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다룬 작품은 많다. 소년기를 다룬 작품도 많다. 우리는 그런 서사를 성장서사라 부른다. 대개 어떤 소년, 소녀가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다 거대한 악을 만난다. 그로 인해 세계의 어두운 뒷면을 목격하고 순진했던 시절의 환상과 결별한다. 그래서 성장서사를 환멸의 서사라 부르기도 한다.
어두운 세계를 발견하는 데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사랑, 우정, 진학 등 성인이 되기 전 처음 경험하는 격렬한 감정적 동요가 소재가 된다. 첫사랑의 실패를 다룬 ‘말죽거리 잔혹사’, 색다른 우정을 나누는 ‘머드’, 학교를 거절하고 세상을 얻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런 이야기에 속할 것이다. 성장은 그렇게 인생의 한순간을 통해 장면화된다.
영화 ‘보이후드’는 순간의 연속을 통해 성장을 재구성한다.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되는 시간 흐름을 담아낸 것이다. 12년의 세월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 6세 아역 배우가 18세가 될 때까지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간의 마술이라면 ‘보이후드’는 이것을 역설적으로 실험한 셈이다.
실험은 성공적이다. ‘보이후드’는 메이슨이란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그의 주변 일상다반사를 기록한다. 특별한 일은 없다. 다만 메이슨 엄마가 두 번 결혼했다 이혼했고, 메이슨이 친아버지를 격주에 한 번씩 만나 주말을 즐기는 게 전부다. 어떤 점에서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 메이슨과 실제 배우 엘라 콜트레인이 함께 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콜트레인의 삶이 아니라 허구화된 메이슨의 삶이다. 콜트레인의 물리적 성장과 메이슨의 서사적 성장이 묘하게 겹치고 빗겨나가며 이 간극이 감동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실제와 허구의 겹침과 어긋남 속에서 허구적 진실과 기록적 가치가 교감하고,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되는 평범한 이야기는 드라마로 재구성된다.
여느 성장 영화처럼 열정적인 사랑이나 가슴 아픈 이별은 없지만, 소소한 삶의 질곡이 곧 이야기가 된다. 익숙했던 고향, 정든 집을 떠나는 장면이 먹먹한 이별이 되고, 그때 자전거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네 형은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평범한 하루, 일상다반사가 다 소중한 드라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메이슨이 그리는 삶의 궤도는 우리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극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접근을 통해 우리 삶이 전부 영화이자 드라마라는 소박한 진실을 보여준다. 세상은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상을 통해 구성되고 영위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 점에서 12년 동안 촬영한 감독과 배우들이 무척 놀랍게 여겨진다. 이미 ‘비포’ 시리즈를 통해 18년에 이르는 시간의 마술을 선보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12년간 같은 배우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 단편영화처럼 이 작품을 촬영했다고 한다.
12년의 시간을 압축한 2시간 30분 안에서 배우 에단 호크와 퍼트리샤 아켓은 메이슨의 아버지, 어머니로 자연스럽게 늙고 변해간다. 이 변화 가운데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우리는 시간의 마술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여학생이 말한다. “순간을 잡으라고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우리가 순간을 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잡는 게 아닐까”라고. 맞는 말이다. 순간이 우리를 사로잡으니,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삶은 그 순간순간의 연속이니까.
어두운 세계를 발견하는 데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사랑, 우정, 진학 등 성인이 되기 전 처음 경험하는 격렬한 감정적 동요가 소재가 된다. 첫사랑의 실패를 다룬 ‘말죽거리 잔혹사’, 색다른 우정을 나누는 ‘머드’, 학교를 거절하고 세상을 얻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런 이야기에 속할 것이다. 성장은 그렇게 인생의 한순간을 통해 장면화된다.
영화 ‘보이후드’는 순간의 연속을 통해 성장을 재구성한다.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되는 시간 흐름을 담아낸 것이다. 12년의 세월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 6세 아역 배우가 18세가 될 때까지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간의 마술이라면 ‘보이후드’는 이것을 역설적으로 실험한 셈이다.
실험은 성공적이다. ‘보이후드’는 메이슨이란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그의 주변 일상다반사를 기록한다. 특별한 일은 없다. 다만 메이슨 엄마가 두 번 결혼했다 이혼했고, 메이슨이 친아버지를 격주에 한 번씩 만나 주말을 즐기는 게 전부다. 어떤 점에서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 메이슨과 실제 배우 엘라 콜트레인이 함께 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콜트레인의 삶이 아니라 허구화된 메이슨의 삶이다. 콜트레인의 물리적 성장과 메이슨의 서사적 성장이 묘하게 겹치고 빗겨나가며 이 간극이 감동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실제와 허구의 겹침과 어긋남 속에서 허구적 진실과 기록적 가치가 교감하고,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되는 평범한 이야기는 드라마로 재구성된다.
여느 성장 영화처럼 열정적인 사랑이나 가슴 아픈 이별은 없지만, 소소한 삶의 질곡이 곧 이야기가 된다. 익숙했던 고향, 정든 집을 떠나는 장면이 먹먹한 이별이 되고, 그때 자전거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네 형은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평범한 하루, 일상다반사가 다 소중한 드라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메이슨이 그리는 삶의 궤도는 우리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극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접근을 통해 우리 삶이 전부 영화이자 드라마라는 소박한 진실을 보여준다. 세상은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상을 통해 구성되고 영위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 점에서 12년 동안 촬영한 감독과 배우들이 무척 놀랍게 여겨진다. 이미 ‘비포’ 시리즈를 통해 18년에 이르는 시간의 마술을 선보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12년간 같은 배우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 단편영화처럼 이 작품을 촬영했다고 한다.
12년의 시간을 압축한 2시간 30분 안에서 배우 에단 호크와 퍼트리샤 아켓은 메이슨의 아버지, 어머니로 자연스럽게 늙고 변해간다. 이 변화 가운데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우리는 시간의 마술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여학생이 말한다. “순간을 잡으라고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우리가 순간을 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잡는 게 아닐까”라고. 맞는 말이다. 순간이 우리를 사로잡으니,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삶은 그 순간순간의 연속이니까.