사법부의 판결을 집행하는 독립적 사법기관의 기능을 한다. 이 때문에 집행관은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집행비 등의 비용을 수임료로 가져간다. 즉 이들의 월급은 낙찰자와 채권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이다.
그런데 집행관법에 따르면 낙찰자 혹은 채권자가 집행관에게 비용과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집행관은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경매물건을 낙찰받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의 빚을 낸 낙찰자는 시간이 갈수록 이자가 불어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강제집행이 이뤄지길 바란다. 빌려준 돈을 한시라도 빨리 받고자 하는 채권자도 속이 타들어가긴 마찬가지다. 이들의 타는 속내를 빤히 꿰뚫고 있는 집행관들은 집행 날짜를 일부러 늦추고, 집행비용을 과다하게 책정하며, 빠른 진행을 위해 뒷돈을 요구하는 등 갖은 부정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
#1 A지방법원에서 경매물건을 낙찰받은 김모 씨는 집행관실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일주일 뒤 퇴근 무렵인 오후 6시쯤 집행관실 계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씨는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계고(점유자 혹은 채무자를 찾아가 강제집행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일)하러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근무 일정을 갑작스레 조정할 수 없어 계장에게 날짜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하자 “다른 집행 건이 밀려 있어 그럴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의 집행을 대리한 A법무법인 관계자는 “집행관실에서 낙찰자의 편의를 봐주는 일은 전혀 없다. 김씨와 같이 사정상 갈 수 없다고 하는 경우 다음번으로 미뤄지는데 그때도 똑같은 식으로 이튿날 계고 일정을 통보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행관실은 집행관과 과장, 계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보통 30대 초·중반인 계장은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낙찰자 혹은 채권자를 대한다. 그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경매를 통해 거액의 물건이 낙찰되면 집행관은 상당한 금액의 수수료를 받고, 집행관실 직원들은 집행 과정에서 비용을 챙긴다.
집행관이 계고를 2번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낙찰자 혹은 채권자가 요청하면 계고는 1번으로 끝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C법원 집행관실은 내부적으로 계고를 2번 나가는 것으로 정해둬 모든 이가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계고를 2번 나가려는 이유는 출장비를 그만큼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채권자가 출장비를 예납해야 계고 날짜가 잡히는데 통상적으로 1회만 나갈 경우 나머지 1회분 출장비는 환불해줘야 한다. 그러나 C법원 집행관실의 경우 굳이 2회를 나가기 때문에 환불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3 최모 씨는 강제집행 계고 현장에 나갔다가 동행한 집행관실 계장에게 혼이 났다. 점유자 신원 확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이유에서다. 강제집행이 모두 끝날 때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많이 남아 최씨는 할 수 없이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계장에게 사죄했다.
재판부가 판결을 내려주면 판결문에 쓰인 대로 점유 확인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집행관이 해야 할 일이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면 집행관들은 굉장히 형식적이고, 강제집행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만약 점유자 확인이 되지 않아 집행 불능이 떨어지면 채권자는 두세 달을 더 기다린 뒤 재확인을 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강제집행 소송을 다시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채권자가 나서서 점유자를 확인하는데 그 과정에서 집행관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제집행 전 뒷돈 요구
강제집행 후 압류된 유체동산을 보관할 때 채권자 혹은 낙찰자가 업체를 고를 수 있지만 대개는 집행관이 지정한 곳에 보관할 수밖에 없다. 사진은 한 컨테이너 물류보관업체 전경.
강제집행에 걸리는 시간은 사건에 따라 다르다. 통상적으로 점유자 혹은 채무자에게 계고한 뒤 2주 동안 이사나 변제할 시간을 주고, 이뤄지지 않은 경우 집행관실에 노무비용을 예납한 뒤 4주 정도 지나면 강제집행 일정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집행관이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석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계고 현장에 나가보면 집행관은 멀찍이 떨어져 있고 담당 과장들이 대놓고 ‘빨리 처리해줄 테니 신경 좀 써주라’는 말을 한다. 특히 50억 원 이상 큰 건들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요구한다. 집행관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수수료를 받지만 과장이나 계장은 출장비, 노무비 등 집행비 차익을 가져가는데 액수가 크지 않아 뒷돈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행관실 과장의 뒷돈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박씨는 이후 짜증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집행비는 크게 노무비, 운송 트럭비, 컨테이너 보관비로 나뉘는데 비용 산출 과정에서 과다하게 책정되는 일이 많았던 것. 집행관이 강제집행에 투입될 노무 인원을 60명으로 책정해 박씨는 해당 비용을 예납했다. 집행 당일 박씨가 “노무 인원이 몇 명이나 왔느냐”고 묻자 계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일이 끝난 뒤 모두 불러 세보니 39명이었다. 박씨는 즉각 예납한 노무비 가운데 사용되지 않은 노무비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집행관은 “압수한 유체동산이 모두 팔린 뒤 반환될 것”이라며 기다리라고 통보했다.
노무비 과다 책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체동산 운반에 필요한 5t 화물차와 컨테이너 보관비를 예납하기 전 책정 과정에서 집행관이 이를 과하게 잡았다. 보통 대당 11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박씨는 적정 수준으로 잡아주길 원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강제집행 당일 화물차 3대를 돌려보냈다. 박씨는 “집행관이 트럭을 회차했다는데 언제 그 트럭들이 왔다 갔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또 원칙적으로 회차했으면 예납비의 절반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마저도 간신히 이뤄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한 박씨는 낙찰자가 컨테이너 보관업체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다른 불이익이 발생할까 봐 집행관이 지정한 업체에 할 수 없이 유체동산을 맡겨야 했다.
참다못해 진정서 넣기도
버젓이 뒷돈을 요구하는 불합리한 관행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들도 있다. 강제집행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B법무법인은 석 달 전 D지방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집행관실 직원과 실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응하지 않는 경우 집행 날짜가 차일피일 미뤄졌기 때문이다.
B법무법인 관계자는 “집행관실 직원들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에둘러 ‘우리도 챙기는 게 있어야죠’라거나 ‘신경 좀 써달라’는 식으로 말한다. 진행하고 있는 건이 한둘이 아니어서 절대 응하지 말자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B법무법인에서 의뢰하는 집행 건들은 기일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는 “집행관은 접수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강제집행 날짜가 늦게 잡히는 등 늦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못한 의뢰인들이 ‘어쨌든 빨리 끝내야 하니 뒷돈을 주자’며 저자세로 나오기도 했다. 의뢰인을 설득해 절대 응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D지방법원 감사계에 진정서를 넣었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집행관들이 당초 두 달 정도 걸릴 거라고 말했던 집행 건이 보름 만에 처리됐다. 감사계에서 집행관실에 진정서에 쓰인 ‘뒷돈 요구’ 항의에 답변할 것을 지시하자 태도가 돌변한 것. 현재까지 막혔던 곳이 뚫린 듯 일처리가 원활하지만 B법무법인 관계자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집행관실 직원이 아닌 집행관실이 지정한 창고업체 관계자가 ‘돈 안 줬어요? 요즘 그걸 안 주고 집행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라며 부추긴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B법무법인 관계자는 “창고업체도 보관 기간을 오래 받기 위해 집행관의 눈치를 보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쪽에 뒷돈을 주라는 압력을 넣은 것 같다”며 뒷돈 요구 관행이 뿌리 뽑히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낙찰자와 채권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집행관실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무리한 집행비 설정 같은 관행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도 불이익이 발생할까 봐 눈치만 보고 있다. 이들과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불이익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집행관들은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전혀 사명감이 없어요. 솔직히 사명감은 바라지도 않아요. 접수된 순서대로 진행하고, 노무비용과 운반, 보관 등 집행비를 과다하게 책정하지만 말아줬으면 해요. 소송 끝에 어렵사리 승소해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집행관실과 실랑이하는 게 더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