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준비자나 신생 소규모 기업에 사무공간을 임대해주는 ‘위워크(We Work)’의 미국 뉴욕 맨해튼 지점 내부.
미국의 ‘단독 질주’는 오로지 셰일가스 혁명이 촉발한 국제유가 폭락 덕분일까. 미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경제가 살아날 기회가 온다고 누구(어느 나라)나 그걸 잡는 건 아니지 않느냐. 미국 산업의 특징이자 강점인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 DNA’가 물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창조경제든, 혁신 비즈니스든 최종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주고 구매해야 빛이 날 수 있다. 그러려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 욕구(needs)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든 팔 수 있고, 혁신 비즈니스가 된다. 세계경제·금융 중심지이자 최근엔 창업과 정보기술(IT) 산업 붐도 이끌고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요즘 각광받는 대표적인 혁신 비즈니스를 키워드별로 정리해 소개한다.
1. 시너지 공동체(synergy community)를 판다
창업 준비자나 신생 소규모 기업에 사무공간을 임대해주는 ‘위워크(We Work)’는 뉴욕 맨해튼에만 13곳이나 성업 중이고, 계속 확장되고 있다. 보스턴, 워싱턴DC,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오스틴, 마이애미 등 미국 전역뿐 아니라 이스라엘, 네덜란드, 영국에도 진출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1월 하순 방문한 맨해튼 배릭 스트리트의 위워크 1층에는 호텔 로비만큼 넓은 공간에 소파, 탁자, 게임기 등이 배치돼 있고 20~40대 남녀가 2~6명씩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로비엔 ‘컬럼비아대 창업 연구소’도 입주해 있다. 연구소 안에선 40~50명이 대형탁자 3개에 나눠 앉아 컴퓨터 작업 중이었다.
1인 기업의 경우 책상 1개 대여 값(약 400달러)만 내면 모든 편의시설을 자기 집처럼 이용할 수 있는데, 그 수준이 글로벌기업 구글이나 페이스북 부럽지 않다. 소형 영화관, 바 형식의 간이식당, 무료 맥주 코너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위워크 빌딩에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있어 입주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 것은 물론, 유명 기업인 초청 강연이나 창업 및 업종별 최신 정보 서비스도 제공한다. 주 단위로 비즈니스 교육이나 입주자 간 교류와 네트워킹을 위한 활동 일정이 사전 공지되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행사를 찾아 참석하면 된다.
한 아시아계 입주자는 “집세 비싼 뉴욕에서 사무공간 마련이나 유지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으면서 관련 업종 간 교류도 잘되고 창업 연구소에서 좋은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어 무척 좋다”며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번 입주하면 그 매력 때문에 나갈 생각을 못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문화예술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업 중인 회원제 멤버십 클럽 ‘소호 하우스’.
위워크의 시너지는 뉴욕을 실리콘밸리 버금가는 창업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태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미지역본부장은 “그간 뉴욕 시는 예술과 패션, 금융뿐 아니라 IT 기업 육성 중심지라는 인식을 심고자 다양한 노력을 해왔는데, 위워크가 그런 흐름과 딱 맞아떨어지면서 ‘신생 IT 첨단 창업자’들을 뉴욕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2. 배타적 접근성(exclusive access)을 판다
뉴욕 맨해튼에서 최근 다양한 멤버십 클럽 비즈니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동종 업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킹’과 ‘배타적 접근성’을 동시에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맨해튼 남쪽 9번가에 있는 ‘소호 하우스’ 클럽은 멤버십 클럽 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곳이다. 1월 초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간판도 없어서 건물을 지나쳤다가 번지수를 보고 다시 찾아야 했다. 1층 로비는 마치 오피스텔 같았다. ‘여기 어디에 식당이 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식당에 도착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모델 같은 날씬한 20대 남녀, 딱 봐도 패션디자이너 같은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이 식당과 바로 옆 라운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직원에게 ‘첫 방문’이라고 하자 “이곳은 프라이버시를 각별히 중시하는 클럽이다. 라운지와 식당에선 전화통화를 할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고 당부했다. 패션, 광고, 영화 등 문화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는 이 클럽은 스스로를 ‘창조적 영혼(Creative Soul)들의 모임’이라고 규정했다. 입회 심사에 3개월~1년이 걸리고 연간 멤버십 유지비만 평균 3000달러(약 324만 원)가 넘지만, 몇 번씩 탈락하는 지원자가 적잖다. 그만큼 인기다.
영화 조감독 크리스틴 본넬은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멤버십 심사를 통과했고 그만큼 쿨(cool)한 사람들 그룹에 들어갔다는 의미라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광고디자이너 마크 실버도 “일반인과 관광객이 없어 무척 좋다. 중요한 비즈니스 고객과 긴밀한 대화를 나눌 때 이 클럽 식당을 많이 이용하는데, 상대방도 ‘당신 덕에 특별한 곳에 오게 돼 고맙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클럽 음식 맛은 특별하지 않았고, 가격 역시 비싸지 않았다. 소호 하우스 관계자는 “뉴욕 패션피플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나 음료의 변화는 늘 주시한다. 이곳은 그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멤버십 클럽들은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중심으로 회원을 선발했다. 그러나 최근 맨해튼에는 소호 하우스처럼 특정 업종이나 직업군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회원제 클럽이 30곳 이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맞춤형 편리함(Customized Convenience)’을 판다
미국에서 주 7일 영업으로 선풍적 인기를 얻은 ‘TD뱅크’.
실제로 TD뱅크는 ‘가장 오래 영업하는 은행, 그래서 가장 고객 편의적인 은행’을 고유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한다. ‘다른 은행이 문 닫을 때 우리는 영업을 계속해 고객의 은행 업무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자’는 게 TD뱅크의 경영 철학 중 하나다. 각 지점에는 ‘주 7일 영업(Open 7 Days)’이라는 큰 녹색 간판이 상징처럼 걸려 있다. TD뱅크는 독립기념일, 성탄절 등 1년 365일 중 딱 7일만 문을 닫는다. 이 7일에는 ‘연중무휴’를 표방하는 대형마트조차 문을 닫는다. 연간 영업일이 358일인 셈이다.
하루 영업시간도 다른 은행보다 훨씬 길다. 보통 월~금요일 평일엔 오전 7시 반~오후 7시, 토요일엔 오전 7시 반~오후 4시, 일요일 낮엔 4시간 정도(보통 오전 11시~오후 3시) 문을 연다. 다른 미국 은행들의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 일요일 휴점’이 일반적이다. 2009년쯤부터 본격적인 영업 확장을 시작한 이 은행은 2014년 말 기준으로 총자산 2430억 달러(약 262조 원), 지점 수 1300여 개, 직원 수 2만6000여 명으로 ‘미국 내 톱 10 은행’으로 도약했다.
TD은행이 일요일에도 가게 문을 여는 자영업자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면, 심플(Simple)은행은 은행 갈 시간이 별로 없는 20, 30대 화이트칼라 직장인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심플은행은 오프라인 지점이 아예 없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은행 창구 구실을 모두 담당한다. 나아가 ‘고객의 맞춤형 가계부’ 기능도 한다. 이 은행 앱의 ‘세이브 투 스펜드(Save-to-Spend)’ 기능은 ‘나에게 총 얼마의 돈이 있는데, 그동안 어느 곳에 얼마를 썼고, 앞으로도 써야 할(납부해야) 돈이 얼마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 내가 마음 편히 써도 되는 금액의 한도’를 계산해준다.
뉴요커인 커틀러 브라운은 “심플은행의 광팬이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심플은행 앱 덕에 경제생활의 체계가 잡혔다”고 말했다. 지점 하나 없는 심플은행은 출범 3년 만인 지난해 고객 수가 12만 명을 넘었고 금융거래 규모도 20억 달러에 육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