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의 ‘반값 복비’ 조례안 통과 문제를 놓고 공인중개사들이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부동산중개업소 밀집지역.
현행 주택 중개보수체계는 2000년 마련됐는데 당시에는 ‘고가주택’이 매매가의 경우 6억 이상, 전세가의 경우 3억 이상으로 책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주택을 매매할 때 중개수수료는 6억 원 미만의 경우 0.4% 이하, 6억 원 이상의 경우 0.9% 이하에서 중개업자와 중개의뢰인이 협의해야 했다. 전세의 경우 중개수수료는 3억 원 미만의 경우 0.3% 이하, 3억 원 이상의 경우 0.8% 이하에서 협의해 거래를 진행해왔다(표2 참조).
현실에 맞지 않는 ‘고가주택’ 개념 정의 때문에 중개의뢰인들은 지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액의 중개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3월 초 박가애(34·가명) 씨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월드컵파크 2단지 83㎡ 아파트를 전세 3억2000만 원에 계약하면서 부동산 중개수수료로 전세가의 0.8%인 256만 원을 지불했다. 직전까지 거주했던 인근 빌라에 처음 입주할 당시에는 중개수수료가 전세가 2억5000만 원의 0.3%인 75만 원에 불과했다. 박씨는 “2년 사이 치솟은 전셋값 7000만 원도 모자라 중개수수료까지 181만 원을 더 지출한 것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 무시한 ‘고가주택’ 중개수수료율
인터넷 부동산 포털사이트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2000년 말 전국 매매가 6억 원 이상 9억 원 미만 아파트는 1만5114가구로, 전체 주택의 0.57%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해당 아파트는 31만1703가구로 전체 주택의 4.7%에 달한다. 그동안 5배가량 급증한 것.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을 낮출 것을 요구해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마련된 개편안을 각 시도에 보내 조례를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2월 13일 전국에서 최초로 강원도의회 본회의에서 개편안을 반영한 조례안이 통과돼 3월부터 변경된 구간에 해당하는 주택 거래 시 절반 수준의 중개수수료를 지불하게 됐다. 이어 3월 19일에는 경기도의회, 나흘 뒤에는 인천시의회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다른 시도와 달리 경기와 인천은 변경된 구간에 해당하는 주택이 비교적 많은 지역이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중개사협회)의 반발이 컸다.
이곳에서는 어떻게 합의점을 찾았을까. 윤정훈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팀 주무관은 “합의점은 찾지 못했다. 중개사협회는 당초 중개수수료를 반값 요율로 낮추되 ‘이하에서 협의하에 결정한다’는 부분을 삭제하고 요율을 고정해달라고 했다. 당초 도의회 상임위원회에서는 고정요율로 가려 했지만 시민단체들 반발도 심하고 여론도 악화돼 본회의에서는 자율적으로 합의하도록 수정됐다. 결국 중개사협회는 요구사항을 관철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도 중개사협회의 반발이 심하기는 하지만 본회의에서 조례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인천도 경기와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차준택 인천시의회 위원장은 “중개사협회의 반발이 컸다. 그들은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고정요율을 주장했는데 우리는 경기도에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처리하자는 쪽이었다. 공청회를 수차례 열어 합의점을 찾고자 했지만 민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국토교통부 권고를 따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인천은 매매가 6억 원 이상 9억 원 미만 주택의 비율이 전체의 0.75% 정도이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경기도의회에서 먼저 통과시켰기 때문에 현재 인천시 중개사협회 측의 반발은 심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시의회 조례안 통과 난항
문제는 매매가 6억 원 이상 9억 원 미만, 전세가 3억 원 이상 6억 원 미만 주택이 밀집한 서울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2000년 말 기준 서울시의 매매가 6억 원 이상 9억 원 미만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1만4982가구로 서울시 전체의 1.97%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서울시의 해당 아파트는 21만740가구로 서울시 전체의 16.3%이며 15년 사이 8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직까지 서울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아파트를 거래할 경우 매매가의 0.9%에 해당하는 중개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현재 서울시의회는 조례안 통과 문제를 놓고 심사숙고 중이다. 조정래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전문위원은 “3월 2일 안건을 심사했지만 중개사협회의 반발이 매우 커 보류한 바 있다. 3월 30일 공청회를 열어 협회 측 입장을 더 들어보고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라며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원 대다수의 의견은 조례안 통과 쪽으로 기울었다고. 그는 “중개수수료 기준이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게 결정하자는 것이 의원님들 생각이다.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지만 4월 7일부터 23일 사이 진행되는 서울시의회에서 조례안이 통과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경우 빠르면 5월부터 서울시에서도 기존 중개수수료의 반값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불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들의 반발은 계속되는 상황. 중개사협회 측은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의 정책 발표 직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궐기대회를 갖는 등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후 각 시도의회 공청회에서 조례안 통과 반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부득이하게 통과시켜야 할 경우 고정요율을 적용할 것 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3월 12일 중개사협회는 “중개 보수 한도규정이 개업공인중개사 중개 보수의 상한을 규제하고 이를 초과해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금지한 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 소정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돼 직업 수행의 자유 및 계약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또한 “다른 자격증 소지자와 달리 공인중개사 보수의 상한만 법령으로 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공인중개사를 다른 자격증 소지자에 비해 차별 취급하기 때문에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개사협회 측이 청구한 헌법소원에는 국민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