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치른 대만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며 수도 타이베이(臺北) 시장에 당선한 커원저(柯文哲·55)는 외과의사 출신이다. 타이베이 시장 후보를 내지 않은 제1야당 민진당의 지원을 받은 커원저는 57.2% 득표율로 여당인 국민당의 롄성원(連勝文·44) 후보(40.8%)를 꺾었다. 롄성원 후보는 롄잔(連戰) 국민당 명예주석의 아들로 국민당의 차세대 주자 중 한 명이다.
대만 정계에서 타이베이 시장은 총통으로 가는 등용문으로 통한다.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과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모두 타이베이 시장 출신이기 때문. 커원저 역시 이번 선거 승리로 유명 외과의사에서 단숨에 차기 총통 후보로 급부상했다.
1959년 대만 신주(新竹)현(현 신주시)에서 출생한 그는 현재 대만대 의대 창상의학부 교수다. 외상, 중증의학, 응급처치, 장기이식, 인공장기 등이 전문 분야. 대만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인공장기 분야를 연구했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장기복역 중인 천수이볜 전 총통을 치료한 적도 있다.
커원저의 부인 천페이치(陳佩琪) 역시 산부인과 의사다. 부부가 모두 의대를 졸업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공통점이 많아 ‘대만의 안철수’라 부를 만하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대신 독자적인 행보를 펼쳐 20, 30대로부터 몰표를 받은 점 역시 정치 입문 초기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안 의원과 비슷한 대목이다.
독자행보 등 ‘대만의 안철수’
커원저의 정치 성향은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민진당에 가깝다. 당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경제 협력 기초인 ‘92컨센서스(九二共識)’에 대해 “그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중국을 발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1992년 체결된 92컨센서스는 양측 모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양측이 각각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국호를 사용한다(一中各表)는 게 핵심이다.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 3월 커원저는 국민당이 연내 비준을 공약한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해 대학생들이 국회를 점거하며 반대시위를 벌이자 이를 지원하고 나서기도 했다.
커원저가 이 같은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을 그의 가족사와 연관 짓는 시각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47년 국민당이 대만을 장악하려고 대만 본토인 3만여 명을 학살한 2·28사건 때 사망했다.
커원저는 민진당 등 야권의 지원을 받아 당선했지만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발언을 해왔다.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는 선거 다음 날인 11월 30일 대만 ‘롄허(聯合)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진당은 옛 친구, 국민당은 새 친구”라면서 “민진당과는 종속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시장 취임 전 민진당사로 인사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2016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 넓게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중 정책을 펴온 국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당은 전국 22개 지역 시장선거(직할시 6개, 현급시 16개)에서 기존 15개 가운데 6개 지역만 건졌다. 민진당이 13곳, 무소속이 3곳에서 승리했다.
대만 정계에서 타이베이 시장은 총통으로 가는 등용문으로 통한다.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과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모두 타이베이 시장 출신이기 때문. 커원저 역시 이번 선거 승리로 유명 외과의사에서 단숨에 차기 총통 후보로 급부상했다.
1959년 대만 신주(新竹)현(현 신주시)에서 출생한 그는 현재 대만대 의대 창상의학부 교수다. 외상, 중증의학, 응급처치, 장기이식, 인공장기 등이 전문 분야. 대만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인공장기 분야를 연구했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장기복역 중인 천수이볜 전 총통을 치료한 적도 있다.
커원저의 부인 천페이치(陳佩琪) 역시 산부인과 의사다. 부부가 모두 의대를 졸업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공통점이 많아 ‘대만의 안철수’라 부를 만하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대신 독자적인 행보를 펼쳐 20, 30대로부터 몰표를 받은 점 역시 정치 입문 초기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안 의원과 비슷한 대목이다.
독자행보 등 ‘대만의 안철수’
커원저의 정치 성향은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민진당에 가깝다. 당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경제 협력 기초인 ‘92컨센서스(九二共識)’에 대해 “그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중국을 발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1992년 체결된 92컨센서스는 양측 모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양측이 각각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국호를 사용한다(一中各表)는 게 핵심이다.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 3월 커원저는 국민당이 연내 비준을 공약한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해 대학생들이 국회를 점거하며 반대시위를 벌이자 이를 지원하고 나서기도 했다.
커원저가 이 같은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을 그의 가족사와 연관 짓는 시각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47년 국민당이 대만을 장악하려고 대만 본토인 3만여 명을 학살한 2·28사건 때 사망했다.
커원저는 민진당 등 야권의 지원을 받아 당선했지만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발언을 해왔다.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는 선거 다음 날인 11월 30일 대만 ‘롄허(聯合)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진당은 옛 친구, 국민당은 새 친구”라면서 “민진당과는 종속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시장 취임 전 민진당사로 인사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2016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 넓게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중 정책을 펴온 국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당은 전국 22개 지역 시장선거(직할시 6개, 현급시 16개)에서 기존 15개 가운데 6개 지역만 건졌다. 민진당이 13곳, 무소속이 3곳에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