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8월 9일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18세 흑인 소년 마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총을 갖고 있지 않았고 전과 기록도 없는 소년에게 경찰이 6발의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이 사건은 흑인 사회를 들쑤셔놓았다.
그러나 11월 24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백인 경찰의 행동은 정당방위였고 그를 재판에 회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평결을 내렸다. 분노한 시위대는 퍼거슨 시를 장악하고 약탈, 방화, 무력시위로 응수했다. 이른바 ‘퍼거슨 소요 사태’라 부르는 일련의 사건이 시작된 경위다. 흑인 사회의 분노는 미국 전역으로 번져 170개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로써 미국의 인종갈등 문제가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퍼거슨 시 사건 대배심 평결이 나기 직전, 뉴욕에서는 장난감총을 갖고 있던 12세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사태 심각성을 인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책전담반(TF)을 구성하고, 경찰과 흑인 지역 주민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인종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의회에 2억63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신청하면서, 그중 7500만 달러는 몸에 장착하는 카메라를 각 도시 경찰에게 지급하는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백인 경찰과 흑인 사이에 인종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야기되는 정당방위 여부에 대한 분쟁이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카메라를 장착한 경찰이 사건 당시 상황을 녹화하면, 이를 통해 사건 전모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인 것이다. 이 영상을 증거로 삼아 흑백 인종 간 마찰을 잠재우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표다. 또 오바마 정부는 경찰의 군대화에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미군 잉여장비로 중무장한 각 도시 경찰은 경찰이 아닌 군부대 같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18세기 말 노예제 도입부터 시작
일반적으로 백인 지역 경찰들은 지역 주민을 위해 ‘보호하고 봉사한다(Protect and Serve)’는 경찰 본연의 자세를 유지한다. 반면 흑인과 소수계 지역을 순찰하는 백인 경찰들은 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게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식이다. 또 군대용 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의 과잉대응으로 총격 사태가 자주 발생해 경찰과 주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갈등은 매우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18세기 말 노예제 도입을 흑백차별의 근원으로 본다. 맨 처음 백인과 흑인 노동자는 계약 노동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고 인종에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흑인과 백인 노동자가 연합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자 농장주들은 흑백 분리 정책을 실시한다. 이로 인해 백인은 계약 기간 5년이 지나면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된 반면, 흑인은 노예화됐다. 이 과정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심화되면서 백인 우월주의가 탄생하게 됐다.
19세기에는 흑인을 탄압하고 목매달아 죽이는 등 린치를 일삼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가 흑인 사회를 공포에 빠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은 수탈 대상이 됐고, 20세기 중반까지 흑백 분리 정책을 고수한 미국 남부 도시의 모든 시설에서 흑인은 백인과 철저히 분리돼 차별받았다.
이 과정에서 1955년 ‘에밋 틸 사건’이 발생했다.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이 미시시피 주에서 백인들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틸은 당시 미시시피 주 머니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삼촌을 방문한 상태였다. 남부의 흑백 분리 정책을 잘 몰랐던 그는 물건을 사려고 소매점에 들어갔다가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는 당시 남부에선 금기에 해당하는 행동이었다. 분노한 백인들은 틸을 밤에 불러내 끔찍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강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 2명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무죄로 풀려난 백인들은 나중에 한 잡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틸을 죽였다고 무용담처럼 자랑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고, 민권운동이 남부 전역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소수계에게 불리한 미국 배심원제의 문제점을 전면에 드러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같은 백인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1994년 발생한 ‘O. J. 심슨 사건’은 유명 미식 축구선수인 O. J. 심슨이 백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 재판에서는 흑인이 과반수이던 배심원단이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려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다. 미국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갈등은 화약고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인종갈등이 발생하는가. 그 원인은 첫째, 점점 벌어지는 흑백 인종 간 경제적 불평등이다. 백인들은 점점 부를 축적하는 데 반해 흑인들은 빈곤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과 불평등은 미국 사회 인종갈등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둘째, 미국 대도시 흑인가는 게토화돼 빈곤, 범죄, 마약, 그리고 높은 실업률이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흑인 지역 중고교 중에는 중퇴율이 60~70%에 이르는 곳도 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흑인 청소년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들 상당수가 범죄 유혹에 빠져든다. 흑인 청년 가운데 대학에 다니는 이보다 수감자가 더 많다는 통계는 흑인 사회의 비관적인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근본적 대수술할 수 있나
셋째,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이다. 흑인과 소수계 주민은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해왔다. 그럼에도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다. 백인 경찰은 총기 관련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번번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총을 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하지만 백인 경찰이 재판 과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퍼거슨 시는 1917년 이스트세인트루이스 폭동이 발생한 지역에서 가까운 도시다. 이 지역 주민의 3분의 2는 흑인이고 나머지 3분의 1이 백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밀집지역의 경찰관 53명 중 48명이 백인이고, 흑인은 단 3명뿐이다.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제도를 개선해 흑인에게 취업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 경찰의 훈련 방식을 개선하고 지역 주민과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사법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에서 인종 문제가 해결됐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단지 수면에 가라앉은 것에 불과했다. 불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없다. 흑인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고 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국가의 구조적 변화 없이는 제2, 3의 퍼거슨 사태 발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1월 24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백인 경찰의 행동은 정당방위였고 그를 재판에 회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평결을 내렸다. 분노한 시위대는 퍼거슨 시를 장악하고 약탈, 방화, 무력시위로 응수했다. 이른바 ‘퍼거슨 소요 사태’라 부르는 일련의 사건이 시작된 경위다. 흑인 사회의 분노는 미국 전역으로 번져 170개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로써 미국의 인종갈등 문제가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퍼거슨 시 사건 대배심 평결이 나기 직전, 뉴욕에서는 장난감총을 갖고 있던 12세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사태 심각성을 인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책전담반(TF)을 구성하고, 경찰과 흑인 지역 주민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인종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의회에 2억63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신청하면서, 그중 7500만 달러는 몸에 장착하는 카메라를 각 도시 경찰에게 지급하는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백인 경찰과 흑인 사이에 인종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야기되는 정당방위 여부에 대한 분쟁이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카메라를 장착한 경찰이 사건 당시 상황을 녹화하면, 이를 통해 사건 전모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인 것이다. 이 영상을 증거로 삼아 흑백 인종 간 마찰을 잠재우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표다. 또 오바마 정부는 경찰의 군대화에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미군 잉여장비로 중무장한 각 도시 경찰은 경찰이 아닌 군부대 같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18세기 말 노예제 도입부터 시작
일반적으로 백인 지역 경찰들은 지역 주민을 위해 ‘보호하고 봉사한다(Protect and Serve)’는 경찰 본연의 자세를 유지한다. 반면 흑인과 소수계 지역을 순찰하는 백인 경찰들은 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게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식이다. 또 군대용 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의 과잉대응으로 총격 사태가 자주 발생해 경찰과 주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갈등은 매우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18세기 말 노예제 도입을 흑백차별의 근원으로 본다. 맨 처음 백인과 흑인 노동자는 계약 노동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고 인종에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흑인과 백인 노동자가 연합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자 농장주들은 흑백 분리 정책을 실시한다. 이로 인해 백인은 계약 기간 5년이 지나면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된 반면, 흑인은 노예화됐다. 이 과정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심화되면서 백인 우월주의가 탄생하게 됐다.
19세기에는 흑인을 탄압하고 목매달아 죽이는 등 린치를 일삼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가 흑인 사회를 공포에 빠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은 수탈 대상이 됐고, 20세기 중반까지 흑백 분리 정책을 고수한 미국 남부 도시의 모든 시설에서 흑인은 백인과 철저히 분리돼 차별받았다.
이 과정에서 1955년 ‘에밋 틸 사건’이 발생했다.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이 미시시피 주에서 백인들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틸은 당시 미시시피 주 머니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삼촌을 방문한 상태였다. 남부의 흑백 분리 정책을 잘 몰랐던 그는 물건을 사려고 소매점에 들어갔다가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는 당시 남부에선 금기에 해당하는 행동이었다. 분노한 백인들은 틸을 밤에 불러내 끔찍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강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 2명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무죄로 풀려난 백인들은 나중에 한 잡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틸을 죽였다고 무용담처럼 자랑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고, 민권운동이 남부 전역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소수계에게 불리한 미국 배심원제의 문제점을 전면에 드러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같은 백인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1994년 발생한 ‘O. J. 심슨 사건’은 유명 미식 축구선수인 O. J. 심슨이 백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 재판에서는 흑인이 과반수이던 배심원단이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려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다. 미국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갈등은 화약고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인종갈등이 발생하는가. 그 원인은 첫째, 점점 벌어지는 흑백 인종 간 경제적 불평등이다. 백인들은 점점 부를 축적하는 데 반해 흑인들은 빈곤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과 불평등은 미국 사회 인종갈등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둘째, 미국 대도시 흑인가는 게토화돼 빈곤, 범죄, 마약, 그리고 높은 실업률이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흑인 지역 중고교 중에는 중퇴율이 60~70%에 이르는 곳도 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흑인 청소년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들 상당수가 범죄 유혹에 빠져든다. 흑인 청년 가운데 대학에 다니는 이보다 수감자가 더 많다는 통계는 흑인 사회의 비관적인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근본적 대수술할 수 있나
셋째,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이다. 흑인과 소수계 주민은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해왔다. 그럼에도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다. 백인 경찰은 총기 관련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번번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총을 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하지만 백인 경찰이 재판 과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퍼거슨 시는 1917년 이스트세인트루이스 폭동이 발생한 지역에서 가까운 도시다. 이 지역 주민의 3분의 2는 흑인이고 나머지 3분의 1이 백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밀집지역의 경찰관 53명 중 48명이 백인이고, 흑인은 단 3명뿐이다.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제도를 개선해 흑인에게 취업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 경찰의 훈련 방식을 개선하고 지역 주민과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사법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에서 인종 문제가 해결됐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단지 수면에 가라앉은 것에 불과했다. 불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없다. 흑인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고 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국가의 구조적 변화 없이는 제2, 3의 퍼거슨 사태 발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