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멕시코 주 포트블리스의 32군 항공미사일사령부 11방공포여단에서 운용 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요격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미사일 8기가 탑재되는 이 발사대차량 6량이 사드 체계 1개 포대를 구성한다.
이 대목에서 되돌아보는 한 가지 궁금증, 왜 하필이면 지금 사드 논쟁이 불거진 것일까. 기실 이 무기체계는 1990년 개발에 착수된 후 지난 26년간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시험을 반복해왔다. 2009년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은 사드 미사일의 핵심 기능인 타격체(kill-vehicle) 개발이 실패(failure)했다며 당분간 개발예산을 배정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후 3년간 미국의 국방예산은 삭감됐다. 관련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미국 군수업체들에게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최근 본격화된 미국의 경기 회복과 함께 국방예산 증액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군수업체들은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엿보던 찰나였다. 2012년 재개된 사드 요격시험이 상당한 기술적 진보를 이뤘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이들은 마침내 2015년 새로운 사드 포대 2개분, 내년 추가로 2개 포대를 생산하기로 미 국방부와 계약에 성공한다. 한국에서 일었던 사드 논쟁은 바로 이러한 미국 측의 최근 내부 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특히 한반도 배치 논리를 주도적으로 이끈 당사자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미군 야전사령부 가운데 사드 수준의 주요 전략자산이 처음 배치되는 곳은 대개 주일미군이었다. 더욱이 사드는 본래 1000km 이상 날아가는 중거리미사일을 고고도에서 방어하는 무기체계다. 단거리 스커드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있는 한국보다 중거리 노동미사일에 노출돼 있는 일본에 배치하는 게 기술적으로는 더 타당하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유럽의 미군사령부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정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군 야전사령부가 사드 같은 전략자산을 배치하면 부대 위상은 급속도로 상승한다. 예컨대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주한미군사령부는 태평양사령부 예하 부대 중 핵심으로 우뚝 서게 되고, 사령관 계급을 4성으로 유지해야 하는 명분도 강화된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주한미군사령부는 주요 전력이 속속 빠져나가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심지어 2010년에는 미 국방부 정보분석관들이 이라크 전쟁에 차출되는 바람에 북한에 대한 표적정보 분석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국군 합참의장이 미국에 대책을 촉구하는 서한을 두 번이나 보냈지만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에 자원을 배분할 여력이 없었다.
2014년 4월 2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으로부터 연합방위태세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드 배치 부지조사 등 주한미군사령부가 진행해온 관련 행보는 대부분 본국 정부를 향한 ‘플레이’에 가까웠다. ‘이번에 새로 구매하는 전략자산을 우리에게도 달라’는 요구였던 셈. 한반도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주한미군과 “검토한 적도, 거론한 적도 없다”는 미국 국무부 등 관계부처의 태도가 사뭇 달랐던 배경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행보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곳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이었다. 앞서 말했듯 사드는 아직 미성숙한 무기체계다. 개발용 실험을 제외하고는 실전에서는 물론, 훈련 상황에서도 그 성능을 뚜렷하게 입증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개발단계의 무기체계를 가장 앞장서서 도입해온 대표적인 국가다. 미국의 다른 우방국들이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체계가 한국에서는 ‘숭배’에 가까운 도입론의 대상이 되곤 한다.
평양은 오히려 반길 수도
사드 논쟁의 타이밍이 절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무기체계의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됐지만, 미국 자체의 수요만으로는 대량생산을 확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일 한국이 이를 자체적으로 도입하거나 주한미군 배치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라도 부담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 측 반발이 신경 쓰였을 워싱턴도 재정 문제가 결부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한국이 사드라는 신생아를 살리는 인큐베이터 노릇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최근 10여 년 사이 미국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패턴이기도 하다. 미군과 군수업체들이 재정 문제에 휩싸일 때 한국에서는 이들 ‘미성숙한’ 무기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열풍이 불곤 한다. F-35가 그랬고, 공중급유기가 그랬으며, 지금은 사드가 그렇다. 자세한 성능 검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국이 개발한 신무기’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상당한 경제력과 북한이라는 위협 요인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한국의 이러한 행보는 계속되는 이윤율 저하로 대공황 직전에 몰린 미국 군산복합체로서는 구원의 밧줄이나 다름없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최근 논쟁에는 이렇듯 미 군사당국 내부의 조직논리와 군수업체의 경제논리가 함께 숨어 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는 게 평양으로서도 그리 나쁜 상황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무력화되지 않겠느냐고? 노동미사일에 대형탄두를 탑재해 한국에 발사하는 시나리오를 빼고도 평양에는 수많은 공격 시나리오가 있다. 탄두 소형화에 성공해 단거리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에 핵을 장착할 수 있게 되면 사드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미국이 북한 위협을 근거로 MD 체제를 강화하거나 한반도 내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해 대북 지원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 · 미 · 일 남방 삼각 대 북 · 중 · 러 북방 삼각 간 갈등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올해 초 펴낸 2015 안보전망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북한으로서는 중국 측 반발을 활용해 북 · 중 동맹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가 열리는 셈. 거꾸로 말하자면 서울의 사드 논쟁을 가장 먼저 반긴 곳은 평양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모두가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바쁜 이 적대적 공생의 게임 속에서, 혹 한국의 납세자들만 유일한 패자로 남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