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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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거래금지법 서민 목만 조른다?

‘절세’ 목적 가족 명의 예·적금도 불법…은행 창구는 심각성 인지 못 한 채 어정쩡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4-11-14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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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명거래금지법 서민 목만 조른다?

    생계형저축 상담에 나선 젊은이들. 12월부터 차명 생계형저축은 불법이다.

    “21세 아들 명의로 세금우대저축에, 70세 어머니 명의로 생계형저축에 가입해 세금을 줄이려 합니다. 12월부터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된다는데, 이것이 가능할까요?”

    5월 불법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개정안(차명거래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11월 29일 본격 시행됨에 따라 각 금융권 창구는 이런 질문을 하는 고객들로 비상이 걸렸다. 거액 자산가나 일부 권력층의 조세 회피 및 비자금 조성 등을 막겠다는 취지로 개정한 법률 때문에 단 몇 푼이라도 세금을 아끼려는 서민들이 법 개정의 유탄을 맞게 됐다.

    지금까진 가족 명의 저축이 당연

    1993년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발동된 금융실명제법은 원칙적으로 차명거래를 인정하지 않지만 계좌 실소유자와 명의 대여자 사이에 합의만 있으면 처벌이 불가능했다. 차명거래가 발각됐다 해도 금융실명제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었던 것이다. 11월 29일 시행에 들어간 금융실명제법(차명거래금지법) 개정안에는 실소유자와 명의 대여자 사이의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명의자 재산(계좌 포함)으로 추정해 실소유자는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실소유자가 재산을 회수하려면 반드시 재판을 거쳐 자기 재산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간 차명거래는 소득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는 자산가나 권력가의 애용품이었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 원 이상이면 최고 41.8%에 달하는 누진세를 내야 하지만 이를 다른 사람 이름으로 분산하면, 일반과세(이자·배당소득세 15.4%)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정권만 바뀌면 각종 게이트에 등장하는 비자금 조성에도 빠짐없이 차명계좌가 이용돼왔다.



    차명거래금지법이 탄생한 이유도 이런 탈·불법을 막기 위해서다. 법조문에 명문화한 법 개정 이유도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는 범죄수익 은닉, 비자금 조성, 조세 포탈, 자금 세탁, 횡령 등 탈·불법 행위나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차명거래금지법에는 그동안 조문에서 빠져 있던 ‘불법행위 목적의 차명거래 금지’가 명문화됐고, ‘불법행위 목적의 차명거래’에 대해서도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 행위, 공중 협박자금 조달 행위 및 강제집행의 면탈, 그 밖에 탈법 행위를 목적으로 한 타인 실명에 의한 금융거래’(3조 3항, 4항)라고 못 박아 놓았다.

    특히 불법차명거래에 대해 실소유자와 명의자,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처벌이 신설되거나 강화됐고, 이를 중개한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불법차명거래를 하면 실소유자, 명의자, 중개에 가담한 금융회사 임직원 각각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이 가해지고, 이와 별도로 중개에 깊이 개입한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해서는 3000만 원(예전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정말 몇 푼 안 되지만 15.4%의 이자소득세를 줄이거나 내지 않으려고 가족 명의로 세금우대저축이나 생계형저축에 가입한 서민 가정이다. 차명거래금지법 시행 이전 웬만한 서민 가정의 경우 세대주는 자신과 배우자, 만 20세 이상의 자식 명의로 세금우대저축을 분산 가입해왔던 게 현실이다. 금융회사는 이런 차명 예·적금을 권유하고 실적을 쌓기 위해 홍보에도 열심이었다. 만 20세 이상 일반인이 1000만 원 한도에서 예·적금을 신규로 가입하면(1년 만기) 일반과세 적용 이자소득세보다 5.9%p가 싼 9.5%의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저축 여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가족 명의의 세금우대저축에 가입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세대 거주자 가운데 만 60세 이상의 직계존속이 있는 경우엔 아예 그 명의로 생계형저축을 드는 게 관행이었다. 생계형저축은 만 60세 이상이나 장애인, 독립유공자 등이 3000만 원 한도 내에서 예·적금에 가입하면 세금과 만기 한도가 없는 반면, 입출금은 자유로워 많은 이가 부모 명의로 생계형저축에 가입해왔다. 심지어 다른 집 부모를 자신의 주민등록상 세대원으로 옮겨놓고 그 명의로 생계형저축을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된 후 가족 명의로 가입한 세금우대저축과 생계형저축은 불법일까, 합법일까. 법 시행 전 언론은 대부분은 ‘선의에 의해 이뤄진 가족 간 차명거래는 예외’ 또는 ‘절세 목적의 가족 간 차명거래는 예외’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금융위) 측 태도는 단호하다. 금융위 은행과 담당자의 말이다.

    “신설된 법 제3조 3항에 규정된 불법행위 목적의 차명거래라면 모두 불법이다. 탈루한 세금이 적더라도 조세 회피이고 세금 탈루 목적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족 명의의 차명 세금우대저축과 생계형저축도 법에서 금지한 차명거래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가족 간이라도 세금을 줄이거나 내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이름을 빌려 예·적금에 가입한 경우는 불법으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줄이려고 자신의 예·적금을 가족 명의로 분산하는 경우도 당연히 불법으로 처벌받게 된다.

    내년부터 세금우대저축 사라져

    차명거래금지법 서민 목만 조른다?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일명 차명거래금지법은 일부 자산가나 권력가의 탈·불법 목적의 차명거래를 막고자 제정됐지만 서민의 절세형 차명거래까지 차단하는 결과를 빚게 됐다.

    하지만 각 은행 창구는 아직까지 세금우대저축이나 생계형저축 같은 ‘절세’ 또는 ‘선의’의 가족 간 차명거래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고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금융위와 전국은행연합회 측으로부터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내려온 게 없다”면서 “어쨌든 고객에게 가족 간 차명거래를 권유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위가 법에 불법내용이 모두 규정돼 있는 만큼 별다른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무슨 지침 같은 걸 만들 수 있겠느냐”며 “창구에서 혼선을 피하고자 고객이 많이 해오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변을 Q·A 형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은행연합회 또 다른 관계자는 가족 간 불법차명거래 단속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면서 “실질적으로 가족 간 차명거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가족 간 차명거래가 들통 나는 경우는 다른 형사사건으로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드러나는 경우 또는 명의를 빌려준 가족 구성원이 자신이 실소유자라며 소송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게 대부분이다. 은행 창구에서는 명의를 빌려준 당사자가 직접 오지 않아도 위임장만 써오면 예·적금 계좌를 만드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절세를 위한 가족 간 차명거래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부터는 세금우대저축이 사라지고 생계형저축이 비과세 종합저축으로 확대될 예정이라 각 은행 창구에서의 혼란은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12월 한 달 동안 가족 명의의 차명 세금우대저축 가입이 폭증할 것”이라면서 “내년부터 시작되는 비과세 종합저축은 만기가 따로 없고 예·적금 한도도 5000만 원까지 확대돼 직계존속의 명의를 빌린 차명 예·적금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증여세 감면 범위(10년 내 성인은 5000만 원, 미성년자 2000만 원)에서 세금 회피 목적이 아닌 순수 증여 목적의 예·적금은 배우자나 직계 자녀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만드는 게 가능하고, 예금자보호금액(5000만 원) 한도 내에서 가족 명의로 예·적금을 분산하는 경우는 세금에 변화가 없는 한 차명거래가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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